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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모든 것이 옳으시다.(렘43:1-1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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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모든 것이 옳으시다.(렘43:1-13)

주하인 2010. 5. 9. 05:37

  제 43 장 ( Chapter 43, Jeremiah )

 

 

주님

주님은 옳으십니다

 

주님은

이 황량한 들판에서도

꽃을 피워 올리시고

대지를 녹색의 생기로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눈물 겹도록 감사합니다

주님

척박한 나의 영혼에도

생명으로 채우실 줄 믿사오며

감사함 올려드립니다

 


1.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 곧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게 하신 이 모든 말씀을 다 말하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온전히 응답을 하셨는데
 

 

2.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및 모든 교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는 애굽에 거하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들은 듣지 않는다.

믿지 않는다.

그들은 '교만'했다.

 

 애굽에 갈 것을 결정하고 와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자신들의 바램에 맞지 않으니 '하나님의 뜻이 아니시란다' .

그들은 교만할 이유가 없다.

쫓겨다니는 두려워하는 자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했다.

교만은 다른게 아니다.

자신의 뜻이 주님을 앞서는 게 교만이다.

그것은 '건방짐'이다.

그것을 넘어서는 죄악이다.

 

 우리는 안그러고 나는 안그런가?

특별히 내 자식들, 내....라 붙는 모든 '내'가 좌지우지 하고 싶은 대상을 상대로

주님 앞에 기도드릴 때, 그것이 안들어진다 생각되면

얼마나 실망이 많은가?

절박하게 기도했고 절절히 기도해도 안들어졌다 생각되면

실망은 얼마나 할 것이고

주님께 원망은 얼마나 하였던가?

아직은 그래도 개전의 여지가 남아서 입으로 못할 뿐이지

누르고 있는 깊은 속에는 저들과 다름이 없는 불만이 있지 않을까?

 그것은 '기복'이고

그것은 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교만이고 그것은 '죄'다.

어떤 결과이든 '주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3.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꼬드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인의 손에 붙여 죽이며 바벨론

    으로 잡아가게 하려 함이니라 하고
 이러한 영적 어리석음은 '교만'이지만

그 교만의 반대편에는 '두려움' 이 있다.

심한 교만은 심한 열등감과 같이 동반된다.

이들은 두려움으로 촉발된 교만의 죄를 또 한 번 짓는다.

 


 
4.  이에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대장관과 모든 백성이 유다 땅에 거하라 하시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때 시드기야 왕 등이 지었던 동일한 죄.

듣기 싫은 것은 듣지 않는 죄.

주님 뜻을 묻는 다고 예레미야를 찾아온 이들이

결국은 자신들의 뜻대로 애굽으로 간다.

 주님이 자신들의 뜻대로 대답해주시면 '믿는  신앙인'의 모습이고

뜻과 다르면 귀를 막는 교만의 극치, '불신자'의 그것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인다.

이 엉터리 같은 죄.

우리의 일상의 모습과 다름이 하나도 없다.

 

 

 토요일 .

어제.

두개의 무거운 짐이 어깨에 지워지면서

머리가 터질 듯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그 상황으로 당직을 서러 왔다.

토요일 오후는 모두 퇴근이고 응급 환자 아니면 볼 수 없다.

퇴근 하려는 외과 선생을 붙들고 협의 하려는 데 방사선과 전문의도 없다.

불러 들여 CT판독을 부탁했고 3개의 응급수술로 허덕이는 외과 선생과 상의 하는 과정 역시

너무 힘이 든다.

더구나 난 여성 병원에와서 환자 보면서 전화로..

폭팔할 것 만 같은 어려움이 날 누른다.

길이 보일 것 같지 않다.

환우의 상태가 너무 비특이적이다.

어찌보면 굉장히 응급 상황처럼 보임에도

며칠간의 x-ray 및 피검사는 양호하다가

퇴근 바로 직전에 심한 복통과 발열을 호소하는 것이다.

걱정은 합병증이다.

수술하고 가장 두려운 것이 '대장파열'이다.

더구나 토요일 오후, 외과의사의 힘을 빌어야 하는 데

3명의 응급 수술을 앞에 두었다지 않은가?

서로 최고의 스트레스다.

이쯤이면 난 꽤 심한 신경질로 얼굴이 이그러져 있어야 하고

진료 받으러 오는 환우들에게 짜증을 부리게 됨이

나의 이전의 행태였었다.  ^^;;

 나.

화살기도를 계속했다.

멍따 대신.. .

발전했다.

그래서인지 혈압은 오르는 지 얼굴이 벌개 있음에도

친절도 면에서는 나도 놀랄 지경으로 환우들에게 공손했다.

그러면서 부정적인 생각만 밀물처럼 밀려드는

습관적 불안을 뚫고 '기도'가 된다.

다른 또 하나의 무게를 뚫고 '믿는 '기도가 된다. 

퇴근했던 방사선과 전문의의 소견은 외과전문의와 전혀 반대다.

외과에서는 심한 복막염으로 수술을 해야 하나 범위 결정을 위해

응급 판독을 부탁하려 초빙한 것이다.

 방사선과 전문의의 소견은 '꽤 괜찮은 모습'이란다.

그렇지.

그러면서 수술 하고 있는 외과의사와는 추후 전화 통화 하겠다 한다.

환우는 cT검사 하고 올라온후 갑자기 열도 떨어지고 배변도 하고

경과가 호전이 되어간다.

참 희한한 케이스다.

깨달았다.

기도 탓이다.

아직 열나고 복통이 CT찍기 전에 먼저 촬영한

X ray 상 장폐색소견을 보일 정도로 심한 이유는 밝혀야 하고

경과를 보고 다시 악화시 개복의 가능성은 있지만

그래도 그 순간에 달라지는 것이

'나에게 무엇인가 원하는 것이 있으시다'는 것을 싸인으로 보내신 것 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문제인 '둘째'가 전화가 왔다.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곤 전화를 마무리 했지만

마음이 안좋다.

회개했다.

머리가 깨질 듯하다.

 외래진료를 마치고 환우의 수술 여부는 아직 결정이 안된상태로

외과 수술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어

분만실로 올라왔다.

금방 입원한 산모가 '갑상선 항진증에 당뇨' 치료 중인 산모다.

머리에서 뱅뱅 앰블런스 싸이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행이도 담대한 마음을 주신 주님 덕에

산모 보호자와는 추후 위급할 상황에 대하여 차분히 협조가 이루어 졌지만

당직 방에 올라와서 기다리는 시간은

지옥 문을 향해 다가가는 불신의 영혼들이 저럴 까하는

두려움과 막막함이 날 누른다.

이럴 때 '난 ' 자주 ' 죽은 사람이 얼마나 편할까'하는

아주 오래된 어두운 생각들이 스칠 때가 있다.

다행이도 주님의 생명을 내 마음대로.. 라는 확실한 개념이 있기에

그런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않지만

그 만큼 '산부인과 의사'로서 평생 겪어온

죽음과 삶의 문턱을 오갔던 '극한의 직업적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은 사실이다.

거기에 또 다른 스트레스가 이중 삼중이지 않는가?

 기다리는 동안,

난 전혀 TV킬 생각도 못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기도를 할 뿐이었다.

소리내서 정확한 기도의 순서대로 하는 그런 기도였으면

더욱 힘이 나고 좋을 것이건만

무엇에 대하여 달라고 조르는 것에 대하여 어려워 하던 내 심사는

아직도 조금은 그냥 '묵상'하는 기도를 하는 비율이 높긴하다.

요새 좀 많이 달라졌지만..

어찌되었던, 의도하던 의지 하지 않던 난 깊은 기도를 하였다.

눈을 뜨면 시간이 한시간 씩 확확지나가고

사이사이에 안정된 마음으로 하나 하나 환우 분들을 해결해 갔다.

본원의 수술했던 환자는 다행이도 저녁 아홉시 경이 되니

완전히 열이 떨어지고 경과를 관찰하기로 결정했다.

도중에라도 안좋으면 '개복'가능하다는 설명을 하러 본원에 갔고,

아주 협조적인 가운데 해결되었다.

난, 그 시간까지 기도만 했다.

나도 모르게...

그리고 여성병원과 본원 모두 잘 마무리 되었다.

 

그 사이 기도 중 난 확실히 깨달아 가고 있던 것이 하나 있다.

 아들 문제.

가족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일이 생기긴 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모두가 내 뜻대로 , 세상의 기대대로 잘 풀려나가기만을 바라고

나름대로 그것을 주님의 살아계심의 싸인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마음이

너무 강했던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러기에 어쩌면 엄밀히 판단하면 그것은 그리 큰일이 아닐 수도 있음에도

나도 모르게 깊은 좌절에 들어가려 했던 것 같다.

 그러기에 그토록 그리 되뇌이던 나의 신앙적 고백,

' 주님은 무조건 선이시다.' 라는 매일의 되뇌임이 헛것처럼

내 일상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주님이 하시는 일이 어떠하시든지

무조건 '선'임을 믿는다면 아이의 그런 상태 조차도 '선'이 맞다.

마음을 돌려 생각해도 그렇다.

아이가 너무 편안해져 기도와 교회 가는 것도 빼먹었었다.

또 옛날의 그 나른한 버릇이 나온 듯 싶어 걱정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주님이 사랑하셔서 고난을 허락한 것이 맞으신 듯 싶다.

하지만, 그것보다 난 '만사형통'에 제재를 당한 것이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나 뿐 아니라  나 만큼 어리석고 어린 영혼의 그 누구도

실은 그런 상황조차  선이심을 알지만

감정 깊숙이 받아 들여지기는 힘이 들것이란 것이다.

기도 중 난 느껴지고 받아 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실제로 고난은 유익이다.

힘이 너무 드니까, 기도가 깊어진다.

아니,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저녁 아홉시가 되어 있고

저녁 열두시가 되어 있었다 .

열렬히 기도한 것도 아니다.

그냥 가만히 주님의 임재만을 느끼고

그 분의 실제적 위로와 응답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기다리고 했다.

그 과정에서 난 편안해졌다.

그리고 문제는 해결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직은 '과정 '중이지만 최소한 내 마음은 차분해졌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차분함.

아니 오히려 감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상황은 주님이 컨트롤 하실 것이다'라는 확신 비슷한 것을 느끼고

그런 내가 흐뭇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오늘.

주일 아침 묵상.

거기엔 나와 비슷하게 '한계 상황'이자 '임계 상황'에 닥친

유다의 남아 있게 된 자들에 대하여 나온다.

그들은 그 엄청난 스트레스에 하나님을 찾았다.

나처럼..

거기까진 잘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 들의 생각대로 밀고 나갔다.

 나.

나도 그럴 수 있다.

열렬히 기도하고 '이것 저것 해주세요......'

그게 옳을 수도 있다.

아니, 그게 옳고 그리 하고 싶다.

그리하며 강력한 주님의 임재감도 느끼고 싶고 응답도 받고 싶고 해결도 보고 싶다.

하지만, 그 마음에 '정해놓은 결과'를 가지고 강요하듯하는 교만함이 없어야 한다.

안해주면 실망하는 고집은 없어야 한다.

 나.

어쩌면 그리했으면 주님께서 '개복수술'을 허락하셨을 지 모른다.

지금 내 믿음의 움직임을 보시는 지 모르지만

그 상황의 절묘함으로 보아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과정인 듯 싶다.

그리고 난 확실해져가는 - 아직은 흔들린다 ^^;;-  그 분은 무조건 '선'이시다..라는

믿음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있다.

 

 이제 앞으로도 그렇게 나가고 싶다.

무엇을 정해 놓고 주님께 간절히 비는 '간구'는 하되

즉 원함을 뚜렷이 하되

그 결과는 주님께 맡기는 결심을 하기로 한다.

그 결심을 받아 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요 며칠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아서도 그렇다.

그것을 받아 들임이 '성장'이다.

그것은 평화를 의미한다.

그것이 진정한 겸손이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순종하는 것.

 

 이 주일 아침.

새벽같이 분만환자가 있어 일어나 기도하고 묵상한다.

개운하다.

귀한 주일을 주님께서 나에게 맛보게 하고 싶으신 듯하다.

 

 

 

기도

 

주님

참 어려운 어제였습니다.

그냥 나혼자 견디라면 죽고 싶을 만큼 어려운 고통이었을 듯도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개운합니다.

앞으로 고난이 또 없으란 법은 없지만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강한 위안을 받았습니다.

체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계셔서 늘 내 앞에 계시고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임재를 찬송합니다.

내 입술은 주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이 되길 원합니다.

그 주님이 사랑하시는 날 귀히 여기기 소원합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내 자식들,

그들도 주님 안에서 제가 느끼는 이 평안과 깨달음의 놀라운 경험을

공유하고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주여.

귀하신 주여.

거룩한 주일 아침.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특별히 어려워 져 가는 세상의 환경과

새롭게 터지려 하는 금융대란,

나라 문제 등...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부디 바라옵기는

예수 곧 오실 듯한 이 마지막 세대에

믿는 자들 만이라도

주님 앞에 다시 겸허해지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모든 평화 이룰 수 있길 원합니다.

주님.

귀하신 주님.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주님의 뜻이시면 빨리 해결하소서.

제 안에서도 받아들일것 받아 들일 수 있는

영적 성숙함을 허락하소서.

주님이 무조건 옳으시고

어떤 상황도 주님이 허락하신 것임을 잊지 아니하게 하소서.

주여.

오늘 이 거룩한 주일에

주님의 영광을 위해 찬양을 드립니다.

제 마음 담아 높이 올려드립니다.

받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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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 찬양  모음곡(펌)

  

 

01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세계          

02 나 어느날 꿈속을 헤매며         

03 눈을 들어 하늘 보라           

04 세월이 흘러가는데           

05 양떼를 떠나서            

06 순례자의 노래            

07 주여! 이 죄인이            

08 시낭송            

09 주 날개및 내가 편안히 쉬네            

10 우물가의 여인처럼

11 내맘이 낙심되며          

12 십자가를 질 수 있나            

13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14 내 평생에 가는길            

15 곤한 내 영혼 편히 쉴곳과            

16 이 세상 지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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