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러니 (시53:1-6) 본문
아무리 대단한 의욕을 가지고
너무나 강한 자기 의식을 가져도
허락되어진 것을 제하고 나니
내게 남아있고
저들에게도 있는 것은
오직
세월에 허물어져 가는
힘없는 육신 뿐이지 않는가
그것을 인정하고
나를 받아 들이고
타인을 용인하여 본다
그러니
세상이 다시금 보아 줄만하고
나의 존재가 조금은 아름다운 듯 하다
그렇다
하나님
그 놀라우신 창조주의
허락하심이외
그 어느 것이 자랑거리가 되고
그 어떤 것이 속상할 것이 된단 말인가
오직 주님만이
내 기쁨의 이유고
내 삶의 의미이며
내 갈 유일한 목적이 아니던가
3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세상에
진정 '선'한 자가 있을까?
가장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자가 가장 교만한 자라는
CS 루이스의 이야기를 안들더라도,
과학자들의 검사상 일분내 사람들의 생각들이 오만 가지가 스친다는
이야기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진정 인간의 힘만으로 '선'할 수 있는 자 있을까?
오죽 그럴 수 없었으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빌려
대속의 제물로 되시려고 세상에 오시고
그 '선'을 위한 유일한 길이 유지되도록
하나님의 '영'을 '보혜사'로 세상에 보내셨을까?
'성악설'이 정말 사실이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사람도 없음'을 다시한번
믿으면서 해결되는 생각들이 있지 않은가?
내 미워하는 자들,
내 속상해 하는 자들.
그들을 미워하고 그들을 속상해 하는 이유가
이제는 희미해지지 않는가?
그들로서 그들도 어쩔 수 없는것을 ..
또,
나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는 것.
죄책감으로 흔들거려 하는 것.
손가락질이나 비아냥에 약해지는 것...
그것은
내가 '완전'하길 바라는 '망상'이거나
내 거짓 환상, 온전하다는 슈퍼맨적 , 유아적 환상에 상처를 입길 두려워 하는
미련한 착각 아니던가?
하나님이 그러신다 .
'너나 나나
모두 함께 더럽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다' 고.. !
그거.
속상한 현실이고 사실이지만
어쩌면 받아 들이기 시작하는 순간.
더 깊은 은혜가 아니던가?
하나님은 그런 말씀을 전하시고
그대로 두시지 않으셨으니 말이다.
예수 십자가.
보혜사 성령님.
6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보라.
시온 , 천국, 영생의 구원을 줄 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미련하고 추악한 영들에게 '포로' 된
당신 하나님의 '백성'인 나를
구원하여 돌이키시니
내 결국이
즐거워 하고 기뻐하는 시온의 백성이 됨이 아니던가?
영적 이스라엘.
영적 유대인.
살다보니
왜 이렇게 많은 풍파가 나를 흔드는가?
왜 이처럼 많은 생각들이 내 일상의 행동을 걸어 드는가?
왜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그리 많지 않게 느껴지는가...?
........
그런데
또 더 살다보니 ^^*
그 대부분의 이유가
'외부'에 있는 것 보다는
'내부적 '문제, 즉 내 문제가 많았었음을
조금씩 더깨달아 간다는 것이다.
남의 눈.
남과 비교하여
남 때문에...
내 현재의 것을 받아 들이고
내 것에 만족하고
내 부족한 부분을 용서하고 인정하고 .....
할 수 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유롭고 행복해 질 수 있는 것들... .
그러나, 그런 것들이 언제나 가능하던가?
유사이래,,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과 종교인들과 철학자들이
그러함을 인식하고 깨달아
자신을 내려 놓으려 애썼던가?
나...
안그런가?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던가?
그 나를 내려 놓을 당위성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리되지 못하는
이 버거운 인간의 허접함은 어찌 된 일이던가?
오늘 다시 한번 말씀을 통하여 들여다 본다.
그 본질은
그러한 당위성을 알면서 '진실'을 마주하지 못하였음이고
진실을 말씀을 통하여 배워감에도 불구하고
사단의 영적 흔듦에 또 잊어감이고
그래서 눈물 뿌리고 고민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성령을 갈구하면서
조금씩 더 확신되어져 가는 것....
그것을 오늘다시 말씀으로 이리 정리하신다.
'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그렇지 않은가?
모두 더럽다 .
그것도 한 사람도 없도다 할 정도로
인간은 더러운 존재란 이야기다.
내가 타인에 대한 바램을 너무 높게 잡고
내 자신에 대한 기준을 너무 '크게 ' 잡아서
이러한 인식의 괴리에 의하여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 없었음이다.
그 깨달음을 '성령'으로 확인시키시고
다시한번 말씀으로 정리하시도록
또 성령으로 이리 인도하심이다.
그렇다.
이제는 타인을 조금더 너그러이 대할 수 있을 거 같다.
'에라.. 그들이 그렇지 뭐..
더 속상할 일이 무엇인가?
예수님 세상에 오셔도 그런 자들이 인간이고 사람의 속성인데.. '
' 에이..
내가 잘못하기는 했지 무..어..
하지만, 좌절할 필요 없어.
하나님이 다 아시잖아.
이토록 하나도 선한 데가 없는 우리를 위하여
예수께서 십자가 달리셨잖아.
다시 일어나서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나가면 되지.. '
마음이 조금 가볍다.
그래도 그런 추악한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시온'에서 우리를 기다리시고
우리를 '포로'에서 해방시켜
기뻐 노래하게 하신다 잖은가..
감사하다.
내 일상에서 어떠하도록
'각론적'으로 전개될지는 '성령'의 은혜로 또 깨달아 인도하실 것이지만
이 깨달은 '총론' 적 생각들을
더 감사하며 깊이 갈무리 해야 할 듯하다.
주님.
늦게 마무리 해갑니다.
솔직히 수요일 오후 근무 시작하며
게을러진 제 영성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주여..
이것마져 고치시고
주님이 영적으로 미시면
다시 제자리 차지할 것으로 믿어집니다.
주여.
오늘 말씀에
그런 부족한 게으른 본성의 나...
그것도 그럴 수 밖에 없음으로 조금 편안히 받습니다.
하지만, 더욱 경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대낌이 없이
혼자 그리 생각해 가는 진정한 게으름입니다.
그리하지 않기 위하여
겨우 시간을 내
이처럼 마무리 하오니
주여
절 붙들고 지혜롭게
시온의 기뻐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되도록 인도하소서.
선한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다.
..
주여.
기대를 더욱 내리려 하오니
인도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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