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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식탁(계3:14-22) 본문

신약 QT

내 영혼의 식탁(계3:14-22)

주하인 2006. 7. 31. 07:53

 (요한계시록3:14-3:22) 

 

 

15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 이렇게 잘 익혀져야겠지요.   주님 보시기에 알맞도록..)

 

 예

전 잘하는 줄 알고 있었지만 미지근한 자 맞습니다.

순종도 잘 못하고

주위 사람들과 화평하지도 못하고 온통 화근 투성입니다.

그러면서 묵상은 열심히 합니다.

아마도 제 취미에 맞기 때문인 것도 있을 겁니다.

한마디로 제 잘난 성도입니다.

느끼고는 있지만 이제 분명합니다.

확실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길 원합니다.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

    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참 무섭습니다.

언제나 주님은 날 이해하고 안아주시고 제 어리광을 언제까지나 받아주시길 원함에도

토하여 내치리라 하십니다.

 크지않는 정박아 아들을 권면하시려는 뜻이겠지요.

제가 정박아 믿음였습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무서운 교만한 정박아입니다.

시간은 마구 지나가서 이제, 주님의 참으시는 끝이 조금씩 보입니다.

재림의 날이 가까운 듯한...

그리하여서 더욱 이리 말씀하시는 줄 압니다.

 

이제 감사하게도 전 제가

곤고한 자인 줄은 조금은 깨달았습니다.

아..

심적이나 물적으로가 아니고 영적으로요.

그리고 제가 가련할 수 밖에 없는 자이고

영적으로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었던 가난한 믿음의 소유자 임도요.

눈도 멀었습니다.

벌거도 벗었지요.

이제 조금씩 눈치라도 채게 해주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 삐지고 눈 가리고 안들으려 하기 보다는

가슴은 아프지만

진실하게 눈을 열고 주님의 소리를 받아들이려 합니다.

 

제 결정에 도움을 주소서.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권한다는 말씀을 들으니

저보고 '선택'을 하라시는 군요.

어릴 때는 모든 걸 떠넣어 주셨지만 이제 딱딱한 식물도 먹기를 선택하라 하시는 군요.

잘못된 선택은 위에서 말씀하신 바 처럼 '토해질 것'이겠지요.

 

 모든 '연단'은 주님께로 나오신다고 하십니다.

주님께 불로 지짐을 당하는 고통을 사라고 하시네요.

그러나 고통을 고통으로만 받지 말고 '금'으로 바뀔 고통 , 즉 연단을 사라 하시네요.

 

아침에 병원 묵상에서 '욥'의 친구들에 대한 절규를 들었습니다.

그냥 두라 하네요.

그러면서 그들에게서 눈을 돌려 '하나님'께 모든 것을 토하는 고통 대처를 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듣게 되었지요.

아침에 30분 먼저  도착해서 '생명의 삶' 묵상집을 들으니 눈에 콱하고 들어 오는 구절이  22절의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더군요.

 오늘 하루 성령이 하시는 소리가 상징적인게 아니고 직접 들렸으면 하고 바래며 갔더랍니다.

 그래서인지  욥의 절규하는 소리가 절규로 들렸던 것 같습니다. 

아침 부터 은혜로왔습니다.

 

아...

묵상하는 자들의 복이란 다름이 아닙니다.

아침 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소리를

성령을 통하여 듣게 된다는 겁니다.

 

그 소리가 미세한 파동을 그리며

나의 영혼에 조그만 파적을 그리는 시간이 점점 더 멀어져

어느 순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서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역사가 생기고

그 안에 끼어드는

온갖

잡생각 들이 나도 모르게 눌러지며

내 전 인생을 좌지 우지 했던 헛된 이상과 헛된 상념과 헛된 망상들이

어느 순간 흔적도 없어져

삶을 유지하던 세상에서의 갈구와 그로 인한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좌절하고 안타까워 하던 모든 이유들이 

서서히 해뜨면 증발해버리는

장마의 끈적거림 같이...

내 영혼에서 주님을 갈망함과

주님의 소리로 모든 인식체계가 정리되어

평강 이외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이

바로

주님의 소리를 듣는 자들의 기쁨이 아니겠나 하는 감동이 들었습니다.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래서

주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그냥 두시지 않는 겁니다.

 

고난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책망은 그 분의 임재 표시입니다.

징계는 버리지 않으신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렵고 힘이 들지만

열심을 낼 이유가 되는 겁니다.

 

회개는 당연한 우리의 의무고요.

 

 

 

 

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주님 이리 정성껏 준비하오리다.   오소서. )

 

 

 이게 가끔은 불신자 들을 전도하는 구절로만 오인되는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성숙한 우리 큰 아들이

이제 저랑 이야기 상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피드백을 들어가며

성질 급한 제가 '아~'하며 무릎친 경우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의 눈빛은 깊어져가고

그 아이의 행동은 훨씬 조신해져가고 있습니다.

 

그 아이랑

저녁을 먹어가며 대화를 깊이 하게 되는 날 이 자주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주님이 두드린다는 말씀은

제 잘난 맛에 제가 필요한 주님의 말씀만 선택적으로 듣고

문을 닫아 버리는 딱 막힌 '늙은 닭'같은 상태를 말씀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늘 말씀으로

성령을 통하여 두드리고 계십니다.

 

같이 동행하자.

같이 대화하자.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고 그 분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그 분이 내 마음 속 식탁에 앉으셔서 좌정하시는 상상을 하기 만 해도 마음이 밝습니다.

 

아 ..

그 분이 나에게 내 맛없이 끓여 먹는 라면을 나누자고 하십니다.

내 영혼의 뒤죽 박죽 신 김치를 같이 나누어 먹자고 하십니다.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보이기 어려운 내 삶의 식사 시간에 그분이 스스럼없이 앉으셨어요.

 

기쁨에

부끄러움에

갑자기 가슴이 두방망이질 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분이 날 사랑하신다는 반증이시니

난 얼마나 기쁜지요.

 

평생을 받아 보지 못한 깊은 인격적 사랑을 이제야 깊이 아는 것 만 같습니다.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식사하시며 이리 귀한 말씀을 하십니다.

감사하세요.

주님은...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성령이 말씀하시는 걸 듣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살아계신 그 분의 소리가 제 귀에 울리도록 하여 주소서.

 

 

 

적용

 

1.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하루가 되겠다.

 

2. 기도하고 말씀 보겠다.

 성경 5장 이상 읽겠다.

 

3.  아버지 학교 스텝 미팅하러 간다.

  가서 모든 말씀을 순종하려 노력하겠다.

 

 

 

기도

 

주님

이리 진한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뜻대로

뜨겁게 살기를 원합니다.

 

뜨겁지 않고 미지근 하던 자신을 깊이 인식하길 원합니다.

도우소서.

 

오늘 하루 만이라도

주님을 열렬히 닮아가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를 핍박하는 원수 같은 자가 있어도 사랑하길 원합니다.

오른 뺨을 치면 왼뺨을 댈 수 있는 열렬한 사랑을 원합니다.

 

그리하여

진짜 쉼을 얻고 싶습니다.

 

일요일 목사님 설교처럼

주님을 닮아가려 처절히 인내하고 순종하여

주님의 위로로 생기는 마음의 넓어짐이

쌓이고 쌓이면 그게 바로

세상의 어떤 고통에도 자유로운 쉼이 되는 것이라는 말씀.

주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전제로

깊이 감동하였습니다.

 

그리 되게 하소서.

 

예수님 닮아가는 하루가 되길 간절히 소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기쁨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 레옹 블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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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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