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간섭이 아니다 동행이시다[삼상16:1-23] 본문
▲ 아름다운 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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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안에 있으면
어지럽고 힘들고 죽을 것 같을 것 같다.
얽히고 섥혀 벗어날 수 없을 거 같은
그 인생의 간섭들...
누구하나
빠져나올 기운도 힘도 의지도
심지어 의식조차 없다
그게 숙명인양
그리 그리 그렇게 서로 위안하고
위로하며 살려 몸부림치고 살아간다
당연하지
주님 모르는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나
조금은 떨어져 지켜보고 있다
하나님 안에서..
참 다행이다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그들의 그러함
그 사망의 부대낌들이
때론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때론 그립기도 하다
불현듯
깜짝 놀란다
진리가 아니고 진실이 아님에도
그러고 있음을 깨달아 그렇다
당혹스럽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곧 깨닫는다
그 모든 것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심지어는 거부할 수 없을 것 같은
악한 영들의 유혹조차.....
그리고 우리의 결국은
선이고 승리임을..
깨달아지는
이 아침이
참으로 감사하다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주님은 매사에 간섭하고 일일이 지도하지는 않으시지만
또 매사 주님의 뜻 가운데서 있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우리의 마음대로 다녔거니와 나이들어 띠띠운대로... 라심처럼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던
빈공간의 허무처럼 만 느껴졌던
이 삶이
가만히 보면
어디에나 계시고
무엇이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신 것이 없으신 것임을
점차로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고 느껴지게 된다.
보라.
사무엘님에게는
왕으로 세워진 사울에게는
왕으로 세워질 '다윗'에게는
'못하게 하시'는
이 세상에 완전히
뚜렷하고 확실히
간섭하고 계시지 않는가?
간섭?
그게 어릴적에는 귀찮음과 간섭으로 느껴지지만
갈바모르는 두려움에 있을 때는
목숨의 동앗줄 아니시던가?
우리.. .
좁은 길 가는 자들..
하나님의 영, 성령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자들에게는
매사
매 일상이
점차로 더 뚜렷한 하나님의 '임재'로 느껴져야 하지 않던가?
간섭이 아니시고
간절히 기대하는
뚜렷하신 하나님의 동행하시는 증거.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겐
기쁨이고 가슴떨리는 기대이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그 분께서 이리 말씀하신다.
'주하인아
본질을 보거라'...........
예.
주님.
13.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정말 바란다.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는
매일의 삶을...
14.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15.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의 어떤 유혹도
내게는 의미가 없다 .
그 유혹과
세상적 성공에 대한 이룸과 못이룸
그로 인한 두려움과 번뇌와 갈등................
그 것이 너무 싫다.
그런데
가끔 부족하여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는 때
자주 두렵고 힘들다.
하지만 그때 조차
허락하신 '여호와께서 ' '부리시는 악령'이 이유란다.
이해가 가지 않는 세상의 고통,
현재의 막막함.........
그 모두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유임을
우리는 잘 알지만
가끔 , 자주 잊기도 한다.
그마져 하나님의 부리심과 허락하심이 이유임을
잊지 말자.
쉬고 출근하는 하루.
또 똑같은 일상의 수레바퀴,
늙어가며 점차로 외로워지는 상황.
괜한 무게.
홀로 있는 두려움............
................
거기에 매몰되면 그게 '사울의 마음',
악령이 움직이는 마음이 아닐까?
그러나, 그마져........
세상의 그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는 것이 없으시다.
'부리시는 악령'이라는 묘사가
희망과 소망으로 날 깨우신다.
당연하지만
그 당연한 사실을
왜 그리도 자주 잊는지..................
16.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세상의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신 것이 없으시며
심지어는 떨어지는 참새 한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시면 불가능함을
잘 앎에도
매일에 들어와
삶속에 매몰되면
어찌도 이리 잘 잊혀지는지...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
하지만... 큰 뜻을 위해 최소한의 간섭으로
자유의지를 존중하신단 사실에
우리의 매일이 자꾸만 오래 되풀이 되면
그 분이 세미하게 우리에게 손내미시고 계심을 잊고 있게 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그 분이 허락하시고
어디까지 우리가 우리의 자유의지대로 살아가야 하며
어디까지 고민하고
어디까지 믿고 기다려야 될지
자주 혼란 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데...............
오늘은 이리 말씀하신다.
" 이제 날이 갈수록
매사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흐르고 있음을 잘 알겠지?
그러나 그러함에도 아직도 남아 있는
네 안의 혼돈이 혼란스러운가?
그러나, 이제 주하인 넌
시간이 갈수록
매사 더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이 임하셨음을
그래서 더욱 더 조심하고 감사하고 기대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때론
혼란이 널 사로잡으려 할 때
네 가지고 있던 모든 깨달음과 경험들이
하찮은 모래성처럼 느껴질 때가 있더냐?
그러나 그 모든 것도
주님이 부리시는 악령이고
그 마져 나,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깨닫길 원한다.
그러면 다시 일어서 힘내고 나갈 이유가 되리라. "
주님
간섭이 싫어서 힘들어 하며
세상의 달콤함에 유혹 되어지낼 때
하나님의 말씀은 '간섭'으로 느껴졌고
거짓 설화처럼 치부되려던 때도 있었습니다.
수 없이 많은 굴곡을 넘고 넘어
지금 이제
이 세상의 이 모든 것이 허상이며
오직 하나님의 원하시는 연단을 위한 도구임을
확실히 깨달아 인지하고 살면서도
매일 매일이
이제는 지루하고 힘에 겹다는 생각이 많이 들 때가 있습니다 .
그때......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시곤
넘어지고 쓰러져 일어나지 못할 만큼 힘이 빠지려 할때도 있습니다.
때로 가끔,
주님께서는 최소한의 간섭을 원칙으로 하심에
내 , 우리 사정을 그냥 두시니 어떻게 해............라는
안절부절함에 사로잡힐 때도 있으려 합니다
'주여.
그러나 오늘.
너무도 당연한 원리...
'부리시는 악령'
악령조차 부리심
악령마져 우리의 선을 위하여 쓰심..
가장 최소한의 간섭이시지만
당신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가장 큰 '선'안에서
가장 세밀히 인도하시기 위하여
말씀으로 절 터치하고 붙드시고
말씀을 걸어오시고 깨닫게 하시는............
그래서 주님이
우리의 삶속에
제 영생의 길 위에
가장 선하게 놓여진 방향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주여.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그 어떤 장해물도
다 주님이 허락하신 것 맞으십니다 .
죽을 것 같은 힘듦과
혼란조차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어 베풀어진
인생의 연단 도구임을 깨닫습니다.
주여.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네게는 그리 인도하실 것이다.
그 악령마져 부려서
가장 선한 '다윗의 왕 즉위'를 위한 도구임처럼
네게도 네 인생에 맞게 그리할 것이니
아무 염려 하지 말아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여.
부르실 그날까지
쉬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매일 매시 인도받는
삶속의 영성자가 되길 원하나이다.
내주여.
부르실 그날까지
주님의 기쁜 간섭..
주님의 임재와 동행하는 삶이 멈추지 않게 되길 기도합니다.
모든 걱정근심 , 오류 다 주님께 맡깁니다.
내 주여.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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