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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나2:1-13 )

주하인 2011. 6. 21. 14:03

제 2 장 ( Chapter 2, Nahum )

 

이제 다시 오르려 합니다

이제 다시 힘내려 합니다

이제 다시 승리하게 하소서

 

주여

제손 잡아주소서

저로

지치지 않게 하소서

 

주님 허락하신

이 모든 상황에서

싸워 이기게 하소서

 

이제

한걸음 딛사오니

주여

절 인도하소서

 

1.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지어다 
  언제는 안 그렇겠는가만

영적 전투는 매사에 일어난다.

문제는 그것을 인식하고 매일의 삶을 주님의 뜻 가운데 바라보면

그것은 분명 '파괴하려는 자'와 '산성을 지키며 파수하는 나'의 싸움이 되겠고

그를 통하여 허리를 견고히 묶고 힘을 크게 하기 위하여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는 시간이 자칫 매우 짧아짐이다.

 짧아짐은 사단이 좋아하는 일이다.

그들은 '물질 문명'의 급속화 가속화로 통하여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더 이상 우리의 관심이 '영'에 머물지 못하게 막음이 그것이다.

그리 하여 '영적 전투'라는 개념조차 잊게 만든다.

하늘의 일,

천국,

죽음 후의 심판 등은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비아냥 댄다.

그러다가 불현듯 그날이 그들앞에 닥치면

그들은 정신 차릴 사이도 없이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니던가?

 

이제 '파괴'하는 자가 올라옴을 인식함 만도 대단하다.

그리하여 말씀 앞에 날 세우고

그러한 준비를 하고

그러한 싸움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림을

오늘 하루의 내 삶의 목표로 삼음이

선택이 되어야 한다.

 

  
10.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무하였도다 거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11.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뇨 젊은 사자의 먹는 곳이 어디뇨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그렇다.

니니웨는 공허해지고 황무해질 것이다.

그들의 사자처럼 힘있어 보임도

반짝이는 얼굴도

모두 결국 힘을 잃어 갈것이다.

 

이땅의 영화는 잠시다.

너무도 유한하다.

끝없이 되풀이 될 것만 같아도

결국은 니느웨의 무너진 영광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땅에 관심을 둠은 그리 큰 유익이 없다.

아니,

오히려 회한 만 남고 공허만 남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니

불현듯, 내가 잘못 사는 것은 아니던가.. 생각이 든다.

외로움은 너무 외롭고

나의 매일의 삶이 너무 공허한 듯 하려한다.

잠시 목표를 잃고 흔들리는 듯 당혹스럽다.

왜 그럴까?

왜 이리 이제는 잊혀져 버리고 있는 어이없는 생각이 밀려드는가?

화들짝 이 감각들의 '하나님 것이 아님'을 깨닫고는 털어내었다.

짧은 시간 화살 기도를 하고는

그리곤 묵상집을 얼른 들었다.

잠시 집중을 하고는 들여다 보았다.
 ' 큰 대적이 쳐들어 온다'고 나온다.

그렇다.

대적이 맞긴 맞다.

공허함...악한 감정들.

 왜 그랬을까?

 

 지난 수개월 간 CPE교육을 어제 마감했다.

같이 수료하신 동료들이 아쉬워 한다.

어차피 회자정리,

만나면 헤어질것을 일찌감치 깨달아버린

난 

아픔을 미리 방어선 치는 연습이 잘되어서인지

내 감정의 억압탓인지

나이 탓일까? - 아니다 . 나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도 있느데..  - 아니면,

말씀 앞의 훈련 탓인지..

아쉬움은 있지만 그리 큰 붙들림은 없다.

그런데 그 아쉬움이 여러 내 삶의 기조의 분야에 대하여

또 다시 자극을 하였던가..

아침이 외로웠다.

그 외로움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은혜와의 조율을 참 잘해가고 있던 터..

며칠 흔들리는 사건들이 중첩된 가운데

CPE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더욱 그런 마음을 가중시키는 지도 몰랐다.

어쨋든 , 말씀은 날 깨닫게 한다.

 

 ' 큰 대적'이다.

 

그래서 다시금 날 돌아 보았다.

 하나님 알기 전 부터 그리 형성되어온

변할 수 없는 깊은 내 생각의 기조를  어찌 바꾸겠는가?

그렇다면 내가 어찌 이 습관적으로 ,

더구나 나이들어가면서 더욱 깊어지려는

'외로움'이란 대적들의 밀려옴을 어찌 대처해야 하는가?

 일단, 그냥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 들임이다.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현실을 기뻐하고 장래를 고민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다.

 또한, 현실에 대한 것을 만족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족은 비교가 없어야 한다.

비교는 '나'의 부족함을 깊이 깨닫는 것이다.

나를 기뻐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간구해야 한다.

간구를 응답하셨는지,

말씀으로 또한 깨닫게 하신다.

말씀을 통하여 매일 적절히 인도하심은

주님이 날 사랑하신 탓이시다.

난 주님의 사랑 받는 자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니느웨의 그 사자 같던 영화 조차 한줌 비웃음 거리' 라는 것이다.

깨달음이다.

이 세상을 눈여겨 보고

세상의 잘나가는 자에 눈을 고정시킴은

영혼이 피폐하게 하는 것이다.

늘 내가 가진 것은 잘 나가는 자들에 대하여 부족하다.

그러기에 늘 불편하다.

가져도 부족하다.

그러나, 주님은 진정한 것은 ' 하늘 나라' 내 본향에 있음을

니느웨 , 그 부국의 멸망과 쇠퇴를 상기시키심으로

내 대적의 간계를 깨닫게 하심이다.

 영적 전투의 '본질'을 말씀하신다.

허구의 바람 불면 날아가버리는 진실을 깨닫게 하심이다.

 

할렐루야 아니던가?

그렇다면 내가 할일은

주님 말씀 안에서 매일 인도함 받는 것이다.

어두운 밤길, 발 밑을 비추시는 등불이신 말씀을 빛으로 삼아

한걸음 한걸음 또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눈을 들어 내 형편을 보고

나에게 쏟아지는 대적들의 비아냥을 보면

참 혼란스럽다.

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물질문명의 옳다 소리지름에 귀를 고정시키면

난 한없이 부족한 자가 맞다.

그러나,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나를 주님이 만드셨고

난 그런대로 옳고

주님은 내 이런 것을 가장 잘아시며

내 끝은 주님나라 가서 결정될 것이며

지금껏 살아서 내 곁에서 운행하시는

내 아버지 하나님이

날 가장 잘 알아서 인도하실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내 모습은

과거의 흔적이고

과거로 부터 미래, 내가 갈 본향까지 연장해서 생각하면

그 어느 것도 버릴 것이 없다.

버릴 것이 없음은 걱정 보다는 기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

그러기에 난 내 대적들의 간계를

간계로 인정하고

지금 내가 걷는 매일의 여정이

'영적 전투'에 있음이며

내 망원경에 보이는 내 본향을 바라보고

망하는 영적 니느웨에 더이상 눈돌리지 말것이다'라는 것이다.

감사하다.

깨달음이다.

 

 

적용

1.  외로움.

 가만히 들여 다 보자.

 그들을 통해서 날 자극하려는 진실을 보자.

 날 받아 들이고 인정하자.

 

2.  영적 전투

 매일이 영적 전투임을 잊게 하는 게 세상이다.

세상은 사단의 횡행 장소이다.

그러하면서도 삶은 날 연단하는 장소이다.

옳은 판단과 생각을 유지하자.

 

3.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자.

 예수님 앞에서 영적 군사로 설 수 있도록..

 외로움에 휩쓸리지 않도록..

 그러하면서 받아 들이고 인정하도록..

 군사의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4.  타인을 인정하자.

 긍휼한 마음으로 타인을 볼수 있길 간구하자.

 다른 이들도 주님의 작품이다.

 그들을 곱게 보는 시선을 주시길 기도하자.

 

5. 성경 세장 읽겠다.

 

 

 

 

기도

 주님.

매일이 전투의 현장인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날 연단하시는 현장이심을 또 잊었습니다.

자주 세상을 비교하고 바라보고 흔들리는 내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잊었습니다.

교묘한 홀림으로 세상은 날 향해 유혹하고 비교하고 질타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에 십자가로 구원 받은 날 잠깐 잊었습니다.

마치 이 곳이 모두 다 인것 처럼

매일 날 흔들어버립니다.

그래서 생각할 기회를 자꾸 잊습니다.

주님 ..

여기는 단지 거쳐가는 장소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연단 받을 곳임에도

이곳이 모두이고  이곳의 가치에 부응치 못하는 내가

loser인듯, 그리 날 오도시키려 많은 애를 쓰는 듯합니다.

 주여.

많은 기회를 깨닫게 하셔서

많은 시간을 평안 중에 지내고

이전보다 훨씬 더 자유롭지만

가끔 가끔 또 잊어버릴 때

주님은 말씀으로 성령님의 운행을 허락하십니다.

참 감사합니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저를 쳐다보심을 깨닫습니다.

말씀 속에 숨겨 놓고

주님의 성령으로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신

그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에

조금은 동참시켜주심이 감사합니다.

이 세상이 그냥 하염없는 시간 흐름이나

세상의 횡행함에 수몰되어 사라지는

그런 허망한 시간의 조류가 아니고

주님의 허락하신 연단의 장소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승리를 이끌어낼

허락되어진 전투의 고난에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깨닫게 하시고

이길 방법을 주시고

성령으로 도우시는

그 세심함에 감사드립니다 .

이제 저에게 허락되어진 분량.

깨달음과 선택의 의지를 드립니다.

주님 인도하시고

주님이 운행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내 만군의 왕께

내 전투를 맡깁니다.

절 손잡아 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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