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이제 발하는 진심 감사의 고백[고전15:1-10] 본문
(소리엘의 '하나님의 은혜')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 맞습니다.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요.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복음'이 눈에 들어온다.
Gospel.
복있는 소리.
반가운 소리.
내가 받은 것
우리가 받은 것.
그리고
그 가운데 '선 것'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내가 받은
이 '복음'은
예수께서
내 '죄' 때문에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나 때문에
'다시 살아나'신 것, 바로 그 사실이다.
그게.. 복음이다.
그게 정말 내게 즐거운 소리, 기쁜 소리, 복있는 소리여야 한다.
정말 그게 맞는가?
주하인아?
그런데 왜?
.......
주께서 내게 질문하시는 듯느껴져 온다 .
왜 내 삶은 이리도 똑같이 힘이 없고
그런데 왜 내 매일은 또 똑같이 변함이 없으며
그런데 왜 ...........라 심 같다.
잠시 숙연해진다.
복음.
날 위해 돌아가시고 날위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로 인하여 당연히 부어주시는 '성령'의 은혜.......를
철저히 앎에도 불구하고
왜......?. 하시는 것 같다.
그것.
그 받은 것을 가지고
내가 그 가운데 '선 것'이 사실인가... 물어 보시는 듯하다.
내 믿음이
의미를 가지고
현실화 되어 있는가
살아있는 믿음이 맞던가
질문하시는 것 같다.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 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 와
8. 맨 나중에 만삭 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보이시고' ...........보이셨느니라 하신다.
주여.
내게도
이리
보여주소서.
지금껏 점차 뚜렷해지고 있사오니
더 강하게 그리되소서.
주여..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 구절이 참으로 좋다 .
'가장 작은 자'..
이 겸손이 좋다.
'내가 나 된것'.
개역한글에는 '나의 나 된 것'이라 나와 있는 바
이 구절이 넘 좋다 .(솔직히 ~ 이전 version, 나의 나 된 것이란 표현이 훨~ 좋다. ㅎ)
'나의 나 된 것'
자신을 가장 잘아는 자.
그 안에는 낮아진 자신.. 겸손한 자신
그러한 자신에 대하여 그러함을 온전히 아는 게 느껴진다.
이전의 너무나도 교만하였었지만
너무나 강렬한 '은혜'로 인하여
여기까지 오게 된
깨달은 자,
그러함으로 넓혀진 그의 세상과 진리에 대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너무나 감사함이
잔잔히도
그러나 진한 고생후 얻은 행복을 아는 자들의
땀흘린 기쁨을
눈물어린 감동으로 고백하는 장면을
곁에서 보는 자의 그런 느낌이다.
'나의 나 된 것' ..
그러면서 그의 그러함은
전적으로 '은혜' , 은혜 , 은혜.. .로 인함이며
복음이 왜 복음인지를 아는
진정한 감동의 외침.......
그 안의 결단이 다시 느껴진다.
오늘의 묵상 구절을 바라보며
처음에 드는 생각이
'그런데 나는 왜?' 였었다.
그렇지만 곧 그 질문은 바뀌었다.
아니.. 질문보다는 공감과 감동으로..
그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주님의 뜻 대로 살아가며 ,
아니 살아가게 되는 자로서
주하인 등의 결국은
내가 지금
내가 그동안
어찌 살아왔고 현재 어떤 자리와 위치까지 서 있어도
우리는 결국
'나의 나된 것'을 고백하는 자의 자리에 서게 될 것임을
기대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게........
진정한 복음이 아닌가?
내게..
우리에게.. ?
이 의미없는 삶 속에서
진정한 의미이신
예수그리스도로 인한 '복음' 말이다.
할렐루야..
주님.
새벽 3시 넘어 응급수술이 있어 불려 나와 있습니다.
많이 피곤해야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
복음이 이유인 듯 싶습니다.
내
이 세상에서의 너무도 유약한 흔들림에 흔들림으로
버거운 심사를
말씀으로
이리 씻어주시니
몸과 마음조차 개운하여
기뻐지려 하오니
이게 복음을 들은 자로서의
증거 중 하나로 느껴지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 좁은 세상의 틀 속에서 살면서
처절히 주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불사르며 살지는 못해도
일상에서 주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은 몸부림을 가지고도
주께서는
그러한 나를 이리 기뻐하시는 구나 느껴집니다.
결국 저도
주님 부르실 그 즈음에
나의 나된 것
가장 낮은 나........가장 작은 나에 대하여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인하여
거기까지 왔음을
진정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이
예견되고 예상됨이 그러합니다.
내 주여.
감사합니다.
나의 나 된 것
붙들고 갑니다.
주의 은혜로 강력하게 붙드시고
수술.. 잘 되게 하소서.
늘 그러하셨듯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2016 년 이마의 혹 제거 수술하고 찍은...ㅎ
(동일한 찬양, 다른 느낌, 같은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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