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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그곳에도[대하28:1-1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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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그곳에도[대하28:1-15]

주하인 2013. 8. 17. 09:39

그곳에도

꽃은 있었다

온통 녹색으로 흔들리던

작은 잡초 사이

그곳에 수줍은 듯

보랏빛 두송이 꽃이 있었다

 

그곳에도

희망이 있으리라

온통 어두움으로만 보이던

내 생각의 얽힘을 뚫고

희망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곳에

하나님의 뜻이 향하시고

그곳에

하나님  말씀이 있으시기에

그곳에도

소망이 있음을

나 이제 기대한다

 

 

 

9. 그 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이름은 오뎃이라 그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영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에게 진노하셨으므로 너희 손에 넘기셨거늘

    너희의 노기가 충천하여 살륙하고

 사마리아.

선민으로 선택되었다가 하나님을 강력하게 불순종하며

타락한 백성의 상징인 '사마리아' .

그곳에도 '선지자'는 있었다.

바른말 하는 선지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선지자가 있었다.

 

세상엔 '절대'라는 게 없다.

그 절대가 없음을 '확신'처럼 착각하는게 내 부정의 메카니즘의 습관이었다.

그래서 난 쉽게 포기한다.

아니.. 이래 이래서 안되니 그걸 하는 것은 망하는 일이고 미련한 일이야... 가

아주 오랫동안의 습관이었었다.

그것은 삶을 그리 힘있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고.. 

 

 하지만, 하나님은 다양한 역사를 내게 가져오시었다.

생각을 바꾸고

가능성을 보이게 하셨다.

다양한 변화 중 오늘 또 다른 하나,

정말 깊은 부분에 대한 생각이다.

이 부정적인 경향

세상을 바라보는 눈.

우주관, 세상관, ... 그 '觀'에 대한 문제다.

 

 오늘 사마리아 , 그 버려진 나라, 실족한 나라..로 생각되는

"그곳에"

선지자가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자가 남아 잇었다.

어쩌면 ,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최소한 내 뇌리에는 , 내가 그 속에 살았었다면

'사마리아'는 영적으로 죽은 나라라 아무 희망도 없는 나라........라

부정적으로 단정지었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못하게 바라보는

나의 이 어리석은 '생각의 메카니즘'을

하나님은 말씀으로 떠 보시는 것 같다.  

 

 

11.그런즉 너희는 내 말을 듣고 너희의 형제들 중에서 사로잡아 온 포로를 놓아 돌아가게 하라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한지라

 그 '예상못햇던 ^^;; 선지자' 께서

형제 나라 유다를 초토화 시키고  승전하고 기쁨에 들떠 돌아오던

사마리아 전사들을 향해 일갈한다.

 

내 부정적인 메카니즘에

저런 상황에서 저런 소리가 들릴리가 없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지켜질 것이란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다.

 

 

12.에브라임 자손의 우두머리 몇 사람 곧 요하난의 아들 아사랴와 무실레못의 아들 베레갸와 살룸의 아들

   여히스기야와 하들래의 아들 아마사가 일어나서 전장에서 돌아오는 자들을 막으며

 '선지자 ' 뿐이던가?

몇사람.. 아사랴 등의

또 예상치 못하던 인물이

전장에서 돌아오는 자들을 막아서는 '행동'을 한다.

 

마치..

일본, 그 회개와 반성이 없는 나라에서도

'위안부의 날' 제정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13.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포로를 이리로 끌어들이지 못하리라 너희가 행하는 일이 우리를 여호와께

     허물이 있게 함이니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더하게 함이로다 우리의 허물이 이미 커서 진노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하매

 그리고는 '회개'를 외치고

유다 포로를 돌려보내는 역사가 일어났다.

난.. 절대로 생각지도 못했다.

이러한 결과를 .. .

 

 

그곳에도..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다.

 

오늘 메시지, 나를 향해 하나님이 주시는 레마는 그런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거의 많이 줄었지만 늘 부정적인 결과를 생각하던, 

그래서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혀가던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시는 의미.

그토록 아닐 것이다...라 생각하는 그곳에도

하나님의 사람은 있었고

그의 외침에 분연히 몇사람이 일어나 행동을 개시했고

그들의 소리에 그 타락한 사마리아 사람들 조차 그대로 순종했다.

 

 믿음.

긍정.

자아와 하나님의 소리와의 구분.

망각과 마취와

믿음으로 인한 '평안'과의 구분이 힘듦.

 

그 사이에서 아직은 조금 방황하고 있다.

그 이야기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지금까지의 시간동안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되어 잇던 내 기본 부정 메카니즘의 바탕이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직도 늘 나를 흔들려는 부정의 소리들이 있다.

'역시 난 안되어.. '

그리고는 그 이유로

'사마리아에는 선지자가 나올 수 없고,

선한 사람은 없으며,

하나님의 명령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나라'라  전제하듯이 마음의 위로를 삼는다.

"이래이래서 안된다.' 

그것은 그러나 가만히 보면 '하나님의 소리'는 아니셨다.

모두 오래된 내 과거의 산물이였다.

'넌 .. .너만 오면.. '

그것을 받아 '난 나쁜... 재수없는.. '하고 수없는 넘어짐 속에

잘못된 관념을 형성시키고

' 저들 속에서는 저런 것이 나올수 없어' 하고 일반화시켜서 정리해버린 것인 탓이다.

어쩌면.. 긍정적으로 잘 자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랬다.

 

이제 하나님을 영접하고 그 큰 사랑으로 많이 녹아 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영혼의 오류를 하나하나 바꾸어 간다 .

난.. 그리 선택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모든 생각을 잡기로 결심했다.

그 후로 내 생각은 점차로 바뀌어 갔고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10:20)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이제 조금 남아 있는 오류들을

다시 하나 또 발견했다.

'일반화 시킨 부정적 결말'에 대한 ...

오랫동안 말씀으로 약속하신 것도

난 '이래 이래서 안되.. ' 하고 내 생각의 틀을 막아 버리고

이해되는 것만 받아 들여 왔었을 지 모른다.

그래서 더 깊이 하나님이 내 삶의 영역에서 역사하심을 스스로 막아 왔던 것이다.

 

이제 , 주님은 내 허튼 판단을 내려 놓으라는 것이다.

자식들..

그 아들들의 장래도 내 안되는 판단으로 예단해서 막았을 지 모른다.

어찌 아는가?

하나님이 하시면 , 내 인간적 예후의 예측을 늘 넘어서지 않겠는가?..하신다.

그게 감사하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절망의 상황, 그곳에도

하나님은 '선지자'와 '사람'을 남겨 놓고

변화의 여지를 남겨 놓으셨다는 말이다.

절대로 희망을 놓지 말고 믿음을 버리지 말라.. 하신다.

감사하다.

 

 

주여.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깨닫습니다.

희망을 내려 놓지 않겠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시니까 기대하는 것이고

상황을 보지 않는 것임을 다시한번 깨달아가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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