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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연습(눅23:1-12) 본문

신약 QT

침묵 연습(눅23:1-12)

주하인 2012. 4. 4. 10:33

(눅23:1-12) 

오늘 하루는

주님 말씀 증거할 때와

타인을 위할 때와

먹을 때만

입벌리게 하소서

 

 

 
1.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무리가 '다' 일어났다한다.

속상할 일..

 

2.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그들이 '고발'했다.

어이없는 일..

 

 

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빌라도가 묻는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어리석은 물음.

 하나님이 겨우 '유대'의 왕에 맞을 까?

그래도 인간은 어찌할 수 없다.

그들의 관심의 가장 큰 폭은 ' 유대의 왕'일 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답하신다.

어리석은 물음에 '네 말이 옳다' 라 하신다.

그것은 무엇인가?

아니라 하고 더 큰 설명하기에는

이들 무지한 '인간'의 이해의 폭을 넘어 선다 .

그러기에 그냥 그들의 '상징'에 대답을 하신 것이다.

 

'그렇다'도 아니다.

'네 말이 옳다'

그래도 깨닫는 자 있으리라.

 

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그리고는 입을 다무신다.

더 이상의 대꾸를 할 필요를 못느끼신 것이시다.

'유대의 왕'에 대한 어리석은 질문에는

'메시야' 라는 의미로 '옳다'고 하셨지만

그들의 단지 호기심어린 '유희성 질문'에는 일체 대답을 안하신다.

 

 

10.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힘써 고발한다고 나온다 .

거기에는 얼마나 많은 '위협'과 '공포'가 포함이 되어있을까?

그래도 '가만히 계신다.'

 

 

 오늘은 무엇을 느끼게 하시려는가?

'사순절'

고난의 시간.

 

 4월에

예기치 못한 태풍이 몰아친다.

강원도에는 '눈'까지 왔다.

' 4월 11일의 총선'을 향한 소리..소리..들이 난무한다.

어지러운 환경들...

 

 외래를 방문하는 ' 환우'분들이 급작스레이 떨어졌다.

마치 약속이나 한듯.....

의사.

고귀한 생명 살리는 직업.

거기에 '전도'의 말씀을 건네기 위한 귀한 영적 의사의 자격.

모두 중요하지만 '생활인'의 입장..으로서는

약간 마음이 쓰이는 부분.

생각이 많다.

마치 '사순절' 중 마지막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예수님이

육체적 고난이 시작이 되고 며칠간 심적고난이 밀어닥치는 것 처럼 

나에게도 그런 것 같이 힘듦이 몰아치는 듯하다.

아마 , 어제 묵상에서

'베드로'의 멀찌기 떨어져 걷는 그 충격의 마음,

추위를 살속깊이 까지 느끼는 '외로움'의 고난이 느껴지려 한다.

 

 특별히 주님은

이 고난의 시간을

당신이 몸소 모범을 보이시면서 깨닫게 하신다.

어제는 그랬다.

' 절대의 고독', '절대의 두려움'에

훨씬 더 추우실 수 있는 '절대의 외로움'에 더해지는

극도의 배신감까지.........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심적 어려움을

예수께서는 체험하실 상황이었음에도

기도로 , 하나님과 성령으로 교통하심으로

담담하심을 직접 보여주시더니,

오늘은 그러함에도 대처할 태도에 대하여 모범을 보이신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답하라.

비록 그들의 물음이 '가시가' 돋히고 '미련'한 것이라도

내 대답이 '진실'이라면 짧게 대답하라.

그리고는 입을 닫아라.

어떤 모욕이나 손해를 볼 상황이어도

그게 '하나님'을 모욕할 수 있는 상황이면 '입을 닫아라' 시는 것 같다.

 

 나.

그러겠다.

오전시간이 반이 지난 지금 시점까지 '환우분'의 내방이 없으시다.

생각이 많으려 한다.

마치 '단체'로 일어나 공격을 시작하려는

오늘의 1절처럼 생각이 일어나려 하지만

예수님을 생각함으로 인내하리라.

입을 닫으리라.

고난주간임을 잊지 않으리라.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리라.

그분의 '담담하고 담대함'을 같이 체험하리라.

 또한, 혹여 있을 진짜의 공격이나

아니면 부대낌에라도

'입'을 닫아 침묵하리라.

손해를 각오하고라도 주님을 욕먹일 수 있는 상황은

인내하리라.

 

 

 

기도

 

주님.

놀라우신 내 사랑의 예수님.

그 인내와 지혜를 봅니다.

저 같으면 변명하고 싶은

아니, 선지자처럼 소리내어 저주하고,

'이 미련한 자들아..   난... ' 하고 싶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보내신 이유,

'왕이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게 하시는

그 복음에 대한 것이외에는

일체의 입을 닫으시는 그 인내를 봅니다.

주여.

이 베드로의 그 혼란 같은 혼란이

제 영혼을 또 흔들려 노크를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정말, 내가 큰 잘못했나.......하고

자책부터 시작하여 '걱정'까지 밀려올 듯

환우 분들이 한분도 없습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추위'가 느껴지려 하고

' 멀찌감치 '서서 두리번 거리는 그 감정적 막힘이 경험되어지려 합니다.

다행이도 기도원으로 향한 후

예배후 마음이 많이 뚫렸습니다.

예.

하나님의 뜻,

특히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십자가 지시기 전의 고난,

심리적 영적 도전에 대하여

인내와 절제로 이겨나가는 것을 배우길 원하심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늘 내 자아가 입을 벌리게 하는 것,

주님의 뜻에 맞추어 다물려 합니다.

감사하신 내 아버지.

오늘도  힘을 주소서.

말씀으로 인도하시어 깨닫기를 바라시는 내 하나님.

제게도 성령을 깊이 허락하시어

말씀 , 기억나게 하시어

지혜롭게 대처하게 하시고

순간적으로 튀어나가려는

이 자아의 흔들림의 갈증으로 인내로 잡아주소서.

입을 잡으시고

눈을 잡으시어

말을 절제하게 하소서.

주여.

모든 것 '성령'께서 도우시어야 가능한 줄 압니다.

온전히 제 모든 행동이

말씀으로 주신 것이기에 그러한다는

강력한 '깨달음'을 지니게 하소서.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 후의 삶 속에도 너무 어렵지 않게 도우소서.

주님.

제게 허락된 삶이

'사도의 삶' ,

그 극단의 청빈의 삶이 아니시면

이 삶속에서 너무 어렵지 않게 하시되

어느때라도 주님이 원하시면

목숨이라도 박차고 버릴 준비된 삶을 살게 도우소서 .

성령님.

저에게 자유로운 흐름을 허락하시사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알게 하시되

내 삶의 어느 것이라도

주님이 모르시는 것 없으시고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주님이 절 위해

선하게 허락하신 것임을 믿게 하소서.

강하게 확신하게 하소서.

저 그리하려 하오니,

주여.......주님이 강하게 잡으소서.

믿습니다.

이 후의 모든 것 다 의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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