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렇지만 부족하지 않은 나[창20:1-18] 본문
조금은 찌르는 듯한
구석은 있지만
그래도 볼 만합니다
조금은 뻣뻣해
보일 때도 있지만
전체의 모습은
조화롭습니다
내 부족한 모습
하늘의 구름으로 가리고
밝은 햇살 같은
말씀으로 도우시니
나 비록 부족해도
그리
부족해 보이지 않아 보임입니다
그것을 앎이
그리고 자연스레이
내게 적용됨이 자유고
그게 자연스러움임을
깨닫습니다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아브라함 조차도
인생의 부대낌을 통해
그리 옳아 보이지 않는 선택을 했다 .
우선 그랄에 거한 것.
그가 주님께 여쭈어 보았는지는 모르나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그러한 그의 선택은
아내 '사라'를 빼앗기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선택은
그로 하여금
많은 좌절 및 혼란을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
그러한 마음을
11절에 조금은 드러내고 있지만
그는 어이없게도 '사라'에게 미리 그런 일이 있으면
자기를 죽일지도 모르니 아내에게 동생인척 해달라는 말을 했다하고
뻔뻔히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마음이 그 마음일까?
많이 속상했고 자괴감이 심했을까?
오히려 저들 아비멜렉 등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그의 심사가
처연하게 느껴진다.
12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이보라...
정말이라고 부르짖는 '실제 이복 누이인 사실'이
아내를 빼앗긴 자괴감을 정당화 할 수 는 있을까?
그들 앞에서 두려워 이리 변명을 하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갈라졌음
저런 말의 오도까지 되었을까?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무엇을 보이시려는걸까?
하나님을 늘 동행하여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이처럼 기도하기만 하면
아비멜렉 사람들을 출산까지 하게 만들 만큼
그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그도 세상을 사는 사람이다 .
세상을 살면서 겪는 수많은 비 영적인 일들로
그도 많은 혼란을 겪으며 산다는 이야기다 .
그처럼 열심히 믿는 자는
우리가 바라기는 단호히 불의에 저항하여
장렬한 전사를 염두에 두거나 혹은 하나님이 물리치실 것을 당연히도 믿으며
과감히 아비멜렉 등과 싸우거나
아니면 이사하지 않고
있는 자리에서 기도하여 양들이 먹을 풀을 충분히 나게 하고
시원한 물이 끊임없이 나오게 하면
저런 일을 겪지 않고
하나님의 포근한 품에서 죽을 때 까지 옳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그런데 과연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일까?
비겁하지 않고 장렬히 주님의 이름 들고 싸우거나 죽는 것이
옳은 선교사의 삶이고 존경 받아 마땅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품성을 아브라함이 지녔기에
하나님의 그 극진한 사랑을 받았을까?
그렇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버려져야 할까?
아니다.
아브라함은
오늘도 보듯
아브라함으로 정체성이 변했어도
아직 미련한,미개한 사람처럼 보인다 .
비겁하고 엉터리 같은 남편으로
모든 여자의 적이 될 듯한 사람의 모습을 보인다 .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자'로 보신다.
무엇인가?
우선 나 스스로 깨닫는 바다 .
내 비겁하고 부족한면.
당연히도 회개하고 바꾸어야 할 문제이지만
그 문제가지고 그리도 고민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놓치지 않음을 귀히 보셨다 .
그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하나님을 기뻐함 만을 보고 의롭다 하셨다 .
하나님이 이기적이시라고?
난... 내 아들이 부족한 면이 많아 속상할 때가 가끔있어도
그 아들이 그 나이 되도록
아버지와 친하려고
장난 걸고... 함이 너무 좋다 .
설령, 아무리 못생겼다 하였어도
내 아들은 잘생긴 다른 남자 아이들보다
훨씬 귀하다 .
하나님은 세상에 우리를 내려 보내실 때
온전하고 깍듯한 유명 성형외과 출신 미남 미녀의 타인을 원하심이 아니다.
한 성령으로 한 가족 된 아들 딸 되길 원하신다.
아들이 반듯하고 잘생기고 똑똑하여져 돌아오면 더욱 좋겠지만
아들은 그냥 아들이다.
그 아들이 조금 더 인생의 어려움에서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의 장단점을 발견하고
아버지의 옳으심을 닮으려 노력하다가
안되면 아버지와 대화하며 점차로 발전해나가는 것이
효도하는 자 임이 맞는 것 같다 .
그러니.. 부족한 나.
부족한 모습이 오늘 내게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이상
말씀에 천착하고 있는 이상
난 의롭다 .
성령이 그리 인도하실 것임을 믿는다 .
주여.
오늘은 아브라함의 여러 단점들을 보고 있습니다 .
어이없는 패착을 보아 판단력 부재
아내를 팔아 먹는 비겁자
변명을 일삼는 엉터리
변명의 논리가 어이없이 무식자.. .
그러함에도 주여.
주님의 사랑은 끊임이 없음을 봅니다.
그러함에도
그의 기도가 힘이 있음을 봅니다 .
어쩌면 저런 이중적인 아브라함님의 모습이
제 모습 처럼 보여
그리 억세게 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주여.
그의 모습을 통하여
나름 한편 휴우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주여.
당연히도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
아브라함은 그 인생길에서
저 부족한 면이 연단의 아픔으로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러함에도 주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자의
온전한 기쁨을 느낍니다.
그의 삶의 힘이 있음을 봅니다 .
세대가 엉망인 세대입니다.
옳고 그름이 없고
누구나 위를 향하여서도 마음대로 소리지르고
심지어 교회 법에서 조차 동성결혼을 합법화 시키는 등..........
정말 어이없는 비 정형의 시대올시다 .
이럴 때 제 마음은
어느 것이 옳은 지 혼란스러울 때 없지 않아 있으나
그러함에도
제게 큰 감사는
주님의 말씀을 붙듦입니다.
그것으로 전 자유를 기대합니다.
주여.
느낍니다 .
오늘도 다시한번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붙들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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