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논리적인 헛점드러내기(계6:9-17) 본문
(요한계시록6:9-6:17)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순교자들이 제단의 아래에서 울부짖는다.
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심판은 견디기 어려운 일인데 순교할 정도의 보기드물게 좋은 순교자들이 왜 고통스러운 일이 세상에 펼쳐지길 저리도 큰소리로 간구할까?
세상이 미운걸까?
자기들의 순교를 유발한 세상을 억울하게 보는 영성이라면 천국에 올라가는 것은 합당치 않을 텐데..
또 얼마나 간절히 소원하길래 인내라면 둘째갈 순교자들이 큰 소리로 외치는 걸까?
이리 결론을 예상할 수 있다.
심판은 어렵지만 반드시 견뎌야 하는 주님의 선한 계획 중 일부이다.
심판 이후의 거대한 질서가 이 땅에 생길 수 있다.
순교자 들이 굳이 제단 앞에 모여 있음은 그들이 심판을 시작하게할 어떤 열쇠가 된다.
...
어리석은 추정일까?
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
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비밀을 약간 보이신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흰 두루마리 읽어 보아라. ( 이 안에 숫자가 써 있을까? )
너희 들만 알아라.
순교자의 수가 예정된 만큼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라."
무슨 의미인가?
종말의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데는 '순교자의 수'가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그 숫자는 주님만이 결정하시는 ..
아마도 주님의 역사 이래 원하시는 일정 수의 순교자 수.
그러나
그 숫자가 채워지기 위해서는 땅위에 우리의 충성된 자로서 열정을 바쳐 주님께 헌신하는 정도와 속도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조차 주님의 상관적인 개입이 있으시겠지만...
결론적으로
키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여러 변수가 있고
그 키로 인해 종말이 진행됨은 다변적이라는 얘기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 만이 아실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시한 부 종말론자들의 어리석은 논리적인 헛점이 여기에 있다.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
우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인 만 떼는데 이리 무시무시한 징조들이 나온다.
이러고도 일곱개의 나팔과
또 일곱 대접 재앙이 남아 있다.
이러한 징조만을 보고 언제가 시작이라고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단...
확실한 건 있다.
징후가 나타나면 언제인지 모르지만 곧 주님 재림하실 것이란 것이다.
오는 날에 휴거 당하기 위해 모든 거 정리해서 기다리기 보다는
휴거의 선택권은 주님께 맡기고
마지막 날을 대비하여 하루 하루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잘못은 순간 순간 십자가에서 해결 받는 그 대단한 속죄의 위용을 체험하며
어이없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오히려 더 큰 평강의 위안을 맛보며
끝없는 답답함과 앞이 보이지 않을 암담함을
세미하게 동쪽 하늘 끝에서 일어나는
주님의 조막구름을 기다리는
그 알지못할 기쁨을 체험하는 것이
우리 주님이 마지막날 세상에 오시어서
가장 먼저 눈을 돌려 안스럽고 기쁘게 바라보실 성도의 기준이 아닐까.. ?
기도
주님.
죄송합니다.
재림 대비 신앙으로 살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가능하시다면요.
늘 주님을 경외하며
세상의 혼돈함에 흔들리기 보다
오히려
주님의 오실 날을 고대하는 경건함으로 살길 원합니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그래도
날마다 주님의 흔적을 붙잡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는
세상의 흩어져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소서.
마지막 얼마 남지 않은 충만한 수에
우리 들 중 많은 분들이 참여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은 언제나 그분의 십자가 정병을 고난의 고지에서 뽑아 내신다.
- 찰스 스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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