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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발하는 진심 감사의 고백[고전15:1-1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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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발하는 진심 감사의 고백[고전15:1-10]

주하인 2020. 6. 24. 03:42

(소리엘의 '하나님의 은혜')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 맞습니다.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요.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복음'이 눈에 들어온다.

Gospel.

복있는 소리.

반가운 소리.

 

 내가 받은 것

우리가 받은 것.

그리고

그 가운데 '선 것'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내가 받은

이 '복음'은

예수께서

내 '죄' 때문에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나 때문에

'다시 살아나'신 것, 바로 그 사실이다.

 

그게.. 복음이다.

그게 정말 내게 즐거운 소리, 기쁜 소리, 복있는 소리여야 한다.

정말 그게 맞는가?

주하인아?

 

그런데 왜?

.......

주께서 내게 질문하시는 듯느껴져 온다 .

왜 내 삶은 이리도 똑같이 힘이 없고

그런데 왜 내 매일은 또 똑같이 변함이 없으며

그런데 왜 ...........라 심 같다.

 

 잠시 숙연해진다.

복음.

날 위해 돌아가시고 날위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로 인하여 당연히 부어주시는 '성령'의 은혜.......를

철저히 앎에도 불구하고

왜......?. 하시는 것 같다.

 

그것.

그 받은 것을 가지고

내가 그 가운데 '선 것'이 사실인가... 물어 보시는 듯하다.

내 믿음이

의미를 가지고

현실화 되어 있는가

살아있는 믿음이 맞던가

질문하시는 것 같다.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 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 와
8. 맨 나중에 만삭 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보이시고' ...........보이셨느니라 하신다.

 

주여.

내게도

이리

보여주소서.

지금껏 점차 뚜렷해지고 있사오니

더 강하게 그리되소서.

주여..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 구절이 참으로 좋다 .

'가장 작은 자'..

이 겸손이 좋다.

 

'내가 나 된것'.

개역한글에는 '나의 나 된 것'이라 나와 있는 바

이 구절이 넘 좋다 .(솔직히 ~ 이전 version, 나의 나 된 것이란 표현이 훨~ 좋다. ㅎ)

 

'나의 나 된 것'

자신을 가장 잘아는 자.

그 안에는 낮아진 자신.. 겸손한 자신

그러한 자신에 대하여 그러함을 온전히 아는 게 느껴진다.

이전의 너무나도 교만하였었지만

너무나 강렬한 '은혜'로 인하여

여기까지 오게 된

깨달은 자,

그러함으로 넓혀진 그의 세상과 진리에 대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너무나 감사함이

잔잔히도

그러나 진한 고생후 얻은 행복을 아는 자들의

땀흘린 기쁨을

눈물어린 감동으로 고백하는 장면을

곁에서 보는 자의 그런 느낌이다.

 

'나의 나 된 것' ..

 

그러면서 그의 그러함은

전적으로 '은혜' , 은혜 , 은혜.. .로 인함이며

복음이 왜 복음인지를 아는

진정한 감동의 외침.......

그 안의 결단이 다시 느껴진다.

 

 오늘의 묵상 구절을 바라보며

처음에 드는 생각이

'그런데 나는 왜?' 였었다.

 

그렇지만 곧 그 질문은 바뀌었다.

아니.. 질문보다는 공감과 감동으로..

 

 그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주님의 뜻 대로 살아가며 ,

아니 살아가게 되는 자로서

주하인 등의 결국은

내가 지금

내가 그동안

어찌 살아왔고 현재 어떤 자리와 위치까지 서 있어도

우리는 결국

'나의 나된 것'을 고백하는 자의 자리에 서게 될 것임을

기대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게........

진정한 복음이 아닌가?

내게..

우리에게.. ?

 

이 의미없는 삶 속에서

진정한 의미이신

예수그리스도로 인한 '복음' 말이다.

 

할렐루야..

 

 

주님.

새벽 3시 넘어 응급수술이 있어 불려 나와 있습니다.

많이 피곤해야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

복음이 이유인 듯 싶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너무도 유약한 흔들림에 흔들림으로

버거운 심사를

말씀으로

이리 씻어주시니

몸과 마음조차 개운하여

기뻐지려 하오니

이게 복음을 들은 자로서의

증거 중 하나로 느껴지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 좁은 세상의 틀 속에서 살면서

처절히 주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불사르며 살지는 못해도

일상에서 주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은 몸부림을 가지고도

주께서는

그러한 나를 이리 기뻐하시는 구나 느껴집니다.

 

결국 저도

주님 부르실 그 즈음에

나의 나된 것

가장 낮은 나........가장 작은 나에 대하여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인하여

거기까지 왔음을

진정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이

예견되고 예상됨이 그러합니다.

내 주여.

 

감사합니다.

나의 나 된 것

붙들고 갑니다.

주의 은혜로 강력하게 붙드시고

수술.. 잘 되게 하소서.

늘 그러하셨듯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2016 년 이마의 혹 제거 수술하고 찍은...ㅎ

                 (동일한 찬양, 다른 느낌, 같은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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