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래도 우리는[대상 21:18-30] 본문

구약 QT

그래도 우리는[대상 21:18-30]

주하인 2019. 5. 22. 08:47



그냥


부족해도

주님 말씀있으셔서

기도하며

주시는 은혜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시니

소소한 행복들 가운데

조금은 다른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허락되어진

울 손녀의 참여와 더불어

아직도 건강하게

제 곁에 머무르며

기도하여 주는

아내의 생일도

저리 맞이했습니다


주여

이제는

조금은 더 뚜렷이

오르난 타작마당의 융성함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다르지만

세상이 바라는 그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기뻐 주시는

진정한 축복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부르실 그날까지

더 겸손히

더 열심히

주님 앞에

올바른 매일을 살겠나이다



18.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다행이도.....

난, 우리는 (아내와 ...자식들까지 맞는 것 같다..)

오르난 타작 마당에서

지금까지는(앞으로야 어찌 알겠는가?   최선을 다해야지... )

살고 있다 .

 또, 그것을 인식하고 나름 확신하고 있다는 게

내게 허락되어진 모든 축복들 가운데

가장 커다란 축복임을 이해하고 믿어지고 있다.



20.그 때에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다가 돌이켜 천사를 보고 오르난이 네 명의 아들과 함께 숨었더니
   오늘 묵상에서는 이 장면이 가슴을 친다.

밀을 타작하다가 , 내 일상의 삶을 열심히 살다가

네명의 아들과 ( 아.. 가족, 영적인 형제들..) 함께.......함께 일하다가

함께 숨었다 .


 이것.

세상은 온통 전염병으로 죽어가는데

(다윗의 잘못 계수의 징벌로.. 실제로도 지금 세상은 종말로 치달리는 어려움들이 만연하지 않는가?  )

이들은

그것과는 상관없듯이  이전의 삶의 행태 (行態, 행동과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도 순박히..

그것은 그들이 세상의 돌아감을 알지못하는 촌무지렁이 ㅜ.ㅜ; 라기보다는

그것과는 별개로 (그 소용돌이에서 한걸음 벗어나서 사는.. )

일상적인 삶을 유지하다가

만나는 천사 (기도하는 자, 하나님의 궤를 모시는 집이니 당연할 것인 바 임에도..)에 대하여

순박히도 놀라는 그러함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는

숨었다.

얼마나 그들의 순박함이 가슴을 치는가?
아기가 눈에 보이지만 않으면 안전하다는 듯 숨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로 느껴진다.


이것..

신약에서 성령으로 인해서

'그날.. 마지막 종말의 날'을 감(減, 덜어주실 감)' 해 주신다는 말씀이 연상되는 구절이다 .


 그냥..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성령의 우리.. )

일상을 소시민으로 열심히 살면서

세상의 풍파에 한걸음 떨어지며 살다가

불현듯 오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 때로 두려움으로 오실 수도 있다.. )에

순간 순진히 숨어서 떠는

사이 좋은 가족 , 영적인 동료 들의 모습이

이들 오르난 식구들의 모습에서 그려진다.

 

21.다윗이 오르난에게 나아가매 오르난이 내다보다가 다윗을 보고 타작 마당에서 나와 얼굴을 땅에 대고

   다윗에게 절하매

그들의 그러함은

다윗을 보며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는 모습에서 읽을 수 있다 .

 세상의 권세에도

정확히 반응하여 존중할 줄 아는 모습.

그 겸손함과 순박함 말이다.



22.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넘기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내게 넘기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제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전염병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하니

 그리고는

내가 ,듣고 싶은 (^^;;) 소리를

다윗의 입을 통해 듣게 하신다.


'상당한 값으로'


어쩔 수 없이

본인의 의지와는 아무 관계 없이

하나님의 궤를 맡게 되었고

그러면서 그들의 삶을 그냥 소시민 적으로 살아왔지만

(나도 내 의지와는 별개로 예수님께서 강하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신 후

 첫사랑을 강하게 체험하며

 지금까지 오면서

 내 영혼의 지성소에

 드디어는

 깊이 깊이 모셔오게 되었다. ..^^*)

그에대한 보상을

크게 한다고 '왕'(다윗왕 보다는 왕의 권세)이 말하는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


 세상의 복.....까지도.........말이다. ^^*




23.오르난이 다윗에게 말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 하는지라

그러나,

할렐루야.ㅎ.. 

오르난은

이게 좋다 .


그냥.......

주님의 뜻으로 인도되어진 것이고

그것을 바란 것이 아니니

전혀 욕심 부리지 않고

진정으로 그냥 바쳐 드리는 것........


나.

이해한다.

이해가 되고

동료의 마음을 같이 공유할 수 있음이

정~~말 좋다 .

돈보다 더 좋다 .

솔직히.................

아주 아주 적은 부분이지만

난...........저런 속성이 있다. ㅎㅎ..

그것.. 주님이 기뻐하시는 줄.. 안다.

 나..

다 부족하고

결점 투성이지만

유사한 , 스스로 진정 자부할 부분을

이를 통해서 찾아질 수 있음이

정말 기쁘다.

으쓱하다.

자존심은 낮추셔도 자존감은 높아지게 하시는 듯하다 .

할렐루야.ㅎ.. 


 

25.그리하여 다윗은 그 터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
  그리고...

그 터값은.....

그래도

'보상'이 되어진다.


나.

그 마져

기대한다.

극구 부인함... 영적인 성결을 위한 극도의 청빈을 유지함.........

어쩌면 때로는 '자아'의 발로일 수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 터 값은 

감사함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나.

기대해본다.

기대가 내 본질을 앞서지만 않는 한에서 말이다.

 


 오늘 묵상.

어제도 고백했지만

머리가 혼란 스럽고 마음이 흔들리려 던 순간이다.

하나님께서 다시 정리시켜주시는 부분이다.


내 인생.

늘 무엇인가 이루어야 할 것 같았고

자꾸만 나이 들어가면서도 속절없는 한계에 부딪혀

주저 앉아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은

사단의 속삭임(어제 말씀대로 ..) 으로

괜히 밀려 밀려 살아 오다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인도하심으로

차분해져 오던차

다시 흔~들 하는 것을 주님이 알게 하시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 안정 된 것을

오늘 오르난 타작 마당을 보게 하심으로

정리되게 하심이시다.


 세상은 온통~

전염병으로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

이전에는 그렇게 힘있게 이기고 승승장구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쑥~쑥 번성되던 것 같은

다윗의 왕국이 말이다.

 그런데......

그들과 한걸음 떨어져

소시민의 삶을 그냥 유지하는

'오르난 일가족'을 보고 있다.

이들은

다윗들, 그들의 일행처럼 화려하고 힘있는 누림을 누리지도 못했지만

또 , 그들의 그 고난에서도 한걸음 떨어져 있다.

이거....

내 바래왔던 ...아니.. 바라도록 강요 받던

그 화려함 (비전.. 선교... 성전 건축........세상의 번성....도.. )을 따라가지 않고

어제와 다름없는 하루,

선대와 다름없는 매년의 경작.......을 되풀이 하는

이들, 오르난을

다윗이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던

그들에게 '큰 돈'을 안기고 간다.

물론, 전염병은 이들을 침범할 엄두도 내지 않고 있었다 .


무엇인가?

요새 붙들고 살려는 구절이 있다 .

'내 평생 바라는 한가지 일그것을 ...

 여호와의 성전에 살면서 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라는

시편 27편 4절 말이다.

 세상이 아무리 흔들리고 아무리 유혹하려 해도

하나님의 일을 들어 더 크고 놀라운 어떤 일...

내 달란트를 통한 하고 싶은 일.. 다 드러내어

칭송받고 싶은 유혹.. 을 이루지 못하는 좌절이 날 흔들려해도

아.....솔직히 나이들어가며 구석방 늙은이 같이

외로움의 극치를 맛보지 않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싶은 유혹으로

안절 부절 못하게 하려는 혼돈 (사단의 소리들.. .합리를 가장한... )

그 모든 것 다 털어내고

오직 주어진 하루 하루를

주님 묵상하며 살아가다가

주님 나라로 소천되어 가는 것을 목표로 잡고 싶다는 이야기다.


옳은 방향이다 .

그런데

그게 쉬운가?

나이들어가는 자의

생물학적 곤란함, 심리적 그러함, 사회적 이유(어제도 고백했다.ㅎ)을 들고

안절 부절 못하게 하려는 혼돈을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살아가지만

가끔은 흔~들했었다.

그런데.....

오르난 타작마당의 오르난 가족들...

그들의 그 일상..

함께 하며 함께 순진한 매일을 살면서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들이 당연하다. )

결국 ,세상의 험함 (돌림병 사망 , 종말의 위험)에서도 초연하게 되고

원해보지도 않던 세상의 복도 충분히 받게 되니

그 귀한 현상들을 보게 하시는

절묘함과 그 위로가 얼마나 기쁜가?

그게 내게 주시는 메시지임을

오랜 묵상과 기도와 지금까지의 간증으로 증거하니

난..

참으로 기쁘다.

그리고 힘이 난다.

주시든 아니든.. 부수적이다.

기쁘고 행복하고 차분해지는 게 감사하다.




주님.

오르난 가족의 순진함..

그들의 매일 매일 열심히 살다가

결국 받는 진정한 축복, 통전적인 축복을 봅니다.

위로라 생각합니다.

그날을 감해주시고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방법대로 주실 축복을 기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함은

늘 그러해옴이었고

그러함을 통하여

크고 놀라운 다른 복을 허락하실 것을 믿기에 또 그렇습니다.


주여.

지력 부족하여

깊이 표현해내지는 못하지만

주께서는 아시리라 믿습니다.


제 가족,

저와 주님의 기쁨을 같이 갈구하시는

모든 영적 형제 자매들에게도

같은 기쁨 누리고 이끄소서.


예수 그리스도 거룩하신 그 이름 들어 감사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 과거 묵상( 2012.05.23)


오르난 타작마당의 진실 *

오르난은

네 아들들과 함께

마당에서 타작하다가

하나님을 보고

놀라 숨었습니다

 

저와 제 아들들도

주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다가

주님을 만나뵐 때가 될 때

 저들처럼

놀라지 않길 원합니다

 

늘 마음속에

주님을 모시고 살며

주의 임재하심을

사모하고 살길 원합니다

 

주여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저희 가족과

주앞에 겸허히 살려는

모든 당신의 자손들에게

오르난 타작 마당의

 놀라운 풍성함을

속히 허락하소서

 

 

 

18.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오르난 타작 마당.

하나님의 궤가 계시던 곳.

 

무엇 때문이던가?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오르난의 집일까?

오르난이 뛰어난 일을 해서이던가?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 무엇을 의미하던가?

그곳을 통하여 무엇을 말씀해 주시려던가?

 

 

19.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다윗이 올라가니라 
 
그곳은 '회복'의 장소이다.

 

하나님의 이르신 말씀대로

전적으로 따라 회복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20.그 때에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다가 돌이켜 천사를 보고 오르난이 네 명의 아들과 함께 숨었더니
21.다윗이 오르난에게 나아가매 오르난이 내다보다가 다윗을 보고 타작 마당에서 나와 얼굴을

    땅에 대고 다윗에게 절하매 
 오르난은 '서민'이다.

밀을 타작하다  천사를 보고 '네 아들'과 함께 숨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 타작 마당은 '타작'하는 마당이다.

삶을 사는 곳이다.

정직한 삶을 사는 곳이다.

다윗은 왕의 삶을 충실히 살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서민의  순수한 삶을 사는 자들이다. 

 서민과 왕의 차이는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음은 물론 일 것인데도

늘 위와 비교하는 습관성 비교 자인

우리 인간들에겐

오르난 타작 마당이 그리 귀치 않아 보였을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묵상의 중심은

'삶의 현장'이다.

풍성한 소출의 현장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절절히 느껴지는 곳은 

평범한 일상이기도 하다.

 

 

 22.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넘기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내게 넘기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제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전염병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하니
 평범한 삶은 무시되어도 되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한 일상의 삶'을 귀히 여기신다.

타인을 높여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일상에 임하셔 우리와 친교를 나누길 원하시지만

그 분은 함부로 대하여 드려야 할 분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늘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분에 대한 최선의 삶을 살아드려야 하는 존재들이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무게는 가벼워 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늘 조신한 마음으로 주님께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23.오르난이 다윗에게 말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 하는지라 
 하나님께서 이 평범한 오르난의 집을

평범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기뻐하시는 이유.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거침없이 하나님께 가진 것 중 많은 것을 내 놓을 줄 아는

그런 마음이 겸비된 사람이었다.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타작을 통한 수확의 풍성함을 ,

마당이 주는 너른 여유로움,

그 주인의 그 안에 펼쳐진 모든 것을 만족하게 살줄 아는 감사함,

자식들과의 함께하는 온유한 교제,

늘 주님을 생각하고 두려워 할 줄 아는 올바른 信心.

세상의 권위에 순종할 줄 아는 겸손... 이 있는 곳이었음이 읽혀진다.

 

 

24.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반드시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빼앗지 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니라
25.그리하여 다윗은 그 터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
 오르난 타작마당은 '하나님의 궤'가 거하시는 곳이다.

하나님의 성전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자기의 인생 타작마당에 모시는 자는

반드시 '보응'을 받는다.

 

 아니다.

인생의 중심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영혼의 성전에 중심으로 모시고 사는 자,

그 분으로 인하여 생기는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받는 자...

그분이 주시는 것을 '진정 ' 감사하고

함부로 생각지 않는 자...

귀히 여기는 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주시는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

 

 타작은 수확의 최절정이다.

 오르난 타작마당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려 노력하는 자 들에게

우리의 인간적 노력을 넘어서는

하나님이 쏟아 부어 주시는

축복의 절정이기도 하다.

우리의 열심과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합치되는

진정한 축복의 장소이기도 하다.

 

 

26.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27.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
28.이 때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응답하심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이전의 잘못을 돌이킬 '회복'의 장소이기도 하다.

 

 

 

  오르난 타작 마당.

오르난은 그리 뛰어난 열정과 열심을 보였다고 어디에도 기록을 찾기는 어렵다.

그는 '다윗'의 폼나는 일생에 비하면

초야에 묻혀 살다가 죽을

다른 평범한 수백 수천만 명의 범인들과 하나도 차이가 없다.

그냥 열심히 , 정직히 .. 살다가

또 그렇게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 묻혀서 꺼지고 말..

 

하지만

하나님은 그 오르난을 선택하고

그 사람의 '마당'에 하나님의 궤를 놓으시고

그로 인하여 그에게 놀라운 축복의 경험을 하시게 한다.

그의 이름이 성경에 많은 부분을 나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적 '사랑에 의하여 선택받은 자고,

하나님의 인생에 대한 주권적인 부분을

오늘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통해 보이시려 하시며

그 부분은

주권적 사랑을 받기 위한

평범한 자들의 조건에 대하여서도 보이신다.

 최선을 다한 일상의 삶,

그안에 펼쳐지는 그들 속의 '정결함',

그리고 '다윗'과의 비교를 통하여

왕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의 그것과

일상을 사는 소소한 서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부분'은

그들의 화려함과 덜 화려함의 차이가 아님이다.

 

삶의 중심을 '하나님의 동행'하심으로 삼고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상에서의 최선을

늘 생각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시는

현상태에서의 것을 영광으로 드러내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소출'보다는

기뻐하시는 소출이다.

자식들과 합치된 마음의 경작,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식하는 마음,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는 마음.. 등이다.

 

나에게 원하시는

오늘의 말씀은 그것이다.

 

더 깊이 묵상하고

더 깊이 회개하고

더 깊이 감사하고

자족하는 삶,

내 일상이 '타작마당'이 되는 삶이다.

 

 

적용

 

1.   내 눈뜨고 살아가는 곳이 '오르난 타작마당'임을 잊지말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

 수확하는 곳.

 전도로 수확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수확하는 곳.

 내 자식들과 지인들과의 관계를 수확하는 곳.

 환우들의 건강을 수확하는 곳이다.

 

2. 하나님은 '왕'보다 '궤'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보신다.

 높고 잘나고 뛰어난 것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주님은 우리의 능력보다는

 주님 앞에서 우리의 겸허함을 귀히 여기신다.

 

3. 일상도 최선을 다하자.

 주님은 눌리고 어두운 분이 아니시다.

 겸손에 최선을 다하고

 일상의 것도 최선을 다하자.

 단, 주님을 앞서지 말자.

 

4. 회개하자.

  잘못은 철저히 회개하자.

 

5.  하나님의 성전을 모시고 다니는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보응을 받는다.

 오르난도 금으로 다윗에게 보상 받지 않았는가?

 

6. 성경 세장 읽겠다.

 

 

기도

 

주님.

주님이 진정 바라시는 것은

통합적인 것임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영적인 추구 만을 통하여 세상을 도외시 하는 것도 옳지 않고

세상만을 추구함으로 주님을 도외시 함은 더욱 싫어하십니다.

그것을 다시한번 상기하게 하십니다.

주님은 통전적이고 통합적이신 것을 원하십니다.

막힘보다는 '흐름을 원하십니다.

주여.

막히지 않게 하소서.

주여.

타인에게 아픔을 주지 않도록 하소서.

특히 저에게 화합의 마음을 깊이 각인시키소서.

흐르지 못하는 것은 주님의 원하심이 아니시되

하나님의 원리가 아닌 것을 흐른 다 착각하는

무지함은 더더욱 막으소서.

오늘.. 밀 밭 사이에서 떨며 눈을 내밀어 살피는

오르난 가족의 그 순수함을 묵상합니다.

함께 하는 자의 겸손함을 봅니다.

그들의 가만히 있어도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봅니다.

다윗의 회개를 봅니다.

아마도 그를 보고난 오르난 가족의 더욱 신실해짐을 통한

그 가정의 대대로 융통함을 느낍니다.

주여.

저도 그리하소서.

제 가족도 그리하소서.

주님의 보여주심을 보고 있는 제 가족에게도

그리 놀라운 축복 허락하소서.

어려움 겪는 자.. 주님 아시오니

어서 주님의 말씀 앞에서 누리는

오르난 타작 마당의 진실을 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