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광야의 시체 & 인생의 목적(민14:26-35 ) 본문
제 14 장 ( Chapter 14, Numbers )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하나님이 때로는 모세에게
때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동시에 말씀하신다.
어떤 때 그러시던가?
동시에 임하시는 것은
두분이 동시에 제단에 있을 때 나타나시던가?
다른 곳에 있는 두 분에 동시에 같은 말씀을 하시던가?
다른 곳에 있던 아론을 부르라 모세님에게 명하여 불러서 그러시던가?
두분에게 동시에 나타나셨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심이다.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32.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33.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광야로 표현되는 '인생길'
버려두어야 할 시체로 암시되는 더러운 죄악들.
그 죄악의 근본은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20세 미만으로 상징되는 아직은 선한 성품들.
주님이 사십년을 광야에서 돌리시는 이유는
주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은 '시체'같은 죄악들을 뽑아내길 원하시는 것이다.
결국, 세상의 고난은 정결한 영혼이 되기 위한 연단의 불이고
사십년의 고난은 인생의 험난한 여정이 목적이 있으심을 보이심이다.
살아간다는 것.
어디 하나 편안한 사람이 없다.
누가 진정으로 행복하고만 갔을까?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권력이 많으면 많은 대로
명예가 높으면 높을 수록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깊은 고뇌와 고난이 있다.
그게 인생이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한번 태어나면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한번씩 의문을 가지게 된다.
'왜 사는가?'
산다는게 어떤 의미가 있던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삶의 목표를
지겹게도 힘들었던 가난을 탈피하고자 온생애를 돈버는데 매달린다.
어떤 이는 앞서가고 싶어 안달난 성품을 이기지 못해 ^^;
온통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악을 쓴다.
다른이는 '지식'의 욕구를 채우기 위함으로 공부에 매진한다.
또 다른이는 또 다른 가치에..
그러나, 그런 그들도.....
결국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의 유한한 목표에 매달림이 의미가 없음을
무의식적으로나마 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영혼의 허겁증을 잊기위해
정신이 없을 정도로 일에 매달리거나
영혼을 팔아가면서까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전력투구를 한다.
아니면, 결국 가치를 조금 더 외부로 확장을 시켜
'관계'에 까지 눈을 돌리는 경우는
조금은 더 생각이 깊은 사람이다.
'아들,딸' 혹은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인류를 위해........
.........
그러나, 아무리 그런 가치를 내세우고
스스로를 합리화 해도
그들의 영혼의 빈 구석을 채울 수없다.
결국은 때가 되어 영혼이 육체를 떠날 즈음이 되면,
그들의 육신은 광야에 버려진 '시체'가 될 뿐이다. .
이런 허무한 다람쥐 쳇바퀴를 되풀이 하는 중에
제법 깨인 어떤 사람들은
'철학'을 통하여
그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우상'을 통하여
다양한 논리로 '시체로 버려질 두려움'을 해결 하고자
유사이래 갖은 노력을 다해왔으나
그 결국은 아무도 자신이 없음이다.
그냥 무지 가운데 세상에 놓였다가
결국은 무지 가운데 세상을 뜨는 게
그들이 세상을 되풀이 해 온 것이다.
이게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이 역사'다 !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은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안다.
인생을 살다가 때가 되면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됨을 안다.
앎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성령'의 도장으로 인침을 받은 자다.
그러기에 그들과 세상을 같이 거하되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들과 똑같이 시체로 변할 수 밖에 없는 육신의 껍질을 가지고 살되
광야에 버려진 시체 이후의 자격을 가지고 삶을 안다.
그리고, 버려지고 잊혀지는 '정말 시체'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기도하고 예배하고 성화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냥 시체는 무엇인가?
믿는 우리에게는 '육신의 시체' 그냥 시체다.
'육신에 거하는 영혼 속의 죄악'을 듬뿍 가지고 변화되지 않은 우리가
버려질 시체의 운명의 우리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시체로 암시되는 저들 불신자의 그것과 공통된
구원받은 우리 속의 시체 성질은 어떤 것인가?
'죄악'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죄악.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원죄에서 파생된 우리의 '자범죄'들.
그 죄악들을 '선택'하는 우리의 아는 죄악들.
그렇다면, 사십년 광야에서 시체가 되지 않기 위함은 어떠한 의미인가?
' 인생의 목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극명하다.
오늘 주님이 광야에 사십년을 돌리시며 죽이실 것을 말씀하시는
그 말씀이 더 깊이 바라보면
오늘 성경을 들여다 보는 우리에게
'네가 세상에 지어진 목적은
누구나 살면서 겪어야 하는 인생의 고난은
다 시체같은 그 죄악을 뽑아가지고 천국에 들어와야 하는 과정이기에
세상 살면서 모든 과정을 다
연단의 과정으로 받아 들이고
고난은 네 속에 있는 죄악성을 뽑아내어
20세 미만의 그 순수함을 회복하여 오는 과정'임을 명심하는 것이다' 라 말씀 하시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주일.
또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고 만난다.
그 만큼 많은 도전과 판단의 죄악 속에 부딪칠 수 있다.
또 얼마나 많은 옳지 않은 생각들이 내 영혼을 거스르고 갈것인가?
주님은 얼마나 더 깊이 집중할 수 잇을 까?
내 인생의 기간.
참 어려웠지만
이제 목표가 뚜렷하다.
나에게 주어진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뜻대로 내 죄악을 벗어버리는 노력을 하다가 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 중에 넘어지기도 쓰러지기도
어쩌면 성공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난, 주님 부르시는 그날이 오면
이전 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약간은 성장되어 갈 것이다.
그때, 난 아무 것 모르고
죄악 속에 허덕이며
세상 만~ 충실히 살다가 가는
시체같은 자는 최소한 되지 않을 것이다.
갈렙이나 여호수아까지는 몰라도
20세 미만의 그 순수한 성품은 어느 정도 회복되어 갈 것이다.
그때 쯤 주님이 내 등두드리실 것이다.
그리고 내 발전한 정도의 상급을 가지고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주님 나를 그윽한 눈초리로 바라보시며
그러실 것이다.
'주하인아..
네가
수고했구나.
환영한다. '
주님.
귀하신 주님.
귀하신 주일을 맞이하여 주님께 영광올립니다.
주님.
오늘은 시체와 인생의 목적에 대하여 묵상했습니다.
잊지 않고
주님 영광위해 살려 하겠습니다.
도우소서.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주님 원하시니
관계 면에서도
제 스스로 사랑하는 면에서도
더욱 깊이 묵상대로 살겠나이다.
도우소서.
제 자식들도 .. 그리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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