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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옷의 사랑[창3:14-24] 본문

구약 QT

가죽 옷의 사랑[창3:14-24]

주하인 2014. 1. 6. 09:37

태초에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조금지나

아담에게

이리 말씀하셨다

 

죽을 때까지

땀을 흘려야하는 것이

네 운명이다라고

 

그래

그게

주의 말씀이시라면

그렇게

그대로 받아 들이리라

 

아니

오히려

더욱 기뻐해보리라

 

그래도

가죽옷을 입히시며

도우시는

내 주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사랑을 믿으며

그리하리라

 

 

가죽 옷의 사랑[창3:14-24]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뱀으로 표현되는 '사단', 이 영적인 존재는

벌써부터 하나님께 졌다.

이긴 싸움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으로

그들은 '이브의 후손' , 우리 인간들.. 나.. 에게

평생 '발꿈치를 상하게' 하도록 운명지어졌다.

 

즉,

인간인 나는

죽도록 '사단'에게 물릴 숙명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살면서 '고난'은 필연이란 것이다.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그런 '아담', 남자인 

나에게는

평생 수고해야 할 운명이 지워졌다.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것도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죽을 때까지

땀흘려야 먹을 수 있다고 명령하셨다 .

당연하지 않은가?

남자의 숙명.

 

당연하지만 지칠 때가 된 4050, 베이비 부머, 은퇴에 몰린 나이에 속한게

우리의 힘없는 남자의 현실이다.

그래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라는 표현이

그리도 가슴에 오는지 모르겠다.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하나님, 그 지고 지대하신 분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그 절대 배반자인 그들 아담과 이브를 위해

원죄적으로 죄인인

인간 주하인을 위해 ^^;;;

그래도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부끄러움은

하나님이 원치 않는 '죄된' 감성이고

비록 그들이 불순종한 괘씸함은 있으시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리고 더욱 가죽옷이 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에 대한 조금의 깨달음은

그 분은 있는 그대로,

상대를 상대의 감정대로 맞추어 사랑해주신다는 것이시다.

 

 즉, 부끄러움은 본질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품은 아니지만

그 부끄러움이 '사단'의 영향으로 어찌되었든 그들의 품성에 자리잡게 되었으니

하지말라.. 고 제재하고 벗은 대로 쫓아버리시면

그들, 아담과 이브가 겪을 그 수치심의 아픔을

그 분은 짐작하고 계신 것이시다.

그래서, 옷을 지어 주시되

가장 좋은 '가죽옷'으로 그들의 수치를 막아 주신 것이다.

아.....

그렇다.

하나님은 '공감'해주시고 보듬어주시되

우리의 가장 부족한 부분을

가장 좋은 것으로

사랑하고 마련해주시는 분이시다. 

 

 

 연말 , 연초를 거쳐

깨닫게 해주시는 부분들이 있다.

'진정한 복',

예수님 십자가를 같이지는 의미로 고난을 기뻐 받아야 할 것은 알지만

일상에서 , 살면서 그것이 그렇지 못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던가?

그 고난을 기뻐하는 '훈련'..

그리고 그것이 그냥... 기뻐할 수도 있는 것이고

고난 중에 알게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기쁨이 스며나오는 것

그게 '복'이다...라는 것이다.

 

 

 말씀과 삶 속의 괴리.

영성의 부재.

 

그러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한

선택받은 소수 - 이 블로그의 정체성 ! - 로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올바른 '좁은 길'을 가는 자들에게는

위의 고민은

표현이 되든 , 되지 않든

마음 속의 갈등으로 자리 잡기에

믿지 않았을 때에 비교하여 그 삶의 무게가 훨씬 더 크다.

갈등이 크다는 이야기는 평안이 덜하다는 이야기고

그 평안이 덜함은

하나님을 옳게 믿는 자의 평강 에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니

자꾸만 더 혼란은 가중이 된다.

 

그렇다.

그러기에 초장에 열심을 보이던 많은 열정적인 신앙인들이

자꾸만 차가워지다가

냉소적인 기독교인으로 바뀌고는

선데이크리스찬 ,

심지어는 생각이 많은 , 지식이 많은 자들은

'다원주의'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안타깝지 않은가?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히 나와 있다.

' 세상의 작은 자들을 통하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분명히 예수님의 열두제자는 '어부 '출신의 상대적 빈곤층이었다.

선택받은 자는 분명히 '소수'다.

엘리야 시절의 남아 있는 자들은 '칠천'의 소수였다.

어려운 시절에는 눈에 보이는 자들은

다 '타락한 선지자들 뿐이었다.

 일제시대에는 신사참배하는 목사들이 아주 많았다.

 

그것......

고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필연임을 보이기 위함이시다.

하나님의 길은 '좁은 길'임을 말씀하시는 것이시기도 하다 .

 

 오늘 말씀은

그런 어려움, 사단이 발뒤꿈치를 무는 것은

아담과 이브의 원죄 때문에 필연이란 것이다.

그러기에 고난과 고통을 피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금으로 도배하고 옥석으로 치장을 하고

구주 궁궐에 살던 황제들도 고난이 없던가?

자객이 두려워 군대로 칭칭 그들 주위를 동여매게 하고 있다 .

S그룹의 L 회장님은 행복한가?

형제의 난도 모자라

세계를 상대로 매일 가슴조리며

죽어갈 나이의 지금에도 '경쟁'을 외치고 있다.

......

 

나.

이야기를 진행하다 곁길로 나간 것 같다.

잘 나가던 信行一致의 내 삶의 패턴에 올 연말 부터 제동이 걸리면서

예상치 못하던 급변이 있다.

전후 좌우 위 아래.......

내적 외적.......

모두 도전이 된다.

내 편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가장 힘들어질 것은 당연히도

아.. 하나님이 여기까지.. 라고 생각하며 강하게 나왔는데

혹시.................내 착각..........이라는 의혹이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을 통해서 계속 깨닫게 하신다.

진정한 복..

고난을 기뻐함을 자연스레이 인정하게 되는 것.. 그것의 훈련...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이겨 놓은 (보라 , 사단인 뱀이 하나님께 받은 저주의 숙명을... !! ) 싸움을

이제는 믿음으로 하나하나 걷어 들여야 한다.

 

아담과 이브에게

삶 속에서 받을 고난의 숙명을 이야기 하신다.

그렇다.

난.. 고난이 숙명이다.

거부하고 당황할 이유가 없다.

잠시의 쉼은 광야의 반석이고 만나와 메추라기일 뿐이다.

고난을 몸부림치며 피할 이유가 없다.

그냥 받아 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고난을 피할 길이 없다.

십자가로 짐을 져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지 않고는

어디에도 이 끝나지 않을 고난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물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는 길 밖에 남은 것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는

모든 것이 길이 되고 이유가 된다.

그것을 말씀을 통해서 다시한번 말씀하신다.

 나..

다시한번 고난을 받아 들이길 권고하시고 계신다.

아멘이다.

지쳐 힘빼고 주저 앉기 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힘을 내길 원하시는 것이시다.

 

그리고 다시 되풀이 마주할 본질적인 취약 부분을 마주하게 하신다.

'죄' 부분이다.

죄의 기본은 '사단'이다.

영적인 존재다.

그러나, 그 죄의 혀낼름에 반응하여

그 거짓에 동조하는 순간 죄는 내것이 된다.

내 것이 된 죄는

'부끄러움'을 유발한다.

부끄러움은 '원망'과 '분노'를 가져오게 하고

결국 남 탓으로 돌리게 하는 인간의 결점을 자극한다.

그것은 '손가락질'하게 하는 '비굴함'도 가져온다 .

 수치심으로 인하여 그들은 두려워진다.

그래서 그들은 '숨어있게 되고'

자신을 가리게 된다.

 

오늘 하나님은 그 본질에 대하여 다시한번 묵상하게 하신다.

나.

내 삶의 고난.

그 고난의 근본에

' 분노'와 '원망' 이 깔려 있다.

그 분노를 받아 들여 속절없이 휘둘리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

세상을 힘있게 살지 못했다.

그런 내가 싫고 힘이 들어 ' 무기력'하게 살아 왔다.

하나님은 나를 십자가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하시고 인도하시어

말씀 가운데 성령의 은혜로 인도하시어

하나하나 내 속의 거짓들을 벗겨 내게 하시고

그런 과정은 내 달란트를 명료하게 하시어

삶의 변화가 동반되게 하시는 결과를 가져오셨다.

지금껏..      

그러다가 다시 내외의 동시다발적인 변화로

근원적인 문제에 다시 접하게 하신 것이시다.

 

그러나.. 이제는 내 반응이 좀 다르다.

더 말씀에 집중한다.

도전에 대하여 고난은 크되

고난에 대한 내 내성이 커져있다.

그러면서 '진정한 복'에 대하여 한걸음 다가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난 하나님이 지금껏 그러하셨듯

더 잘 인도하실 것이 믿어지려 한다.

감사하지 않은가.?

문제는 그 시간의 '항시성恒時性'이다.

그러나 그리 될것임을 믿는다.

믿어진다.

 

또한 , 하나님은 '가죽옷'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게 하신다.

깊은 부분...

그 수치심을 자극하는 원리에 마주하게 하신다.

즉.. 얼마전에 굴에 숨은 '다섯왕'을 묵상하게 하신 것처럼

핵심 신념,핵심 망상적 원류에 대하여 부딪치게 하신다.

그러면서 '수치와 부끄러움'에 두려워 하지 않을

가죽옷으로 나를 가장 아름답게

내 결점을

내가 원하는 대로

가려 주실 것임을 보여주신다.

그렇다.

없애주거나 처음으로 거꾸로 돌리시지는 않으신다.

그냥 받아 들이고 감싸고 위로해주시고

당신의 사랑을 나에게 베풀어 보이신다.

 

이제 오늘 할 것이다.

고난은 필연이다.

받아 들이자.

내 죽을 때까지 노력하여야 함은 숙명이다.

'그러다 죽더라도 주님의 뜻이시면 그러하리라.

괜히 '이민 '갈 생각.. 포기하리라 ^^*

(지난 주말 .. 새로운 길을 발견했었다.

 의사로서 기술이민 가능한 나라... 서핑.. )

또한 내 부끄러움을

더 깊이 묵상하고

날 가죽옷으로 감싸시는

내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보내리라.

더 사랑으로 이웃을 바라보리라

나와 같은 원죄의 결점 투성이 사람들이다.

어디에 온전한 사람이 있겠는가?

소수의 나를 기뻐하자.

다수의 혼란은 하나님이 원하심이 아니다.

 

 

감사하다.

 

 

주님.

생각이 다시 정리 됩니다.

고난이 필연이라 하시니

제 주위에 지금 펼쳐있는 것들

기쁨으로 받아 들이겠습니다.

아픔이 한번 씩 전갈처럼 불뱀처럼 저를 물고들지만

그게 인류의 보편의 아픔이라면

그리 받아 들이겠습니다.

몸부림 치기보다

십자가예수께 가지고 나가

주님과 같이 고난에 동참하게 된 것을 기뻐하리다.

이미 이겨 놓으신 싸움에서

내 죄의 결과로 가져와진

수많은 고난 중에서도

부끄러움 , 분노, 두려움..........등 다시 주님 앞에 가져옵니다.

주님이 이미 발뒤꿈치를 물도록 허락하신

사단을 명하여 그리하신 것이십니다.

깨닫고 이해하는 지혜를주시되

매사에 잘 적용하고 받아 들이게 하시고

그럼에도 가죽옷으로 감싸주시는

하나님의

그 나에 맞추신 맞춤옷의 사랑을 기뻐하게 하소서.

더믿게 하소서.

다 간절히 사모하고 사랑하고 자랑하게 하소서..

아픔을 자랑하게 하소서.

그 아픔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눈물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소서.

가죽옷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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