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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아멘( 나훔1:9-15 ) 본문

구약 QT

그들과 아멘( 나훔1:9-15 )

주하인 2011. 6. 20. 12:59

제 1 장 ( Chapter 1, Nahum )

 


9.  너희가 여호와를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예기 불안'

다시  그 불안함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 믿어진다면

그게 평강이 아닐까?

불안한 것이 안 일어날 것을 믿어지는 매사의 일이 늘어남이

믿는 자가 가지는 행운의 아주 일부분이다.

나에겐 크지만..^^*

 


  
  
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장하고 중다할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게 하였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더라도 반드시 멸망을 당하리라'

아멘이지 않는가?

내가 거부할 수 없는 그들.


 
13.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너의 결박을 끊으리라
 아멘이다.

그의 멍에.

난.. 안다.

누구에게 말할 수는 없어도..

 

그 그의 멍에

그들의 소리의 멍에를

주님이 깨드리시고

그로 인한 평생의 결박을 푸신다.

아멘이다.

믿어지지 않아 왔지만 믿으려 노력하고

믿어지는 현상을 매일 일상에서 경험해왔다.

그래서 또 아멘이다.

 

 

 토요일.

주말 당직이다.

1시 퇴근 후 여성 병원 당직.

퇴근하기 직전에 외과적 문제가 있는 환우 분이 혹이 있다는 CT판독이 있다며

협진이 왔다.

산부인과적 문제는 경미하여 지켜 볼 수 있으나 기왕에 외과 수술을 하게 될 때

같이 볼 수도 있을 경우.

환우에게 설명하니 내과를 거쳐 '외과'를 먼저 가니

진찰도 안하고 먼저 산부인과 보라했단다.

아마도 주말 오후의 수술환자를 협진 의뢰 하기 미안하니

먼저 서둘러서 그랬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경우 전화 하고 협진 의뢰함이 부드러운 인지상정.

전화가 없다.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당직을 서고 있는 상황에서

수술 끝났으니 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참 어이가 없다.'

전화가 없으면 당연히도 delay하여 월요일 수술하거나

산부인과적으로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잊고 있었음을 저런다.

그래.

한두번이면 괜찮은데 유사한 일로 여러차례 문제의 소지를 일으켜왔던 O과장.

나이 차이도 있고 세대가 다르기기에 직접 대놓고는 뭐라하지 않았지만

나름 대우를 기대했던 게 내 바탕에 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잘못된 줄은 알았지만 '알았다'는 이야기를 비아냥 거리듯 받았다.

회개는 결국 많이 하게되었지만..

수술방에 가니 자기 분을 이기지 못했던지 그냥 수술을 마치고 나왔다 한다.

대화를 요청했다.

그렇지 않아도  O과장.

참 어이없는.......

 상황은 그러나 안하느니 만 못한 결과가 왔다.

되려.. 반발 만..

이구......

이건 세대간의 단절이 너무 깊다.

대화의 기조자체가 너무 다르다.

결국, 환우 진료 문제를 두고 가지게 되었던 오랜 의견의 차이를

이번 문제를 통하여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려 했던 그 마음 깊숙한 곳에

내 '나이든 자로서의 대우 '받을 욕심이 들어 있었던 탓인지

많은 거리가 있음을 깨닫고는

'에고 에고... 고만합시다.

 내가 잘못했네요.'하고 말았다.

 다시 당직 방에 들어오니 생각이 몰려온다.

' 어이없을 정도로 기본을 모르는 사람에 대한 분노.'

' 어른에 대한 대우란 개념조차 없는 시대에 대한 충격'

' 나이 든 자로서 문제가 될 소지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 하나님의 말씀이 그 때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는 자괴감'

' 주님의 뜻에 따라 아직도 내가 가야할 길이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있는데 대한 힘빠짐'

' 비웃음을 당할 것 같은 생각'

' 앞으로 내 처신......'

' 내가 나를 더 깊이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는 사실에 대한 확인'

 ' 그래서 생기는 죄책감'....

한편으로는 그래도 목소리 높이는 빈도가 많이 줄었고

머리 복잡한 상황에서도 주님 앞으로 가져오는 게 습관이 되어 있는

내 자신이 다행이라 자위는 했지만

틈틈히 내 차분한 영혼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사단의 소리들이 울리는 듯 하다.

 

그래도 바빳다.

여러 환우들로 정신없이 주일을 보내고

오늘 아침.

 아침에 일어나니 슬그머니 생각들이 또 내 차분한 마음을 비집으려 한다.

그래서 의지를 발휘해서 묵상을 하려 했다.

첫 구절이 그렇다.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멘이다.

주님은 다 아신다.

내 생각들을 뚫고 오는 사단의 흔들게 함을 용인치 않으신다.

두려워 할 것없다.

내 급한 분노,  그리고 그로 인한 자괴감... 등이 난 싫다.

주님의 평강을 경험한 후로 점점 더 커지는 욕구다.

그것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첫 멘트'로 약속하시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좋아했던 구절을 다시 한번 생각지도 않게 만나게 하신다.

' 12.  그들이 비록 강장하고 중다할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

아멘이지 않는 가?

위에도 적었지만 내 생각을 뚫고 오는 생각들이 저렇게 많았었다.

그 생각들이 '멸절'당하는 경험을 하는 동안

나는 점차로 인격이 유순해져 가고 있지만 ^^*

아직도 몇가지 해결치 못한 것들이 있다ㅜ.ㅜ;.

그것들을 내 아버지 , 내 하나님께서 저렇게 말씀하신다.

'그들이 강하고 많더라도 반드시 멸망한다'

아멘이다.

이 아침 예언의 말씀을 선언하신다.

그러고 보니, 마음이 청명하다.

 말씀이 이어지신다

'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게 하였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

 꺄우둥 할 수 있을 구절.

어찌 전능하시고 사랑 많으신 그분이 날 괴롭게 하여 오셨다 고백하시는가?

 그런데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이

그 고난이 선을 위하여 허락하심을 생각하면

그 괴로움을 더 진행하지 않으신다는 선언은 감동이지 않으신가?

어쩌면 , 내 걱정하던 괜한 생각들이 소리를 내길 멈추고

난 이제 부터 내 평생을 힘들게 하던 터부들이 가라앉게 될 것임을

어제 이후의 기도와 평강의 회복을 더불어

이 아침 저리 말씀해주시는 절묘한 타임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나를 향한 '레마'의 예언이심으로 느껴지게 한다

살아계신.. 내 아버지.

하나님... ♡

그것은 '믿으면' 내 고생은 넘어갈 수있다는 이야기시다.

그리고도 이해를 못할까봐 다시 설명하신다.

13.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너의 결박을 끊으리라

 '내게 지워진 그의명에 '

마치 욥의 어려움을 사단에게 허락하신게 결국은 욥의 선함을 위함인것처럼

고난으로 허락되어진 나의 멍에를 통하여 괴롭게 하신 것을

'이제는 깨뜨리셔서' 회복시키신다는 말씀이 아니시던가?

머리가 복잡하던 것이 맑아진다.

그러면서 나의 유익을 위하여 나에게 허락하신 감정적 혼란을 깨우쳐지게 하신다.

 

알게 모르게 난 '서운함'의 도장을 다시 찍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물론 부족한 잘못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으로 보고 도장을 찍어 꽁꽁 '서운함'의 눈으로 쳐다보니

그들의 다른 생각들을 용인하고 받아들이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나의 오래된 멍에고 결박이 아니던가?

남에게 도장찍어 서운하게 생각하고

마치 나이든 게 무슨 벼슬처럼....당연한 나의 권리로 생각하는 것.

그러는 것은 오히려 나의 영혼의 괴로움을 가져오고

결국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부분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면 어찌 해야 하는가?

말씀 구절을 가지고 '그일'을 대입하여 기도하였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먼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쪽..^^; 팔리는 일이고

답장을 안오면 - 솔직히 O과장의 캐릭터상은 가능한 일이다 .ㅎ -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이게 내 마음의 장난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잠시 묵상의 기도를 했다.

떠오르는 참신한 느낌이 있다.

그리고 그게 은혜로울 때 다가오는 마음의 평화가 있다.

' 나를 낮춤은 하나님을 높임이다.'

' 더 이상의 멍에를 짊어지지 않고 맑은 얼굴로 타인을 대할 수 있는

 사단의 결박을 끊는 길이다. '

'.. 다.

그렇다면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런데도 자신없는 부분이 다시 생각이 난다.

그리고는 또 다시 엮이면 어쩌지?

솔직히 아무렇지 않은듯 표정관리 어려울 수도 잇는데..

하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이 다시 있다.

 주님이 아침에 '다시는 재난이 일어나지 않겠다' 하시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게 그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할 일이 생각이 난다.

모든 안좋은 부분들은 내 자아가 승해서 그렇다.

그냥.. 병원의 선배의사.

점잖이 나이들어가는 겸손한 자..로서

무조건 웃기로 결심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한 나의 결심을 주님이 '그의 멍에를 끊어주시고 결박을 풀어서'

더이상 괴롭게 하지 않는다고

나의 깨달음을 기뻐하시는 것 아니시던가?

 

감사하다.

마음이 가볍다.

그래서 썼다.

' 내가 잘못했어요.

나이든 자가 더 너그럽지 못했네요.

나이가 들어가니 더 서운한 것 많아지네요.

이해하세요.

같은 공간에 살면서 어찌 얼굴 굳히고 살겠소.. '

 

 답변이 없어도 괜찮다.

이제 내 멍에는 끊어졌고 그 죄악은 '토스'되었다. 

선택은 그의 문제다. 

그가 풀지 않으면 그는 더욱 무거운 짐지게 될 것이니

그것은 이제부터 그의문제다. 

원수는 주님이 갚으시고

그래도 예수 믿으시길 잠시 기도하고 

출근했다. 

좋은 아침이다. 

 

 

주님.

귀하신 내 아버지 하나님.

날 매일같이 붙드시고 

좌절 속에서 다시 일으키시어 

날 도우시는 내 하나님.

잠시 주님을 욕보이는 죄를 지었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 절 버리시지 않으시는 

그 신실한 아버지의 사랑을 믿기에 다시 일어섰습니다. 

주님께서 이 억울한 마음 ,

나이들어가며 서운해져가는 약함을 불쌍히 여기실 줄 믿습니다. 

혹여, 나쁜 사단이 걸어오는 죄가 있다면

주님이 원수 갚으소서. 

이제 주님.

선한 마음으로 더욱 낮추니

오늘 주님의 말씀대로 더 이상의 재난이 없을 줄 믿습니다. 

더이상 내 속의 횡행하는 

강하고 중대한 죄에 의하여 끌려 다니지 않게 하시고 

이제 그의 멍에를 끌러주시고

결박을 푸소서. 

더 맑은 하늘을 봅니다. 

주님의 약속,

주님의 절묘한 시간의 인도.

깨달음,

그리고 평강.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내 구주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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