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뿌리고 뿌리고 뿌리고 나서야[대하29:20-36] 본문
20.히스기야 왕이 일찍이 일어나 성읍의 귀인들을 모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일찍이 일어났다.
왕이.. .
여호와의 전에 올라갔다.
왕이 되면 생각이 많고 책임감이 그를 누르는게 말도 못할 것이다.
그때 '왕'은 두가지 선택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적극'이냐 '소극'이냐..다.
즉 타개냐 도피냐다.
타개하기 위해서도 다시 두가지로 나뉜다.
'주위 나라' 즉 , 쉬운 선택을 택하느냐
'하나님' 만.. 바라는 '좁은 길'을 선택하느냐가 또 갈림길이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선택은 '좁은 길'이다.
히스기야 님은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 성전으로
사람들을 모아서 나갔다.
그 마음의 '안절부절함' 이 읽혀지면서도
그의 옳은 선택이 '기쁘게 ' 읽혀지는 아침이다.
내 아침이 그랬다.
나도 그래야 할것을 첫 구절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22.이에 수소를 잡으매 제사장들이 그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리고 또 숫양들을 잡으매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또 어린 양들을 잡으매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그 히시기야님이 이러신다.
제단에 피를'뿌리고', '뿌리고', '뿌리고' ...
예수보혈.
그 피로 뿌리고 뿌리고 뿌리는 ...
그 열심과 올바른 방향만이
우리의 마땅히 할 일이란 것이다.
이것.
예수의 보혈을 묵상하며
뿌리고 뿌리고 뿌리고.. 를 연달아 발하면
마음이 이상해진다.
예수님.
십자가 .
보혈.
생각만해도 머리가 무거워지려 한다.
하지만, 그 무거움을 직접 지신 예수님을 생각햐면 감동이 올 수 밖에 없다.
그렇다.
우리는 드려야할 '빚'이 있다.
보혈의 빚이다.
그 보혈은
이 빛나는 세상, 이 번쩍이는 세상에
도저히 감각적으로 맞지 않는 듯하게 느껴져
의지적으로 다가서지 않으면 늘 한걸음 떨어져 있는 개념 같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제사'를 모조리 폐한 대신
그 아주 조그만 버거움을 물리치고
예수 십자가 앞에 다가오길 기다리신다.
시흥에서 이사오기 전,
아내는 11시 기도를 시작했다.
나도 가끔 끼어 기도를 도웁기로 했고
작년에 유럽기차여행 중 , TGV 협약이란 이름을 붙히며 웃으면서
우리는 그 결심을 같이하기로 했었다.
그리고는 이 어려운 부동산 대란의 상황에
하나님은 드디어 우리를 이곳 본집 근처로 이사오는 '역사'를 하셨다.
그러자, 내 게으름은 또 도졌나부다.
예수 님 앞에 다가서야하는 당위성을 너무 잘 알면서도
기도 시작할 때마다 '결단'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그것을 말씀하신다.
그저 .. 뿌리고 뿌리고 뿌리고 .. 해야 한다.
나의 결단은 그냥 그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는 것 뿐이다.
그 주님의 깊은 사랑의 결정이신 보혈이
내 영혼에 뿌려지길 기대하며
힘을 내야 한다.
29.제사 드리기를 마치매 왕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다 엎드려 경배하니라
제사드리기를 마치매.. 라 했다.
그렇다.
예수 앞에 나오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
힘들이지 않고도 예배를 참석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주님은 '다 엎드리길' 원하신다.
마음과 몸을 다 바쳐 엎드리길 원하신다.
힘들지만, 뿌리고 뿌리고 뿌려지는 예수의 보혈을 사모하길 바라신다.
간절한 기도를 바라신다.
30.히스기야 왕이 귀인들과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령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그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하니라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예배가 아니다.
진정한 예배는
뿌리고 뿌리고 뿌리고 나서..
주님이 허락하시는 '즐거움'이 진정 '예배'의 시작이 될 것이다.
찬송하게 되어야 한다.
찬송을 예배적으로 , 의식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다.
찬송은 즐거움으로
'나와져야 '하는 것이다.
'감동이 서려야 하는 것'이다.
그제야 '몸이 굽어지며 ' 진정한 예배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나.
하기오스 예배에 설 때마다. ..
힘이 많이 부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회복'이 잘 안되는 것이다.
고뭇줄이 늘어났다가 쉽게 탄력을 회복하는 것은 젊은 고무줄 일 때만이다.
수술하고 , 많은 환자 - 갑자기 외래 환자가 많이 늘었다.. 감사하게 .. 이 불경기에 .. - 를 보고나서
수년 전까지는 전혀라고는 아니어도 피곤함이 덜했다.
지금은 '많이 ' 힘들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그만할까.. '라는 유혹이 들지만
난.. 하기오스 찬양자의 자리에 내 잘난 맛이나
내 자아의 만족도를 점검하는 자리로 서진 않는다.
그것.. 처음의 동기는 되었다.
하지만, 언제 부터인가
내 달란트를 하나님을 위해... 라는 개념으로 서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난 큰 감동으로 내 변화가 이루어졌다.
이제.. 정말 남 눈치 안본다.
하나님 만 바라본다.
말씀에 근거한 내 마음의 변화를 그 찬송으로 느낀다.
그때마다 '나와 하나님 만' 있음을 자주 느낀다.
진도사역.
십수일전에 ' 의술' 달란트 가진 자로서 하루 내려갔다 온
그자리에서 '찬양'을 가지고 많은 칭찬을 들었다.
'으쓱'은 전혀 안했다.
그러나, 그들이 내 감동을 그대로 전해 받았고
마음이 열려서 너무 좋다는 이야기가
하나님의 칭찬으로 들렸다.
그렇다.
난. . 예배를 '진정'으로 드릴 주 아는 자다.
어려울 때 '피 뿌려 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의지로 나간다.
그리고 예배할 결심으로
없는 힘을 발하면
하나님은 감동으로 내 영혼을 깨우시고
내 찬양의 목소리가 '한없이 올라가게 하시고 ' 한없이 포근하게 하신다.
그 흐름을 어루 만지심을
난 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 하게 되어' 나의 즐거움에 동참하게 됨을
난 내 사명처럼 깨달아 간다.
그리고는 난 .. 진정한 예배자로 찬양드리고 있게 된다.
31.이에 히스기야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제 스스로 몸을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마땅히
나아와 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전으로 가져오라 하니 회중이 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오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또한 번제물도 가져오니
난.. 피곤함을 잊고
참으로 하나님 앞에 잘 섰다는 위안을 받는다.
그 기쁨을 위하여
하나님은 날 찬양자로 세우셨다.
35.번제와 화목제의 기름과 각 번제에 속한 전제들이 많더라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
참으로 감사하다.
하나님 안에서의 '선한 흐름'을 난 살아내고 있다.
'순서대로' .
난 이 순서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하나님은 흐름이시다.
성령이 내 안에서 흐르시고
그 흐름은 다시 하나님 보좌 앞으로 순환되어
내가 알지 못하는 깊은 탄식으로 '직고'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또 내 안에 그리 그리 역사하고 흐르시면
난 그 흐름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흘러간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
36.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이다.
이 말이 참 힘이 된다.
이제 내 나이에
나를 괴롭히는 생각 중의 하나는
가끔이지만 ' 내 나이에 ' 무슨 도전을..
' 이 경제 환경에 어떻게.. '
' 저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 다.
합리적이라 생각되는 생각들...
아침에 묵상할때,
히스기야님이 절대절명의 마음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으로 만 '승부' 를 볼 생각으로
아침 일찍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향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상징되는 '피'를
뿌리고 뿌리고 뿌리는 .. 열심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세상적인 방법을 택하거나
세상적인 방법과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을 병행하는 꾀를 부리지 않고
처절히도 하나님 앞에 나갔던 것이다.
미련할 정도로..
그때 유다의 상황은 아하스 왕의 어리석음으로
솔로몬 왕국의 부요함을 '전설'처럼 들어가며 패망하여 가고 있는 형국이었을 것이고
'의식있는' 히스기야는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의식없어 보이는 ' 미련한..^^;; . ..하나님 매달리기를
대책없이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순서'가 없는 일이 아니었다.
순서가 그리되어야 했다.
세상의 지혜는 그리하는 게 엉터리지만
하나님은 그리하길 바라신다.
하나님은 우선 형식을 배우길 기다리신다.
그 형식을 열심을 내길 기다리신다.
그제야 그 예배의 형식이 가라앉고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 사람의 영혼'에 즐거움으로 채우게 하시고
즐거움은 다시 헌신으로 이어지게 하신다.
그 헌신은 하나님의 예비하시고 기다리시던
결국..
즉 , 축복으로 이어지게 하시는 것이시다.
신명기에서
'인생은 불뱀에 쏘이는 광야의 고통이지만,
그럼에도 반석의 물과 만나를 통해 피할 길을 주시면서도
낮추고 낮추고 또 낮추심은
겸손하여 주님이 보시기에 진정 겸손해질 때가 되어서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하여 그러신다 '하시지 않던가?
그게 오늘에 나오는 묵상 구절과 일맥상통하게 느껴지고
내 적은 믿음생활의 시간에 걸쳐 (15년 ) 깨달아가는 원리가 아니던가?
하나님은 기쁨이다.
기쁨이 되기 위하여서는 그 기쁨을 사모하여야 한다.
기쁨을 사모하는 자만이 시작을 할 수 있다.
'보혈'을 뿌리는 시작.
예배를 생활 속에서 드리는 시작.
그 시작은 '결혼생활' 속에서도
'직장 생활 속'에서도
자녀와의 관계 속에서도.. 어디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그게 흐름이고
그게 삶속에서 피를 뿌리고 뿌리고 또 뿌리는 행위다.
그제야
하나님은 즐거움으로 우리를 바꾸시고
결국 '축복'을 내리어 주신다.
참으로 감사하신 내 주님.
하나님은 그러하신 분이십니다.
기도하게 하기 위하여 어려움을 허락하시고
기도하는 게 진정한 기쁨임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모든 인생의 환란과 고통마져 눈물로서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우리가 그럴 때 힘을 내서 어서 주님 십자가 앞으로 다가가
보혈을 뿌리고뿌리고 또 뿌릴 때
인생은 급격히 변하고
우리의 태도가 삶속에서 흐르게 될 것이게 됩니다.
주님.
걱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기도하니 걱정을 내려 놓겠습니다.
주님이 그것을 위하여 막으셨던 현상을
그저 기대로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우리 주 .. 예수시여.
이 미련한 자.
다시금 또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이리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매일 매일 주님의 감동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행운자.. 주하인
주님께 머리숙여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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