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분노의 불마져 끄시는 주님[단3:19-30] 본문
분노는
자신 뿐만아니라
타인을 태우는
맹렬한 불길이다
가장 위험하고 질긴 에너지
오직 하나님 만이
상처입은 자아를 만지시고
그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시고 고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여호와 라파 하나님
할렐루야
19.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이게 이해가 가지 않는가?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꿈을 해몽하여 격렬히 감동하며 높은 자리에 까지 앉힌
다니엘들을
얼마나 되었다고 또 급격히 '분이 가득하여'
잔인하게 죽이라고 명령하는 것 말이다...
그런 그의 심사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그 느부갓네살들 (금수저로 태어나 고생한번 해보지 못한 감정공유 능력 결핍, 자신의 세상에 갇혀서 타인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자들 ㅠ.ㅠ)을
저리도 '분이 가득'하게 하는 것일까?
그것.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통제 불능의 상황에 대하여 그러는 것 아닐까?
'천상천아 유아독존'
세상에 홀로 자신의 뜻만이 존재한다 생각하는 것.
자아 발로의 극치.
단 한번도 자신의 뜻이 꺽여보지 못 한 자가
자신의 그럴듯한 명분 (자신이 믿는 신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데 왜 반항?....*&^%..)에 저항하는
어이없는 상황을
그는 견딜수 없는 것이다.
거기에 타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세까지 주어졌으니
그는 무엇하나 제재할 필요가 없음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너무도 충실함이
그의 마음을 그렇게 훈련되어 왔음이다.
분이
그를 삼켰다.
분노의 물결이 그를 마음대로 좌지우지 한다.
판단의 마비.
옳고 그름을 따지고 타인을 배려한다는 것은
그 분이 그득한 상태에서는 따질 수가 없다 .
오직 자신의 논리에 사로잡혀 마음대로 횡행한다.
그게 분이다.
그게 분에 사로잡혀 노를 발하는 자들의 심사다.
느부갓네살의 영혼은 '분'을 제어할 능력을 배우질 못하였다.
자신의 마음을 분노의 뒤에 있는 '영'에 빼앗긴 상태다.
정상으로서의 인간..
보통의 당연한 상태라면 자신을 도운 자들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이 있어야지만
그에겐 자신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미움만이
100% 그의 영을 사로잡아
끝까지 간다.
그게 .. '분'이고 그를 발하는게 '노'다.
그는 '분노의 영'에 사로잡힌
'자아의 극치'다.
가장 미련한 인간.
인간의 가장 위험한 상태.
제한할 수 없이 자아가 발현되는 상태.
자신의 뜻대로 사는게 옳다고 커온 .........
어쩌다 보니
요새 세상의 사조와 비슷한 논리다. ㅠ.ㅠ;;
많이 익숙한 내면..........분노..........그 위험성 ㅠ.ㅠ;;
26.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그런데
그 맹렬한 불보다 더 뜨겁던 그의 분노의 불길을 헤치고
무엇인가 어른 거리는 거를 발견하고
급히 '불'을 끄게 만든 것도
'느브갓네살'이다.
분노의 불을 끄게 한 것은
풀무불 속의 '천사'다.
오직 '하나님' 만이
분노의 병 (싸이코 패스 아닌가?... 정신병... 타인을 공감하지 못하는 자신 만의 세상에 온전히 갇혀 있으면 병이다)에서 고칠 수 있다 .
자아의 최고봉에서 발현되는 '분노'를 걷어낼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이시다.
오직 하나님.
오늘은
느브갓네살의 상황에 맞지 않는 분노와
상황보다 훨씬 큰 분노..
그 분노의 이유..
그리고 분노의 불길..
그 격렬한 비 이성의 사로잡음
그 위험
그러면서도 저항하기 힘든 '에너지..'
타인과 자신을 불태우는 그 격렬함 뒤에 있는
'영적 존재'와
그를 누르고
그마져 이겨낼 수 있게 만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묵상케 하신다.
아..
느브갓네살은 온전히 불신의 영으로 사로잡힌
완전히 타락한 영혼이지만
평범한 우리, 분노의 안에 자리잡은 것은
'상처'가 아닐까?
특질이기도..
느브갓네살의 모델로
그 일시지만 지속되면
온통 자신과 주변을 태울 위험한 불... 분노에 대하여
오늘 묵상하길 원하심 같다.
그렇다
분이 많았던 나.
(아...나는 가끔.. 느브갓네살은 상시.. ^^;; )
분명코 성경에서도
분은 자신을 태우고 세상을 태운다 나오며
얼마나 그를 제어하는 게 힘든지
분은 느끼되 노를 발하지 말라라시며
그 제어의 어려움을 넌지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심리학적으로도 분노의 에너지는 가장 다루기 어려운..^%&(*&^%.. 이라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그마져 온전히 고칠 수 있다고 하신다.
'천사'가 나타나심으로 그 맹렬한 분노의 불길 속에서도
순간 '제정신' 차리게 하신다.
그리고는 오히려 더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계기가 되게 하신다.
분은
정말 어쩌면 가장 나중에 마주하게 되는
적나라하게 영적 전투의 마지막 단계에 달함은 아닐까 싶다.
아.. 모두가 느부 갓네살이 아니고
모두가 '주하인'이 아님이 맞다.
오늘은 내게 , 과거.. 아 지금도 조금 남은
분노 잘느끼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시다.
레마로.^^;
그래서 오늘 말씀은
'분노'조차 치유하실 분은 주님이시고
그 치유에
그 분노보다 더 뜨거운
아니 분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아니하실 하나님..
당연하시지만
그리 힘든 영적 적나라함에
하나님께서 직접 호위하여
내 영혼을, 같이 불꽃에 쌓인 동역자들의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게 치유하실
하나님을 묵상하게 하신다 .
그리고 그 보다더
불꽃처럼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 속에서도
'천사'로 상징되어진
성령의 은혜가 있으면
순간적으로 끄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금 확인케 하신다.
이제...
온유해도 될 날.ㅎ..
온유한 영혼으로 거듭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듯하다 .^^*
할렐루야
주님.
오늘은 '분노'의 불을 묵상하게 하십니다.
분은 철저한 자아의 발로입니다.
왜곡된 자아로 인하여
상처받은 자아로 인하여
홀로 뜨겁다고 몸부림치며
그 불길을 발하여 주변을 태우는
가장 적나라한 자아의 병페입니다.
그것을 알면서
타인과 자신을 불사르고 나서야 꺼지는
정말로 위험한 '영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주여.
오늘 느브갓네살을 보며
그러함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코 다니엘들에게 은혜를 입고 전율한지가
얼마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을 내렸다 판단하는
자아 충만한 상황에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인간의 기본 도덕에서 완전히 어긋나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그 '자아'.. 자기 자신의 판단의 불합리..
너무도 어이없는 '분노의 불'길을
가장 뜨겁게 발하며
극도의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아.. 너무도 잔인하고
너무도 극명하게 변하는 모습에
소스라치고는 있지만
그 안에서 '분노'에 사로잡힐 때의
내 모습
우리 모습을
오히려 투명히도 알아보게 하십니다.
마치 불꽃속의 천사의 영처럼
느브갓네살의 눈처럼
그 분노속의 유일한 탈출을 보게 하십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이 부족한 자,
위험스러운 선택에서 조차도
우리를 구하여 내고
유치한 자아를
성숙한 자아로 구하여 낼 분은
오직 주님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오직 주님 만이
나와 세상을 향한 유일한 구원의 길이고
방향임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주여.
오늘도 '분'을 느끼지 못하도록
영혼을 더 성숙하게 바꾸어 주소서.
갑의 유혹을 느끼지 못하게 하소서.
겸손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니
주변을 더 돌아보고
배려하는 생각을 연습시키소서.
주여.
에너지를 주셔서
그런 위험한 영적 유혹을 이기게 하소서.
무조건... 배려 하게 하소서.
모든 상황에서
주님을 의식하게 함으로
먼저 '분'이 일어날 틈을 허락하지 마시되
혹여 그러한 미련한 상황에 봉착하더라도
느브갓네살의 그 소스라칠 미련함
그 자아의 극대화의 위험을 기억나게 하셔서
멈칫하게 하소서.
주님의 영으로 저를 보호하시사
그 상황에서 저를 누그러 뜨리소서.
주여.
모든 치유의 하나님...
심지어는 '분노의 영'마져 물리치실 하나님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
그 모든 것으로 제게 다가오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하나이다.
감사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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