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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감사[대하16:1-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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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감사[대하16:1-14]

주하인 2013. 7. 30. 10:06

 

 


1. 아사 왕 재삼십육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한지라

 아사왕이 구스의 환란 후  20년간을 편히 지낸 후

이스라엘이 공격해와 '유다' 내 '왕래'를 못하게 막는 일이 벌어진다.

 

 

2. 아사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내어다가 다메섹에 사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그러자, 그 본받을 만했던 아사는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인간' 아람왕 벤하닷을 찾는다.

 

 

5. 바아사가 듣고 라마 건축하는 일을 포기하고 그 공사를 그친지라

그래도,

바아사가 물러간다.

 

 

6. 아사 왕이 온 유다 무리를 거느리고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운반하여다가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아사왕은 잘한 일인것 같이

미스바 건축한다.

 

 

7.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이때, 선견자가

영적 나태를 질타한다.

 

 

12.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 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하지만 아사는 듣지 않고 오히려 선견자를 가두고

심지어는 병이 들었을 때 조차

하나님보다는 의원을 먼저 찾는다.

그리고는 결국 , 그도 역사 속에 스러진다.

 

 

 아사왕이 구스 왕의 환란 때 보인 올바른 믿음으로 인하여

20년간의 안정을 누린 후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으면서

' 유다백성과의 단절'이 오면서 그의 모습이 달라졌음을 보인다.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는다.

인간을 먼저 찾는다.

주변을 먼저 돌아보면서도 그리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아사의 태평성대 이후의 태도를 보면서

아주 익숙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조금만 편안해지면 즉시 나태해지는 내 모습은 아니던가?

 

 몇가지 영적인 도전을 받는다.

 

 우선, 끝까지 평안함은 없다...는 것이다.

연단은 죽을 때까지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으로

특별히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되는 나날이 진행되다가

갑자기 다가오는 고난은 '저주'라 생각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늘... 감사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감사할수있도록 깨어 잇어야 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무조건 선이라는 것이다.

 나.

그렇다.

흔들릴 뻔 했다.

하나님이 그러나 말씀으로 상황으로 사람으로 깨닫게 해주셨다.

그래서 얼른 힘을 내고 있다.

 

그리고, 인간관계의 단절은 연단 중의 큰 연단이라는 것.

오늘 묵상에 형제 나라인 이스라엘이 공격해와

'유다 '백성과의 관계를 막아 '왕래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여준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결과로 나타나는 외로움이 순간순간 가슴을 치려 한다.

그것.. 하나님이 말씀으로 비추어 주시고 계시다.

 

 셋째,

환란 시 우선 주님을 먼저 의식해야 한다.

어떤 일에도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다.

손쉽게 의지할 수 있고 눈에 뜨이는 인간들의 도움,

아는 자를 의지함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는 있겠으나

하나님의 뜻을 늘 생각하고 '기도'하고 방향을 잡아야 함이 옳다.

 

넷째

사람의 손으로도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댓가가 필요하다.

열이 날 때 해열 진통제로 가라앉힐 수는 있다.

하지만, 근본적 치료가 동반되어야 하기에

의사가 필요하듯

환난은 '문제'를 들어내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시고

그것을 피함 보다는

문제 발생시 주님 앞으로 나가 먼저 아뢰고

원인에 대하여 알아갈 노력이 필요하며

대책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나 지혜를 구함이 필요하다.

 

다섯째,

어찌 되어도 세월은 흘러가고

처절한 몸부림에도

삶은 끝나고 영원속으로 묻혀지며

그 뒤를 이을 또다른 스토리의 주인공들이 되풀이 할 뿐이다.

그 영원의 쳇바퀴를 벗어나

영생을 누림은 오직 하나님과의 동행 뿐이다.

하나님이 진리다.

우리 인생의 웃고 욺이 중심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불현듯 가슴이 아파오려한다.

내 젊을 시 잘못 생각으로

내 주위에 서로 기쁨으로 교류해야 할 사람들이

멀리 떨어져 있음이 그렇다.

'단절'.

더 살아야할 나머지 인생의 기간동안

그 결과로 인하여 생길 수 있을 '외로움'들..

어쩔 수 없음을 알지만

괜히 가슴이 싸.. 해 오려 한다.

큐티집을 잡고 말씀을 드려다 보니

아사왕의 오랜 편안함 끝에 원치 않은 '왕래의 차단' 부분이 눈에 뜨인다.

하나님이 벌써 아시고 저러신다. ^^*

내 세세한 감상 (感傷) 하나하나 까지도 어루 만지시고

그것이 '害' 로 갈 것을 미리 만지시는 ...

하나님의 세밀하신 배려시라 느껴진다.

 

그러면서 아사의 깨닫지 못함에 대비하여

오랜 평안함 이후의 고난이

오히려 '감사'함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훈련과정임을 깨닫게 하신다.

정리하는 지금 이시간 가슴 한구석이

현실상황과 맞지 않는 따사로운 기쁨의 마음으로 차옴으로

살아계심을 느끼게 하신다.

 

그렇다.

나..

그리 뛰어난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누구에게 열정적으로 나타내보일 업적은 없으며

그렇다고 성스러운 믿음의 그릇도 되지는 않지만

일상에서 이렇게 이렇게 인도하심을 보이시는 것이

감사하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그 특성과 환경에 맞게 인도하심이 느껴진다.

어쩌면 나를 이토록 잘아시는 가?

나의 부족함을 이리도 잘 아시고

되돌릴 수없는 어리석은 과거의 흔적을 이리 이리 어루 만지시는가?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영적으로 더욱 굳건하게 하실,

기회를 허락하시던가?

힘들지만 감사하다.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은 '왕래를 멈추게 '하는 연단을

형제나라 사람들이 도발합니다.

바라기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의 감동아래서

그냥 그냥 살다가 부르심 받고 하늘 나라에 가고 싶지만

아사의 고난 같은 고난들이 또 되풀이 되려 합니다.

주님.

그럴 때 부디 간절히 바라기는

오히려 '감사'로 저의 마음을 바꾸시고

그때 ,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바라보게 하소서.

쉽지 않은 도전인 줄 압니다.

영적인 나태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매일 말씀으로 절 인도하시는 하나님.

저의 무지를 매사에 깨우사

주님 부르실 때까지 주님 동행하게 하소서.

또한, 인생이 자꾸 검은 발톱을 드러내려 할 때

주님이 아시오는

제 상태의 한계가기 전에

미리 깨닫고 돌이키게 하소서.

우리 주여.

제 가정을 지키소서.

제 자식들.. 그리 아파하지 않게 하소서.

어서 회복시키고 당신의 시간에 맞추어 준비하는 자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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