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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선교 일상의 순교[행16:16-4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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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선교 일상의 순교[행16:16-40]

주하인 2024. 6. 5. 06:44

부제)기도와 찬송과 맡김과 직분의 의미   

퇴근 후 행하던 길목의 나

 

또 하루를 그리 흘려 보냈다

그래 흘려 보낸 것 같지 그리 보냈다

아무 일도 없이

아무 이벤트도 없이...

 

하지만 돌아보니

말씀에 근거 성령에 의거

입을 열어

내 할 수 있는 증거를 시도했던

또 하루 이긴 했다

 

그래서 인가

퇴근길 석양에 비쳐지는 내 그림자가

그리 쓸쓸하거나 허무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난

이 땅을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시선을 인식하려

매일 노력하고 살아내어 왔음이다

이 나이까지...

할렐루야다

 

오늘 바라올 것은

아니 그리하라 말씀하심은

그러함을 더 하거라

기도와 찬송으로 더 그래라

세상의 다가올 무게

어쩌면 아직도 남아있을 지 모르는

옥의 무게를 끊어내라

 

그리함으로 

세상과 너에게 영향을 미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더 드러내라....하심같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모든 일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네 믿는 자들에게는 당연히 모든 '삶'의 행태의 중심이

'기도하는 ' .. 주님과 관계된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다 생기는 '세상'과의 접점,

'귀신'들린 자를 기회로 큰 이익(세상의 것에 국한 된 이익은 '귀신'의 영역이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 세상의 권세를 허락받은 자들...이 유한한 물질계에서의 이익만을 유일한 사는 이유가 되는 ...ㅠ.ㅠ.. 다시 정신 차리자. )'을 얻는 자들과의 

어떠한 부딪침이 있게 되어 있다. 

 

 이땅을 , 이 물질계를, 이 인생광야를

구원받은 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숙명.. 말이다 .

 오늘도 또, 

지금 말씀 묵상을 마치고 난 또 세상에 나간다. 

 기도를 마치고 

세상과의 접점을 마주할 때 

'귀신으로 큰 이익을 보는 자들'과 어쩔 수없이 

마주할 수 밖에 없음이다.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때로 그 상황들은

'묘한' 상황을 연출 할 수도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비수'같은 칭찬이 

으쓱하게도 할 수 도 있지만

결국 그들, 세상에 발을 딛고 정신을 놓침은

찔릴 수 있는 위험성을 동반할 수 있음이다.

 

 그리고 끝까지 그 위험성을 인내하고 참아내며 견뎌내던 바울께서

결단하고 '선언'함으로 쫓아낸 것 처럼

피할 수 없는 '믿는 자로서의 결단'의 시간도 당연히 올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럴 때 

우리는 당연하지만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도

우리의 정체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언해야할 때가 온다는 거다 .

 그럴 때 , 그래야 한다.

 

 그게

'일상의 선교'이고

'일상의 순교'이다. 

 

 나에게는 어떤 식으로 오늘 하루에 마주할 그러함이 다가올까?

 

 문제는

내가 '기도하며' 깨어있는가다.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귀신에 눌리고 

세상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지는 않는가 

세상이 '개 ㄷ교''하면서 손가락질 하는데 전전긍긍하지 말아야 한다. 

 억지로 드러낼 필요는 없다지만(아.. 절에서 찬송부르는 거를 결단이라 판단하고 세상의 흐름을 무시하고 드러내는 억지 보다 훨씬 큰 일상의 결단들이 있지 않은가? ㅠ.ㅠ...ㅎ)

다가오는 '세상의 질타', 

삶의 '한밤 중에' 

마음의 대비를 해야 한다. 

 

인내해야 한다.

기도하러 가는 삶의 과정에서 인내해야 한다. 

끝까지 견디기 힘든 경우가 오면 '선언'해야 한다.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는 다가오는 '한밤 중'같은 고역 속에서도

'기도'하고 '찬송' 해야 한다.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그래서 '이에 갑자기' 터져 나오는 '큰 지진'을 경험해야 한다 .

 

모든 것이 다 놀랠정도로 '갑자기' 터져나오는세상의 격변,스스로의 놀램,..을 통해서살아계신 하나님의 '벗겨주심'역경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그 어떤 것도 주님이 하시는 손길이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해야 한다 .

 

 어떤 상황,어떤 일도우리에겐 '순교'와 '선교'의 재료지만또 세상에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매개체'일 뿐이고개인적으로는 '회복'의 기회이기도 하다 .

 

 절대로 하나님은 그냥 두시는 법이 없음,

고난과 역경을 뚫고 

세상이 놀라는 이 땅, 대한민국의 실제는

'기도'하는 나라,

유사이래 '기독교의 자생국가'로서 유일한 

우리나라의 기도하는 선진과 

기도하는 숨어 있는 7천 선지자들의 

쌓여진 기도 응답(지난 주 우리 안양제일교회 최목사님의 설교주제였다.  당연하지만 감동인 말씀이다.   ...)의 결과다. 

 

  우리,

나 

믿는 자들은

'어떤 일도 선을 위함'이다.

고난이 유익이고

그 모든 과정을 다 배려하신 

철저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데 있음이다. 

할렐루야.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리고 그 마침내의 결과가 드러난다 .

 

'간수'와 그 가족의 '구원'.

이 작은 ,또하나의 구원의 역사를 통해 

또 얼마나 많은 '복음'의 씨가 주변으로 주변으로 흘렀을까?

그리고 그 구원의 씨의 뿌리가 

혹여 수천년전 '나'의 구원과 

맞다아 있지않을수 있다고 어찌 장담하겠는가?

 선교사님의 몇대 핏줄에 섞여 있지는 않았을까?ㅎ...

누가 아는가?

 

 각설하고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바울 님은 

마지막까지 아껴둔 '회심의 한수'(이게 마지막 수라 함은 하나님께 죄송한 표현이지만.... 그냥 세상적 관점에서도 , 이 작은 머리들로서 이해하기 쉬운 그림이라서 ..^^;),

회심의 일타를 

이들 '관리'들과 세상의 어리석은 존재들에게 날린다. 

 

'로마인인 자신들을 함부로.. '라는 질타.

 

멋지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드러내게 하기 위하여

끝까지 자신의 '자아'는 내려 놓고 

마지막 일타를 날린.... 

 

 오늘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렇다 .

 

 그 어떤 일도 '기도'로 시작된다. 

기도를 하지만 세상을 적극적으로 살 수 밖에 없는게 '인생'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인생'.. .

그 인생을 사는 '방법론'을 가르쳐 주심이다. 

 

목적이 '기도'고

수단이 '기도'와 '찬송'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함으로 세상을 이겨야 한다는거다 .

세상이 교묘한 , 아니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하나님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강권으로

'바울'들을 드러낸 것처럼

우리를 드러내며 칭송하는

그러나 조금 있으면 불편해질 세상의 과도함은

절제해야 한다 .

 불가피하게 세상과 마주할 밖에 없는 궁극의 상황이며

'단칼로 하나님의 편'을 선택하여야 한다. 

어떠한 일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누그러지는 '타협'은 피해야한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어떠한 하나님의 이유가 잇으심을

우리 스스로 깨달을 기회임도 

일상에서 알아채려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밤이 깊도록 

'옥' 안에서 

'기도와 찬송'을 한 것 처럼

끝까지 그래야한다. 

세상의 눈치를 살피지 말아야 한다. 

세상이 우리를 신경쓰게 만들어야 한다. 

미련한 과도함이 아니다. 

반드시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는 상황까지 가도

기도와 찬송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내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회개'하고 구원의 기회가 되고

세상의 영향을 미치는 자 되게 될거다. 

 

 그리고 나... 

지금 '의사'.

나름 이러한 방향으로 잘 끌고 오셔서

기회가 될 때마다

하나님, 예수님...이름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더 그래야 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그래야 한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그 직분을 최대한 이용하여야 한다. 

더 그래야 한다 .

오늘 '순교'와 '선교'의 마음으로 

최대한 겸손하고 드러내지 않지만

내 '로마인'으로서의 세상위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주님.

깨달은 바가 많습니다. 

이 일상에서 어찌 적용해야 할지요.

그러함에도 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제도 'JS kang'이라는 분,

'양보 ㄹ' 님

그리고 오래된 거래업체 사장님 '김ㅇㅇ'님에게 

그들이 좇던 싫던 ..

아 수술환자 승락서 받으려 온 ' 모'님(죄송하지만 이름이 기억이.. ^^;;) 에게 

예수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이제........

습관이 아니고 

내 '의무'가 아니고 

삶이 되게 하시고

말씀이 있으시니 '하나님의 뜻'이신 가운데 흐르는

제 인생의 방향이 되게 하소서.

 

일상에서 더 선교하게 하시고

더 순교하게 하소서.

주여.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무서우려 합니다. 

얼굴이 붉어지려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귀신들의 행태마져 

기도와 찬송으로 이겨내시는 

모본을 보이셨사오니

저 또 이겨내게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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