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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아 인도하심[창 19:12-23] 본문

구약 QT

손을 잡아 인도하심[창 19:12-23]

주하인 2014. 9. 23. 16:17

 


 

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손을 잡아 인도하다. "

얼마나 급하시면 그러실까?

그렇다 .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당신 자녀의 인생에 하심.

그것은 가만히 계시는 것 같지만

안타까움으로 쳐다 보심이시다.

그러시다가 정말 급할 때

손을 잡아 얼른 이끌어

안전한 '성 밖에 두려' 하신다.

 

 그것.

' 그에게'

특별히 사랑하시는 자,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자,

성령으로 인하여 '인치신' 당신의 자녀들, 그들

그 안의 '나'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시다.

 

 감당할 만한 시험 밖에 더하신 것이 없으시니

위급할 때 손내밀어 구하신다는 말씀이 기억이 난다.

 

아...

일생이 언제 '어렵지 않은 때'가 있던가?

힘들지 않을 때는 힘들지 않아서

어려울 때는 위험해서

이도 저도 아닐 때는 '불안해서'..

그게 사는 것 같다 .

 

안식은

주안에 온전히 파묻히는 때.

천국에 가거나

이 땅에서 심령 천국이 이루어질 때에야 가능치 않던가?

아..

그것도 가만히 보면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손을 잡아

하나님께서 손내미시어 붙드셔

'그 ' 나를

성밖,

이 세상의 유한한 유혹에서 눈을 들어

온전한 피안의 장소

천국, 그 안전한 장소로 이끄실 때에야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아... 주여

제게 ' 사랑을 더하소서.

오늘 그리하소서.

내 주여.

하루 하루 ..

주님의 손길이 그립습니다.

주의 그리하심을 알지만

아는 것과

이 부족한 심성이 그를 받아 들임은 차이가 있음을

주님도 잘 아시지 않나이까?

원수의 목전에서 저에게 상을 베푸시고

제머리에 기름 바르시어

어디에 있던

늘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에 머무는

그런 제 삶을

제가 알고

믿고 늘 깨닫고 고백하는

매일이 되길 원합니다.

 

오늘도 수술 한분하고

잠시 피곤함을 다스리고 나니

하루가 어제의 그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퇴근하고 집에가서 또 쉬고 또 나오면

또 그 시간이 되겠지요.

주여.

어느새 제 삶의 시간은

또하나의 주름을 제 이마에 얹고 가며

제 마음은

이전과는 다르게

그래도 주님이 함께 하시니

난 안전하다고 고백하며

지금보다 더욱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으로 채워질 수 있길 고대합니다.

주여.

이게 당신이 원하시는

제 삶이시면

그것에 만족하려 합니다.

저의 맡기는 삶 만을 귀히 보소서.

저를 '성밖에 ' 피하게 하시는

귀하신 내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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