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겸손은 영혼이 상하는 것을 막는다 (렘 44:1-14 ) 본문

구약 QT

겸손은 영혼이 상하는 것을 막는다 (렘 44:1-14 )

주하인 2010. 5. 10. 12:12

제 44 장 ( Chapter 44, Jeremiah )

 

아이는

그림자 마저 이쁘다

 

그것은

자신의 작음을

전혀 거부하지 않는

순전한 겸손 탓이리라

 

주님은

따사로운 양광으로

그의 전 영혼을 어루 만지는 듯하시다

아이 같은

겸손한 영혼의 나를 보시는

그 시선이 느껴지는 듯하다

 

      
 
7.  나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 자기

    영혼을 해하며 유다 중에서 너희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젖 먹는 자를 멸절하여 하나도 남기지 않게

    하려느냐 
 큰 악 중의 큰 악은 '우상'을 섬김이다.

그 악은 '영혼을 해한다.'

나.

일상의 되풀이 되는 우상은 어떤 것인가?

'내 자존심 유지'는 아니던가?

이 '자아교 교주 ' 같은 어리석음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자존심 다침은 용인을 못한다.

내 칭찬은 꿀처럼 달게 느껴진다.

듣고 또 듣고 싶어한다.

이 죽지 않는 '자아의 붙들음'이 내 우상은 아닌가 싶다.

묵상해 볼일이다.


    
10.  그들이 오늘까지 겸비치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내가 너희와 너희 열조 앞에 세운 나의

      법과 나의 율례를 준행치 아니하느니라 
  겸비, 겸손하지 아니한 것.

두려워 하지 아니하는 것.

무엇이던가?

 새벽 같이 일어나 분만을 받았다.

마치고 돌아와 당직방에 앉으니 다섯시 반.

피곤하다.

그럼에도 침대 맡에 걸터앉아 묵상기도 하려 눈을 감았다.

누구가 그러더라.

한국 최고의 J목사님도 아침에 일어나서 '밤사이 나에게 붙은 사단 귀신아..예수 이름으로.. ' 하고

기도를 한 후 하루를 시작하신다는 고백을 들은 적 있다고..

그게 사실이던 아니던,

난 근본적으로 '영'이신 하나님이 계시고 사단의 존재가 있음이 너무도 당연하기에

그런 영적 퇴물들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고

그러기에 일상에 어느정도 긴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특별히 내가 원치 않는 강력한 부정적 생각이나

상황에 상관없는 급한 유혹적 생각이나 미움등은 모두

그러한 존재들의 작동 버튼을 누름이라 생각한다.

 빛에스더님이 '조이스 마이어의 마음훈련'이란 책을 권해주셔서 사보니

역시 똑같은 생각들이 많이 적혀 있어서 당연하게도 잘읽어보았다.

거기도 그렇다.

영성가들 모두 인정하는 바고

정신과 의사 중에서도 진료에 적극이용하고 있는 분도 있다고

이전에 적은 바 있다.

( DSM -IV라는 최신 진단 기준에 영적원인의 정신 질병에 대하여 포함시켰다. )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아침,

그 이른 시각에 묵상기도 하려 집중을 하려는 뇌리에

굵은 근심 - 자식, 그 중에 큰 아들에 대한.. -이 상념으로 자리잡아 머리를 흔들려 한다.

나름대로 자중은 하지만, 현실보다는 게임 쪽에 많이 붙들려 있는.. 

그래서 나름대로 논리적 이유로 '가족회의'를 하고 제재 방안에 대하여 .........라는

생각들이 내 머리를 채우려 한다.

그럴 듯 하다.

늘 그렇지만 그럴 듯 했다.

그래서 아들을 많이 혼내 왔던게 내, 과거의 역기능아버지 모습 아니었던가?

잘된 적이 없었지만 그렇듯 순간적인 판단으로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아이를 몰아가고 싶은

충동이 오늘아침도 사단의 장난 처럼 불현듯 떠올라 날 사로잡아 간다.

이럴 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아침의 시간은 분주한 '마르다'의 머리가 되어 버린다.

'마리아' 같은 , 조금은 손해를 보는 듯하지만

주님과의 조용하고 긴밀한 시간을 보내는 게 내 목적이 아니던가?

잘랐다.

예수님의 말씀 만을 선택한다는 선언과 더불어

기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말씀을 들여다 보았다.

 내 겸손하지 못했던 부분.

내 우상섬기는 부분.

무엇이던가?

 내 자아.

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

내 자아는 내 자식을 내 마음대로 내 시간에 키워내고 싶은 강렬한 욕구고

그것은 세상의 모든 부모의 당연한 권리라는 이름 뒤에서

아이의 '감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내 방법대로 순간적으로 생각하고 대화할 기회도 차단하고

몰아부쳐서 그렇게 된 것 아닌가 싶었다.

 그것은 '아이에 대하여서도 겸손한 모습의 아버지'라는 부분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모습이 맞았다.

 

 그런데 아들에 대하여서도 겸손이 필요한 것 맞는가?

그래.

맞다.

세상의 모든 자, 특별히 아들이 크면 더더구나 성인이 아니던가?

거기에 함부로 함은 어찌되었든 '겸손'하지 못한 횡포였던 것이다.

깨달아 졌고 , 난 순간 마음이 정리되었다.

무엇이든 하려든 것을 멈추기로..

그리고는 앞으로 어찌할 지는 기도를 더 해볼 문제였지만

느껴지고 살그머니 깨달아 지는 게 있었다.

그것은 '내가 먼저 변해야 아들도 변한다'는 사실이었다.

아.

어렵다.

어렵지만 그리하기로 결심했다.

나 혼자의 깨달음도 이전 주님과 친밀하던 시간이전에도 자주 있었다.

솔직히 생각이 많다는 것은 그 중에 일부는 좋은 생각도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비율적으로 훨씬 적지만..

더구나 그때의 생각들은 폭죽 끓듯이 강한 생각의 물살에 밀려 내려가버리고

또한 시행하려면 다가오는 부정적인 편견들이 막아서서

나도 모르게 잊어먹고 나서 추후에 후회하는 일들이 많았었다.

 

 예수님을 믿고

묵상을 시작하고

말씀이 내 속에 들어오시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기 시작한 후 부터

정말 좋은 것이 이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인격'으로 굳어져 버린

부정적인 생각의 흐름과 그로 인한 고치기 힘든 행동양식들이

말씀으로 인하여 '톡~' 터져 나가는 듯 터져나가고

비록 몇번의 실패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행동이 수정이 되고

주위에서 '변했다'라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것이 그리 힘들지 않게 느껴지며

또한 그러한 변화가 스스로에게 대단한 자부심과 더불어

감사로 영혼의 한구석이 따스한 평강으로 차오르고

마음 속 가득히 '희망'으로 차오른다는 이야기다.

 나.

오십년 넘게 '저 영적 부정세력'들에 의하여

얼마나 많이 상처입고 상처입은 영혼 속에 아픔으로 왜곡시킨 회복의 이지러짐들이 많을 것인가?

그러기에 그 모든 것을 다 하나하나 집어내서

주님의 말씀 가운데 회복시키기에는

하루 이틀,

일이년의 과정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주님은 일 순간에 사람을 변하게도 하시지만

우리가 인식하고 그 변화의 과정 중에 아직 더 변하길 바라시는

부분들을 깨달아 주님 앞에 내놓고 주님 말씀 앞에 맞추고

성령의 바람으로 말리어 가고

하나하나 새 부품으로 바꾸어가

나중에 온전한 새 영혼으로 성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이 아침.

몸은 피곤하지만

또 하나 깨달았다.

나 , 더 겸손해야 한다.

내 우상처럼 붙들고 있는 '상처'라는 이름의 왜곡을 인정하고 내놓고 말려야 한다.

아들.

아들을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하고

기도로 바꾸어야 한다.

권고하고 기다려야 한다.

 

 

 

 

적용

1.  아들 들을 위해 기도한다 .

 어서 그들의 주님을 영접하고 세상을 향해 중보와 기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2.  기다리자.

 인내하자.

 늘 초조하다.

 아들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주위에 비교하면 더 그렇다.

그러나, 그럼에도 주님이 원하시는 '선'을 기다려야 한다.

 

3. 성경 세장 읽으리라.

 묵상하며 깊게

 

4.  내 자아는 칭찬과 안 다침에 관심있다.

  그것은 우상이다.

  주님이 싫어하신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기뻐하하리라.

  자아가 죽어가는 시간이다.

 

5. 겸손하자.

  말을 조용히 하자.

  눈을 내리 뜨자 .

  나를 이해하자.

  남보다 나를 낮게 여기되 나 자신은 귀히 여기는 게 겸손이란다.

  어렵지만 주님으로 인하면 가능하다.

 

6. 감사하자.

 주님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신다.

 

 

 

기도

 

주님.

주님을 앎이 행운이고 영광이고 감사고 복의 끝없음입니다.

이전에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들이

주님 말씀 앞에서 기도만 하면 달라짐을 느낍니다.

가능함이 느껴집니다.

그게 놀랍습니다.

마치 작은 벌레들이 톡톡 터져 나가듯

사단의 생각들이 터져 나가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 깨달아짐이 너무 감사합니다.

아침의 피곤함을 넘어서는 행복은 주님의 이유입니다.

주님이 계시기에 전 전혀 피곤하지 않습니다.

나른합니다.

그게 감사합니다.

주여.

저 간절히 소원할 것은

제 자아를 가장한 사단의 순간 사로잡으려함을 깨닫고

주님의 말씀으로 늘 바로 잡을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하나님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의 생각을 하게 하시고 경건의 생각을 하게 하소서.

내 이웃과 내 가정과

내 지구촌 식구들을 위해

이 놀라운 하나님의 평강과 기쁨과 능력이 깨달아져지기를 기도합니다.

그 과정에서 고생하시는 모든 선교사님들과

주님을 사랑하시는 목회자님들과

순수한 주님 사랑하시는 귀한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여.

주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여이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