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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靈感電

주하인 2006. 8. 1. 12:47

 (요한계시록4:1-4:11)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At once I was in the Spirit  단번에 성령 안에 있었다) 보라 하늘에 보

   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오늘 아침은 욥19:13-29를 묵상하였다.

잠시 구절을 읽어 보려한다.

( 외로워...)

 

    13 나의 형제들로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외인이 되었구나
    17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혐의하는구나   
    26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구구절절이 3-4천년 전 사람의 숨결이 전해오는 듯하다.

 

 

사람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오래 지속되는 '외로움'이고

현대인에게 우울증이라든가 각종 정신적 혼란의 주된 원인이 군중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라는데...

이 외로움을 무의식적으로 두려워 하여

각종 모임을 병적으로 결성하고

온갖 쾌락적 유혹에 빠져 들어가기도 하다가도

결국은 육신으로 나타나 각종 현대 병으로 발병되기도,

심리적 왜곡으로

영적 타락으로 나타난다.

 욥에게는 현실적 어려움 보다 더 큰 어려움이

가장 친했던 친구들의 배반이나

그들의 정서적 무감동으로 인한 '외로움'이 가장 어려웠다.

 

 그게 어찌나 심했던지 모든 사람이 내게 외인이 되었구나

라고 애절한 현대적 고백을 한다.

얼마나 외로움이 가슴을 지미는 지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라 한다.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과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는

결국 아무리 몸부림을 쳐봐야 갈곳이 뻔하다.

그토록 사이가 좋던 부부도 '숨을 싫어할 '정도로 배반할 수도 있다.

아무리 효성스러운 자식도 결혼하면 자신의 삶에 충실하느라 예전과는 다른 강도의 낮은 겉치레로 부모의 가슴을 흔들지 모른다.

전혀 변할 것 같지 않던 강아지도 , 자신의 밥 먹을 때 건드리면 으르렁 대기도 한다.

친구들도 하나둘 세상을 버린다.

삶에 지쳐 하나둘씩 소원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좋던 것도 사라진다.

 

마치 환영처럼

바람 불면 없어질 연기의 향연처럼

 

눈뜨고 쳐다보니

내나이 40중반

예전에 보이던 많은 것이 안보인다.

끝까지 나눌 것 같았던 우정도 뜸하다.

더 지나가면

더 그럴 것이다.

 

세상은 유한하다.

 

욥의 절실함은

우리가 언젠가 곧 느껴야 할 것이다.

필연이다.

 

그럼에도 그 외로움을 늦추려는 온갖 노력의 산물들은 더 커진 허전함과 공허함만 가져올 뿐이다.

 

 

이제 욥은 이 모진 격랑 속에서

살을 썩이는 듯한 외로움의 격공(擊攻) 속에서

이런 표현을 한다.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그래...

그에게는 그 모진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

세상이 알 수 없는...

 

그것은 모든 것이 썩어나가도 결국은 만나게 될 하나님.

그 분이 계시다는 것이다.

 

그렇다.

여기에 정답이 있다.

 

결국은 주님 .

결국은 예수님

결국은 성령님

 

그 분이 계시기에 이 어려움은 끝이 있다.

 

오늘 묵상은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즉, 단번에 성령에 사로 잡힌... 사도 요한의 눈을 통해  잘 촬영된 영상을 보고 있는 듯하다.

 

 주님의 말씀이 있자...

짜르르한 전율과 더불어 순간적으로 그는 성령에 사로잡혀

 환상이 보인다.

녹옥 백옥, 천사,보좌., 유리바다........

정신이 없이 휘황찬란하다.

 

그런데...

성령에 이처럼 전기 충격 받은 것 같은 대단한 상황은 아니어도

성령 충만하면 느껴지는 그 편안함과 기쁨의 경험이 쌓인

이제는 믿음의 경험이 조금은 쌓인 자로서

달란트가 엄청난 요한의 이 격렬한 성령감동의 정도를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오늘  마땅히 될 일 이라는 확언의 말씀이 

사도 요한의 눈에 비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며

이 땅에서 우리에게 오는 '외로움'이나 '곤란'이

주님만 열렬히 집중하면

성령께서 오셔서

위안해주시고

당신의 뜻대로 우리의 삶을 조금씩 조금씩 선한 대로 수정하셔서

어느 순간에

우리 주님 보는 날.

오늘 보여주신 그 나라에서

주님의 쓰다듬는 칭찬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나라는

고통이 없고

기쁘고

놀라운 나라일 것이다.

 

욥께서

가죽이 썩어져서라도 벗어버리고

사도 바울 께서

육신의 장막을 벗어 버리고

그리도 가고 싶어하는 그런 나라일 것이다.

 

우리는 소망이 있다.

 

저 나라에 소망이 있다.

이 땅에서도 위안자 보혜사 성령이 계시다.

 

또 한번 힘을 내서 나가자.

힘이 들고 고통이 있음은 필연이고 그 필연이 주님을 보는 훈련을 시키심을 알기에

오늘

주님의 마땅히 될 일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굳게 지키고 지나는 하루가 되어야 겠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욥의 심정이 제 심정일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요한의 사로잡히는 성령감전의 그 체험이

진실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실인

그 나라가 오늘 하루 제 영혼에 깊이 각인되고

가능하시다면

저도 주님나라 한번 뵙게 해주소서.

 

어리석은 자의 눈치성 기도였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예수께서 들어주시길 바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신앙의 숭고하고 순수한 행위 중 하나다.

 - 토마스 왓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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