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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가 해야 할 선택[창4:1-15]

주하인 2014. 1. 7. 11:53

세상이 두쪽이나더라도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 있다

 

과연

그럴 자격 있는지

혹여 의혹이

날 채워 오려하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은

멈추어서는 안된다

 

죄의 유혹은 인식하고

죄된 선택은 멈추어야 한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그리 되어야 한다

 

그제야

삶은 어지러움을 풀고

어느새

정돈된 고요함으로

평강의 아침으로

또한

정갈한 아름다움으로

우리 영혼에

다가오고야 말 것이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괘씸한 이브... ^^;;

요새 말로 '요~~부~~ ! '  ^^ ;;

 

그 죄덩어리가 (이것 '낙인' 찍는 내 나~쁜 습관이 아닌가 회개 한다 )

임신하고 가인 낳고 나서는

" '하나님 때문에 ' 득남하였다 "하고 외친다.

주제넘게~ ^^;;

 

위에 이모티콘을 자꾸만 쓰게 되는 것...

솔직히 내 속에서 저 글을 읽어가며 드는 '오래된 습관, 나쁜 습관' 이고

그것이 옳지 않음을

말씀을 통해서 투영되기에 부끄러워서 이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영광'을 받길 원하신다.

그 분은 벌로써 에덴 동산에서 내 쫓았지만

가죽옷을 주시고 자식을 잉태케 하시는 분이시다.

그 분의 사랑은

우리의 죄와는 무관하게

그분의 뜻대로

영원히 표출 되신다.

 

우리가 할 일은 끝까지

내 죄.. 정말 큰 .. 죄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다.

오늘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다

내 부끄러움, 내 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끝없이 영광 받으실 분이시다.

그것은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존재의 의무이고 존재의 이유이다. '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은 특별한 죄성을 가졌다.

하나님께 '분노'를 가리지 않는..

진정으로 원망하는..

거기엔 망설임이나 제재가 없다.

유전된 원죄의 첫세대로서

그 죄성의 시킴을 여과없이 표출하는 '죄'를 지었다 .

 

하나님께 감히.. 라는 여과장치도 없었다.

그게 '진정한 죄'다.

어찌할 수 없는 상처의 죄는 '덜한 '죄일 수 있다.

회개하고 또 회개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습관은 덜 하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여과가 없었다 .

아무래도 배울 기회가 없었던 듯하다.

'선택',

선한 선택과 나쁜 선택을 연습할 기회.

그렇다.

선택에 의하여

죄된 생각은 '죄'가 된다.

죄가 죄가 되기 위하여는 '사단', 뱀의 생각이 선행되고

거기에 따르는 '내 선택'에 의하여

행동과 태도와 생각의 폭죽터지듯한 발전이 있게 된다.

'죄'는 연습하지 않아도

인간에 유전된 자동 메카니즘이다.

원죄.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보라.

하나님께서 

'죄' .. 사단의 생각이

'너를 원하나' .. 불가항력적 생각.. 더러운..

'너는 ' .........하나님이 안 기뻐하실 실제 '죄'의 주체가 '나'다.

' 죄를 다스리라' .. 내 선택의 중요성이다.

죄는 끊임없이 우리를 원하나 죄를 다스리라 한다.

사단의 유혹은 우리의 저항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힘써 저항해야 할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소리소리 지르면서 뗑강을 부린다.

하지만 감사하는 것은 배워야 한다.

인간이 그렇다.

원죄적 성품은 죄의 소리에 민감하다.

저항은 노력이 필요하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이 크고 깊었어도

면할 길을 마련하신다.

그게 '하나님의 안타까우신  사랑'이시다.

 

 

 나에게 무슨 말씀을 주시려는가?

아니면 나를 통해 다른 누구에게는 어떠한 말씀을 주시려는가?

지난 8년 넘어 말씀 묵상을 하면서

난 나를 투영하여 보는 거울로 말씀을 묵상해왔다.

너무 정확히 매일 매일 말씀으로 날 인도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잘못을 수정해오도록 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조금씩 다른 생각도 주신다.

매일 매일 한다는 게 어쩌면 너무 힘들 수도 잇는 일이다.

그래서 아무 문제 없다고느끼거나

너무 힘들때 말씀이 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기도 하다 .

아니면, 환우가 너무 많아 힘들어서 피하고 싶을 때도 있고...

그러나, 그럴 때 조차도 말씀 앞으로 기어와서 엎드릴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내 손, 내 타이프 속도를 이끌어가시며

내 머리 속 ,

내 영혼 속에 찬란한 폭죽을 터뜨리듯이 이끌어 가실 때도 많았다 .

특별히 지난 12월은 그랬다.

연말이라서 하루 수십명의 환우들이 물밀듯이 밀려왔어도

틈틈히  하나님이 글을 쓰게 허락하셨다.

그 몇초, 몇분을 이용해가면서 앉았다 일어섰다. ..

그래도 말씀이어지는 것이 끊어지지 않도록 ...

그런 체험이 수도 없다.

만일 내가 쓴글이라면 지력이 딸려서라도

문맥이 끊일 텐데...

그래서, 난 어쩔 수없이

내 전혀 '글 材' 나 '글을 훈련 받은 ' 경험이 없음에도

이리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하신바 있으심,

나같이 부족하고 죄성 강하고 결점 많은 자를 통하여

무엇인가 '내 문제' 말고도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나'를 통하여

다른 어떤 사람에게 끼치고 싶은

세상을 향해 외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 아니실까 생각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어제는 ' 치유 묵상' 카테고리를 열었다.

 

오늘은

다시 한번 '죄와 그 죄의 중심에 선 나'와 '벌' 문제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신다.

 

이브의 선언은

내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이시다.

 

이전의 죄, 지나온 죄, 지금도 상존하는 죄의 결과가

비록 내 곁에 상존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 하여 숨기만 하거나

안된다고 좌절하며

하나님과 멀리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들어내라는 것이시다.

아멘이다.

그것은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필생에 할 일이다.

 

 또한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에 맞는 '축복'을 주신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음도

모든 것의 종말은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대로 또 이어지신다.

희망이고 소망이다.

가인조차도 그냥 지켜주시지 않은가?

자유다.

 

그렇다.

죄는 하나님이 싫어하신다.

그러나 죄는 아담의 원죄 이후 허락된 부분이다.

하나님도 인정은 하신다.

그러나, 그 원죄적 욕구를 통한 사단의 자극은 '의지'로 피할 수 있다.

그 부분은 하나님께 우리의 '선택'에 맡기셨다.

선택을 선한 쪽으로 하는 순간 성령이 도우신다.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면 죄된 욕구는 엷어지고

우리의 자신감은 늘어나며

평화와 평강이 영혼에 커진다.

승리의 선택이 자꾸 늘어나면 ( 단 하나님의 뜻을 전제로 한 선한 선택.. !)

영혼은 성화가 되고

심령천국이 가까워지게 된다.

 

오늘 내가 할 일이다.

내가 싫어하는 부분,

특별히 자존심을 갉아먹으려는 옆의 자극들로

분노를 선택하는 것을 자제한다.

그리고 지난 실수와 실패로 인해 부끄러울 일은 없다 .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다시 시작하자.

 

 

주님.

내 귀하신 하나님.

늘 말씀으로 이끌어 오시는 아버지 하나님.

깨닫지 못하고 깨달았다해도 미련함으로 인해 잘 실행하지 못했던

제 죄...제 잘못으로 인한 어려움으로

묶이고 얽히고 ....서러우려 하기도 합니다.

좌절하는 마음이 오기도

육신의 생물학적 쇠퇴와 동반한 외로움도 있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으로 늘 깨닫게 하시고

다시금 돌리어 주십니다.

아..

그런 상황에서도 주님은 제게 다른 의미를 알게 하십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부끄러운 이 일생에도 불구하고

제 할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주님이 그래도 주실 그 상황의 축복,

이브의 첫아들 임신 같은, 살아갈 만한 다른 의미를 허락하실 것도 믿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게 좋습니다.

 

특별히 요 며칠 '죄'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십니다.

죄..

비교적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비단 나 뿐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어떤 소수들과

같이 나누어 그들에게

하나님 함께 하실 도구가 되도록 저에게 말하도록 하시는 것도 압니다.

 

주여.

제가 그 도구가 되면

그것 또한 제게는 살아있을 의미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제 조그마한 깨달음 ,

같이 나누려 할 때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실 수 있길 소원합니다.

내주여.

지혜도 허락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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