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평강,그것으로 족하다[단4:1-18] 본문
그래
비교할 것 없다
억지로 평안하려
그리함을 유지하려
애쓸 필요 없다
어차피 이세상
불완전하고
불안한 시험가운데
주님 안에 온전함이 어떤 것인지
연단 받으려 허락되어진
좁은 길인 것을..
주어진 나에 만족하고
그 모든것
하나님이 아니시면 가능치 아니한 것을
내 영혼 깊숙이 인정하게 되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매사 평강
매일 감사하며
살 수 있길 기도하며
오늘도 살아 내면 될 것을..
1.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리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
3. 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4.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느브갓네살.
세상에 거칠 것 없는 자의 변화무쌍함이
일견 다행이기도 하지만
또 언제 바뀔지 모를 초조함도 없지 않아 있을 수 있다 .
비록 그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나오고
그로 인하여 또 다시 삶의 평화가 따라오겠지만
그 마음이 또 언제 바뀔지 몰라
흔들리지 않을까?
그 평화가 언제까지일까?
아...
나, 주하인
흔들림 전문가가 ^^;
다니엘의 입장에서
느브갓네살의 저 조삼모사하는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휴우하는 다행스러움도 느끼지만
이 안정감이
또 언제고 표변할지 모르는 자 근처에서 산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런데
다시 '다니엘'의 입장을 묵상하게 하신다.
그 다니엘.
불가운데서
여러 목숨의 위협의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음을 느끼면서
그 내면의 '진정한 평강'에 대하여 다시한번 묵상하게 된다.
반면,
모든 것을 다 가졌을 '느브갓네살' 역시도
그 입에서 계속 '평강'을 이야기 한다.
자신의 궁에서 자신이 가진 위치로 인하여 '평강'을 누릴 때
꿈을 꾸면서 흔들렸다하고
그 꿈이 무섭고 두려워 '평강'이 없어져
그 평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리도 많은 패악을 부리며 '다니엘'들을 마주하게 된 것 아니던가?
그리고는 미련한 세상의 무지한, 헛 똑똑이 들의 극치의 모습으로
'금신상'을 세우고 모든 자를 경배시킴으로
자신의 '평강'을 유지하려 하던 것이고................
한편, 다니엘은
그 모든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만으로 인하여'
'평강' 그 자체에 머물고 있다 .
어떤 상황에서라도의 '평강'..
그게 '믿는 자의 본질'이며
그 후 수천년,
예수님 오시고 2022년 이상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인하여
주님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근본 이유가
본질상 '원죄적 존재'로서 가질 수 밖에없는
존재의 불안을 벗어나고자
그리하여 '평강' 한 삶을 희구함이
그 깊은 바탕의 동기가 아닌가 한다.
그것은
느브갓네살도
다니엘도.... 다 마찬가지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어떤 소리를 해도
존재적 불안에 의하여
그를 벗어나기 위하여
그리들 몸부림치다가
결국 죽어가는게 인생이다. ㅠ.ㅠ
이땅..
산다는게 무엇인가?
매일매일 마주하는 주변에서 이유를 찾아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사는 이유,
사는 동안의 '평안'을
잠시라도 보장하여 주는 대상이 없어
그리도 몸부림 치다가
결국 영멸의 시간으로 소멸되어 가는게
인생이란 존재이다.
오늘...
느브갓네살을 보는 다니엘의 시점에
나를 잠깐 대치시켜보며
나.. .
그래도 '평강'의 어떠함을 잘알기에
또한 다니엘 같은
하나님의 이 인생에서 보이신 뚜렷한 경험들을
비록 작게나마 공유하고 있기에
다니엘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고
그의 '평강'을 이해하고 그것이 믿어지지만
갑자기 표변하는 '느브갓네살 같은 의미있는 주변'에 의하여
또 순간 변하면 어떻게 하지 .. 하는 두려움이 없지 않아 있다 .ㅜ.ㅜ;
그런데.......
그게
어쩌면 날
'불안전문가^^;'로 만들게 된 동기가 아닌가 싶은게 느껴졌다.
세상은 당연히도 그렇다.
그들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위치에 가장 맞는 '평안'을 구하기 위하여
함부로 주변에 대할 수 밖에 없다
그들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 그 옳지 않은 흔들림이 두려워 도
피하고 비난하고 당황하고 해보았자
과연 어떤 유익이 있겠는가?
반면
다니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평강을 유지할 수 있음은
그러한 '세상'에 살게 허락받은 입장이 인생임을
그는 그냥 알아 버린 것이다.
하나님을 인식하고 사는 삶으로
세상은 그에게 어떠한 흔들림으로 다가와도
다 뜻이 있으셔서 허락되어진 상황이고
그러하기에 오늘도 또 '받아 들이고 '살아가는 것이다 .
그냥 그렇게 흘러 오면
그냥 그렇게 받아 들인다 .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뜻 가운데 있으니
또 기도하는 마음으로 받아 들여
최선을 다하는 입장으로 살아내는 것............
그 모든 것
주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게 하나도 없을 것이 당연하니
당연한 이 세상의 저러함에
흔들릴 일 무엇이며
분노할 일 무엇일까?
저 것, 저러한 일을 통하여 .
또 하나님은 내게 가장 선하신 것을 주시기 위한 이유일 것이고
그러함을 믿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다가올 주님 뵈올날이 내 앞에 오게 될 것을.. .하며
그의 마음은 하나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 맞을 것이다 .
나...
불합리한 일..
내 예상에서 벗어난 일을
참으로 견디지 못하고 흔들려 왔으며
그러한 상황이 예상되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도피하는
그런 성향이 있다 .
내 안의 평강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것이 두려워 하는 것..
그것 '불안'.
불안한 일이 생길 조금의 부조리함도 못이기는 것이
아주.. 오래 습관화된 내안의 문제였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느브갓네살 조차 '평안'이 없어
'평강 평강 .. '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평강을 위하여 타인에게 주어지는 그 '불안함'의 이유를 줌에도
그 엄청난 재미없을 일...조차
그냥 담담히 받아 내고
하나님의 역사를
그의 입으로 발하게 하는
큰 이유 하나 만으로도
매일을 살아야 할 분명한 동기가 되고
또한 느브갓네살 같은 세상의 조삼모사에도 불구하고
그냥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주어지면 주어지는 대로
하나님이 주시고 허락하신 일로 받아들이며
당당히
담담히
하루를 또 살아내는 것을
주님께서 다니엘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 같다 .
감사하다 .
주님.
저...
많은 일에 '불안'을 자주 느끼고
또 많은 일에 실망을 느끼며
내 평강을 조금이라도 흔들릴 일이 생기면
도피하고 피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게 너무 싫고 그를 통해 분하고 노하며
스스로의 흔들리는 모습을 발견함이 싫어서
많은 부분 손해까지 보는
그러한 버걱거리는 삶을 살아왓습니다.
주님 안에서 평강의 옳은 뜻을 알고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평강'이 있음을 이해하고 확신하게 되었지만
그 성향은 남아서 예상되는 일에 대한 미리 피함..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주여... 주 안에서 다니엘의 오늘처럼
그냥 받아 들여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나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
그게 내 삶의 이유고
그게 또 하루가 허락되어진 일이구나..
확신하고 기뻐하는 자 되게 하소서.
내 안의 '버거움'들..
어색함이 날 가로막으려 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온전한 '평강'을 위하여
차분히 기다리고 기대할 수 있게 도우소서.
말씀이 있으시니
특별히 오늘 더 그리하게 하소서.
'이것으로도 족하다.' ...
되니일 수 있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치려 할 때[단5:1-16] (0) | 2022.11.11 |
---|---|
그래도 그게 복이다[단4:19-37] (0) | 2022.11.10 |
분노의 불마져 끄시는 주님[단3:19-30] (0) | 2022.11.08 |
내 매일의 순교를 위해[단3:1-18] (0) | 2022.11.07 |
참으로 위대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단2:31-49] (0) | 2022.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