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방언, 영의 기도[고전14:1-19] 본문
4.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정말
'덕'이 있는 자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타인에게 그런 소리를 듣는 자가 된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그런 덕있는 분들을 곁에서 보는 느낌의 그 푸근함이
나에게서 나오면 정말 좋을 것이란 생각이
오래 전부터 있어왔으며 ㅎ
덕.. 있는 자는
성령의 열매로 익어가는 자의 품성이 될 것이라서
더더구나 그렇고
무엇보다
덕있는 자의 내면에서 누려지는
별 갈등없는 그 여유로움,
한없이 자유로운 그 내면의 평화가 그리워서 그렇다 .
며칠 전 부터
'덕'에 대하여 묵상을 시키신다.
그런데
방언은 '덕'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하신다
자신의 '덕'.
오늘 말씀의 내용은
예언으로 '교회의 덕'을 세움에 대하여 바울께서 말씀하심이 맞지만
난..
묵상하는 자.
말씀 묵상을 통하여
내게 들려주심은
'방언'을 통한 '자기의 덕'을 세움에 대하여 눈이 더 간다.
물론, 자기의 덕이 늘어나면
주변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되어
당연히 '교회'에도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됨이 맞지만... 말이다 .
하여튼 오늘의 교회의 덕을 끼치는 예언의 능력과는 다른 이야기이긴 하다는 이야기다
14.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방언에 대하여 이어진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는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
마음과 영이 다르다고 하신다.
무슨 이야기신가?
롬 8장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즉,
구원받은 자들 가운데
내가 마음으로는 고민하지만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고민 ,
즉 영의 문제이거나
그로 인한 마음의 헝크러진 문제로
주님을 의식하면서도 어려워할 때 , 기도하려 몸부림치는 자들에게는
영이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 (얼마나 안타깝고 불쌍하고 가련하시게 느끼시면... 아.. 감사.. )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고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생각을 아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선하신 방법대로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주신다.. 시는 것이시다.
이것...
영의 문제, 마음의 문제에 대하여 짚어 주시는 것이시며
막연히 알지만 정확히는 모르는
영과 혼의 문제에 대하여 짐작하게 하여 주시는 구절이다 .
우리의 혼돈, 혼란, 알지 못하는 내면의 문제, 상처, 인격, 괜한 갈등...의 문제는
단지 우리의 마음, 의식이라 표현되는 그 마음의 문제 만으로는 알 수 없는
무의식이라 표현 되는 더 깊은 마음의 저 켠과 상호작용되는 것이며
그 무의식,
도저히 알수 없는 그 부분
어쩌면 '영(靈)'에 관계 되는 부분에 대하여
정확히 말씀해 주심이다.
(영혼이 어디있어 .. 부인하는 자는
무의식에 대하여 설명을 다 해보라.
공기가 보이지 않고 전파가 보이지 않는 다고 없다고 할 것이며
반도체의 원리는 몰라도 반도체는 쓰이는 데 그것은 어찌 설명할 것인가?
11차원까지 과학자가 인정하는 바,
3차원에 사는 자가 어찌 4차원 이상을 부인할 것인가?
하나님은 영이시고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이해가 가지 않아도 이해될 부분이다.
당연히... !!)
" 마음으로 다 알수 없는 영혼의 부분은
기도로 간구하는 너의 기도를 들어
'성령'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한없는 탄식으로 대신 기도하여 주심을
모든 것 다아시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간구하는 사랑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기도함을 통하여 . ..)
가장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실 것인바~~!!
(오늘 말씀하신 것 처럼 )
방언은
우리 조차 알 수 없는
우리 영의 기도이니
깊은 무의식 부분의 영적기도는 '방언'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며 (성령의 대신기도와 협업, 협연, 합력... 무슨 이야기든 어떤가.. 할렐루야 . )
깨끗이 해주실 것임이니
방언의 기도를 힘쓰면 '자기', 우리, '나의 ' 덕을
더 빨리, 더 크게 세울 기회가 됨이다.
그러니.. 주하인아.
방언의 기도를 더 해봄이 어떻겠는가?
하지만, 방언의 기도만으로는
'너 자신의 의지와 깨달음' 부분에는 부족하니
마음으로 드리는
언어로 정제된 기도와 더불어
방언의 기도를 힘쓰면
'덕'과 '지혜'와 어우러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겠느냐?" 하심으로 이해가 되어진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교회의 덕'을 위하여 힘쓰는 것이 더 귀한 '덕'이므로
마음의 기도와 '영의 기도'
즉, 언어로 발해지는 기도와 '방언의 기도'가 적절히 배합된 기도가
필요하다..라 심 같다.
방언.
이 방언에 대하여 유난히 강조를 하여
방언을 받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 처럼 치부하고
방언을 받기 위하여 교회다니는 것처럼 강조하는 분들도 있을 만큼
방언은 다양하게 교계에서 이해가 되어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성경의 말씀은 '영적 부분', 즉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지만
덕을 위하여서
방언을 사모함이 좋고
당연히도 영적 성장에는 필수적임이 맞다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성령의 은사가 다 같지 않고
'사모'하라심 같이
모두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은
구원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은 아니기 때문이리라.
난.. .
예수님 믿고 얼마 안되어
기도를 하고 싶으나
너무 혼돈스러운 내 머리속 생각의 꼬임으로 인하여
입으로 소리를 내어 제대로 기도하기 시작한 것은
수년이 지나서야 겨우 그리 되었다 .
대부분.. 속으로 .... 그러나 졸다 깨다.....^^;; .
하지만 예수님을 강하게 영접한
그 첫사랑의 시간 동안
잠시 눈을 떠보니
아내가 식탁에 앉아 방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마주 앉아 있다가
혀가 꼬이는 듯하며
나도 모르게 '중얼중얼' 하며 '방언'이 터진 후
가끔.. 가끔
방언은 지금도 하지만
그리 큰 영적인 신비적 현상을 경험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주께서는
방언을 놓치 말라 하신다.
내 강한 육적 현상을 끊으시기 위하여
생각하지도 못해 보았던 '방언'을 터뜨려 주신 것도 그렇고
내 혼돈된 머리속, 무의식 속의 혼란을 제어하기 위하여서도
방언은 필요함은 안다.
이제.......
덕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내 '덕'을 위하여서는
이제 '덕'을 세워야하는 내 노년을 향해가는 시간 ,
이제 주를 뵐 기회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은
'영혼'과 '마음'이 중심이 잡힌 기도에 열중하여
성화의 나머지 부분들을 힘써야 할 때라심 같다.
할렐루야.
주님
알지만 잘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덕'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사랑하기 위하여
'오래 참고 온유하며.......교만하지 말고......' 라 시었지만
전.. 또
제 특유의 습관대로
어.....어........하면서도
제 입에서 'TV'를 보면서
또 운전을 하면서
저도모르게 '나쁜' 언어들을 뱉어 버리고는 말았습니다.
주여.
다행이도 말씀이 있으셔서
그런 저를 들여다 볼 기회를 주시니
돌이킬 수 있게 되어 감사하지
깨닫지도 못하고
그모습 그대로 살다가
점점 더 고집스럽고 악하게 익어갈 뻔 했습니다.
아.. .덕이 없는 노인.......
형편없는 자로
주의 이름을 욕먹이는 자 될 뻔 했습니다.
다행이도 주여......말씀으로 깨닫고
주님의 성령으로 인하여 부담을 가지게 되었으나
이 습관을 깨뜨리기 위하여
그리함으로 '덕'을 위하여서는 '영'의 기도가 필요함을 고백하나이다.
주여.
주님이 그리 말씀하시는 것 같아
방언의 기도를 더 힘쓰려 하오니
주여
제 입을 열어 그리되게 하소서.
영의 기도를 하게 하소서.
방언으로 내가 알지 못하고 붙들려 살면서
내가 그러는 줄,
내 영혼은 형편없는 존재인줄
나도 모르게 깊이 각인되어 버려
주님의 허락하신 구원의 영이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이 눌려 버릴
그 어이없는 일을 못하게 하소서.
주여.
방언의 기도와 말씀에 따르는 언어의 기도로
옳은 방향의 기도를 사모하나이다.
주님.
주께서 인도하소서.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말씀을 주셨고
제가 깨달았사오니
잊지 않게 하시옵고
의지와 기쁨을 주시어
그리 기도하게 하소서.
그리함으로 말씀 가운데 신비한 체험을 하게 하소서.
덕이 있는 자로 변케 하소서.
살아온 시간 보다 남은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제게,
이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보면
시간이 급한 듯 합니다.
더 힘써 그리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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