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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of blood (나 3:1-19)

주하인 2011. 6. 22. 13:12

제 3 장 ( Chapter 3, Nahum )

 

세상아

이제 그만  멈추어라

내 영혼아

이제 그만 고개 들어라

 

피의 성이 되어가는

이 세상에서 눈들어

푸르고 높은 저 하늘을

이제 우리 바라보자  

 

 

1.  화 있을진저 피의 성(NIV : city of blood)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피의 성.

city of blood.

 

저 한마디로 다 그려진다.

온통 성이 피칠갑이 되어 있는..

포학.

잔인무도.

죄의 난무.

마지막.

지옥.

종말.

고통.

잔인한 웃음과 소리지르는 아픔.

피가 튀어 성벽이 피로 칠갑되는 영상...

 

2. 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3.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아.

상상하는 밑에 이렇듯 '멀티미디어적 표현 ^^;;' 이 그려져 있다.

휙휙하는 채찍 소리,

윙윙..

말달리는 소리..

충돌하는 기병.

칼의 쨍..부딪는 소리.

창의 푹~하는..

 소리소리소리... .

거기에 시체 더미 .

너무나 많아 걸려 넘어지는 장면

 시각적 이미지.

 

 

4.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그런데 저러한 포학과 잔인의 극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미모의 여인'

그것도 섹시한 음녀 가 나온다.

음행을 한다.

잔인과 섹시.

포학과 음란이 어우러져 있다.

잔인한 사람 곁에 '여인'이 있다.

둘은 서로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다.

 

 위의 지속되는 표현이 '니느웨' , 그 고대 강국의 몰락을 표현한다.

 

 요새 영화는

표현의 자유를 힘입고 '엽기'를 이유로

'postmodernism'이란 포장으로 아주 잔인하기가 말로 표현 못한다.

공전의 히트를 친 '아저씨'라는 영화를 보고 진저리를 쳤다.

그외에도 '피'가 난무하는 영화는

그렇지 않은 영화를 꼽아보기가 더욱 어려울 정도로

온통 세상을 자연스레이 '피칠갑'으로 포장해간다.

사람들이 어느새 '지독한 포학'을 자연스러움으로 받아 들여간다.

더불어 음란은 당연히 따라 자유로와진다.

영화 뿐이던가?

심지어는 TV,  노래에서 경쟁적으로 저속화 퇴폐화 되어간다.

 아이돌이란, 10대 후반 ~20대초반들의 행하는 뮤비는

음란을 조장하는 공영파 방송에서조차 절레절레 할 정도다.

그리고는 부끄러움도 모른다.

어쩌다가 대화를 하게되는 '믿지 않는 분'들 중의

연세 지긋하신 분들의 대화 내용에도

저러한 문화가 너무 자연스레이 벌어지고 있음에 놀라고 있다.

물론 ,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까지는 아니리라 자위는 하고 있지만..

마치, 피의 성이 되어 있는 듯하다.

곳곳에서 채찍소리, 아파하는 소리, 그들과 상관없는 끼리끼리의 외치는 소리..

세상이 온통 수천년 전

니느웨의 그 부를 누리는 속에

뿌려지는 피로 뒤덮혀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왜 인가?

왜 세상이 이처럼 급변하고 있는가?

오늘 '미모'의 음녀' 라는 표현이 있다.

 미모.

눈에 보이고 자신이 느끼는 바가 '진리'라고 떠드는 세상 속에서

조금 나이들어 콧속에 넣은 이물질이 부작용을 유발할지,

킬힐이 '무지외반증'의 고통을 초래해

인생후반전에 그들에게 끼칠 해악이 얼마나 중차대할 지,

마구 집어 넣은 보형물과

주사로 편 주름이 나이들어 얼마나 추하게 될지 ..........

전혀 고려하지도 않고 너도나도

저런 '미모'가 온 세상의 진리일 듯

오직 '감성적 아름다움' 하나가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서로의 '정'이라든가,

도덕이라든가, 아름다움, 순수, 사랑 - 다른 의미로 더 많이 쓰이지만.. - 이라든가

그리고 배려나, '믿음' 같은 의미는 생각할 겨를 도 없이

그들을 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세상의 유행을 돌아보면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패션이 돌아가고는 있지만

모두 어찌 보면 거기서 거기다.

'만들고 '꾸미고 거짓으로 위장하고...다.

순수한 아름다움.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매력은 없다.

사진을 찍어도 얼짱 각도에 볼을 뽈록......이는 천편일률이다.

그토록 유행하는 페이스 북이나 .. SNS에도

너도나도 비슷한 내용 뿐이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사고

무엇을 꾸미고

애기 사진 올리고

잘했다... 멋있다.. 좋다.  맛있다.................일색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생각할 여지도 없고 의미나 가치가 있지 않은

겉으로만 '미모'이고

누구 한사람에게도 영적인, 심리적인 위안이 되지 못하는

내용들이 쓸데없이 시간과 공간을 점유해 버린다.

좋은 내용도 스크랩하여 올리지만

그것조차도 감성을 자극하거나 유식하게 보이는 내용으로

포장할 목적 ..이외의 것은 아무도 아니다.

그로 인하여 깨달음이나 인생의 도전을 유도하기는 문제다.

이것들이야 말로 '영적인 음란'이 아니던가?

 미모의 여인의 영적인 음란'

 

이런 세상의 문제가 과거의 니느웨의 영광 중에 횡행했던것이다.

그로 인하여 그 성은 결국 '피의 성'이 되어 버렸다.

깨달아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에게 '피의 성' 과 '미모의 음녀'는 어떤 의미인가?

무엇을 바라시는가?

오늘 하루 내 삶 속에서 어떤 연계를 두시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경계가 아니신가?

세상의 가치에 나도 모르게 젖어

피의 비린내를 느끼지 못하고

휙휙하는 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영적으로 죽어가는 불신의 시체같은 자들을 안타까워 하지 못함을

경계하는 것은 아니시던가?

 혹여 '미모'가 ' 진실이고 진리'인 것은 아니던가?

조금은 답답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말씀놀이는 아닌가 ... 하는 의구심이 들도록 하는 미모가 아니던가?

아름다우면 다 옳은 것처럼 느끼는

이 감정적 에너지 소유의 주모를 깨우치시는 뜻은 아니시던가?

 

다시.. 온전한 주님의 보혈의 향기를 사모해야 한다.

피는 주님의 피로 족하다.

타인으로 하여금 흘리게 하거나

타인의 흘리는 피를 무감각하거나 즐겨하는 삶의 태도는 취하지 않아야 한다.

더욱 순수해야 한다.

남들은 버려도 '배려'를 더욱 익혀야 한다.

타인을 긍휼한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사랑으로 그들을 보아야 한다.

'나'를 이해하고 나에게 빗발치는 사단의 공격이 있어도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서

더욱 보호해야 한다.

성령을 사모하고

사랑을 회복하고

더욱 겸손한 자로

나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이 주님의 허락하신 상황임을 이해하여야 한다.

포학은 버려야 한다

어떤 옳은 이유라도 온유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원수를 갚지 말고 주님께 맡겨야 한다.

세상의 피칠갑을 불쌍히 여기시도록 주님께 기도하여야 한다.

보혈로 그 피들의 흘림을 씻겨주시길 간구해야 한다.

그리되길 간절히 빌어 본다.

 

 

 

적용

1.  우리 나라를 피칠갑하려는 악한 사단의 영을 묶으시라고 기도한다.

 

2. 잔인해져가는 세대를 위하여 기도한다.

 

3. 순수해지자.

 

4. 미모의 음녀의 달콤함 보다는

  어렵지만 은혜로운 말씀과 은혜를 사모하자.

 

5. 세상과 다른 나의 가치를 기뻐하자.

  당황하지 말자.

  그들의 핍박을 가여히 여기자.

 

6. 주님 온전히 인도하실 것을 믿자.

 

 

기도

주님.

이 어두워져 가는 세상을 돌아보실 것을 기도합니다.

피칠갑,

악한 소리들,

엽기적인 현상들,

음란의 극치........

물질이 발달해감에 따라

더욱 심해져가는 니느웨적 현상들을 봅니다.

그리고 그 현상들을 무비판 적으로 받아 들이게 되며

영혼이 파괴되어가는 것을 걱정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 사회속에 살면서

그들이 튀기는 '피'에 젖지 않기가 참 어렵습니다.

아니, 오히려 미모로 가장하는 음녀의 유혹에

가치마져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아니어도 그들과 같이 묻히지 않는 저를 공격하는

저들의 비아냥이 가끔 가슴이 싸하기도 합니다.

주여 .

이때 지키소서.

절 성령과 말씀으로 붙드시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다시 한번 제 영혼을 씻으소서.

 

특별히 젊은 세대 지키시고

속절없이 무져져 가는 그들의 영을 깊이 깊이 붙드시어

하나님의 영과 병행하려 하는 세상의 어떠한 붙듬도

피의 칠갑을 유발하는 어리석은 가치임을 깨닫게 하소서.

제 자식들도 지키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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