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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인하여[창19:24-3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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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인하여[창19:24-38]

주하인 2014. 9. 24. 12:28

난 비록

적은 팔 벌리지만

그 몸짓은 벌써

하늘에 도달했을 것만 같습니다

 

나 비록

작은 소리로 

외칠 수 밖에 없지만

그 소리 벌써

주께서

들으셨으리라 믿어집니다

 

주여

오늘도

주 앞에 서 있음으로 인하여

나와 온 주변에

주의 복

흘러 넘치게 됨을

믿으려합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러했듯

주님 만나뵙던

그 자리에 다시나가

서 있을 수 있도록

주여

절 붙드소서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아침 일찍이'

모든 삶에 부지런한 태도가 중요하다.

 

 '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

삶 속에서 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그것도 아침 일찍이 ,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 .

단 일초도 하나님을 잊는 일이 없기를

난 간절히도 원한다.

 

'서 있던 곳에 이른다'

습관이 중요하다 .

주님과의 만남이 늘 내게는 습관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주님의 임재가

내 삶을 움직이는데

그래서 내 모든 오 작동이 회복되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이르기' 어렵지 않게 된다.

 

 이 어지러운 세상.

나...

내 식구들.

내 형제들

내 민족..

세상의 믿음의 형제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깨어 있어야 한다 .

아침 일찍 일어나는 영적 깨어남과

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이제 다시 돌아본다 .

사는 것에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던가?

그것을 알아 죽어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나님을 전제로 한 이땅의 이 유한 한 삶

어디에도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

아무리 좋은 재미도

너무나 뛰어난 물질의 자극도

사랑스러운 여인의 소근거림과

꼬물거리는 자식과 손자 손녀의 애교도

몇개월 몇년이면 사라진다.

그렇지 않은 절정의 감성을 지닌 자도

눈을 들어 돌아보면

불현듯 더 이상,

세상의 재미가 자신의 감각을 기쁘게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쯤, 인생의 목적 , 의미.. 찾아보아도

죽음이 입을 벌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절대의 명제에 도달하게 된다.

누구도 갈 수 밖에 없는 죽음의 저편이

옹기가마의 연기 같이 그를 바라보고 있어

그것을 잊고 도망가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나

잊어 버리려는 망각의 심리기제를 발휘하거나

초연하기 위한 각종 철학적 심리적 노력을 기울이지만

시간은 째깍 째깍

그를 죽음의 연기 앞으로 끌어간다.

 

그게 인생이다.

 

 허나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다르다 .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생을 깨달아 믿는 자들은 다르다 .

그에겐 예수님의 피뿌리심으로 인쳐지고

성령의 도장 찍으시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거하기에

다른 영생의 삶이 있음을 알고 있다 .

 

 그러나, 알고 있지만

세상의 권세잡은 자들은 영적으로 어떻게든 쓰러 뜨리려 한다 .

그래서

아침 일찍이

주님의 계시던 곳을 향해

이르러야 한다 .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그러함은

그를 생각하사

하나님이

그와 그 주변을 그냥두시지 않는다 .

그날,

심지어는 종말의 시간이 세상에 덮친다해도

피할 길을 주신다 .

그날을 '성령'으로 감해주신다.

 

오늘.. 롯이 주인공인 듯 하지만

롯이 사는 지방에 하늘로 부터 떨어지는 불폭탄과

온대지를 태우며 오르는 

지옥 같은 상황을

한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아브라함이 있다 .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이 여호와께서 계시던 곳에 이르러' 그것들을 바라보았고

그로 인하여 롯은 구원을 받았다.

 

 그것을 아브라함은 알라나?

난.. 인생에서

내 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이 자그마한 일,

묵상과 글 올림,

조그만 목소리지만 하나님을 알리려는 나름의 몸짓과

그래도 모본이 되고자

수술 전에 잠깐 잠깐 드리는 손잡은 기도로

내 주변의 위기,

그들의 영적 죽음을 구원하는 도구는 되고 있을까?

 

오늘 말씀은 그것을 넌지시 내게 말씀하시는 듯도 하다 .

 

'주하인아.

 힘내라 .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어제의 빈자리...

 영적 잔치의 자리를 사모하는

 네 사모함과

 그래도 깨어 있음으로 인하여

 너와 네 주변에 영향을 미치고 있노라'시는 것 같다.

감사하다.

 

 

주여.

며칠 조금 나른하게 살고 잇는 듯합니다.

아닌 것 같은데

내 속을 휘젓는 기본 감각은 조금 불안정한 듯합니다 .

더 열심히 살고 싶지만

피곤한 육신은 절 그냥두지 않고 나태로 빠지려 합니다.

주여.

말씀을 듣고

어제 늦은 시간이지만 나름의 시간,

주님의 기도원에 가서 조용한 묵상의 시간동안

많은 은헤를 체험했습니다.

주님.

오늘은 롯의 소돔 탈출기, 그 유명한 장면을 보여주는 구절이지만

그보다는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그래도 깨어 있는 아브라함을 보면서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롯을 구원하심을 묵상하게 하십니다.

 

주여.

부디

제 부족한 심성이고

죄송한 영성이지만

그래도 그냥 제자리에 있으려는

열심과 사모함을 보시고

저와 제 가족,

제가 아는 모든 자들을 축복하소서.

붙드시고 인도하소서.

제 입에서 조금이라도 전도하는 소리를 받은

그 모든 자들의 심령을 깨우소서.

내 주여.

제 자식들 앞길 .. 아시지요?

저로 더 기도하는 자 되게 하소서.

힘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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