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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rivers of Babylon (시137: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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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rivers of Babylon (시137:1-9)

주하인 2012. 1. 16. 13:21

(시137:1-9)


(펌)

바벨론 강은 유브라데강을 의미합니다. (창 2:14)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 By the rivers of Babylon we sat and wept when we remembered Zion.)
 '바벨론 강가'

 

'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

' 울었다.'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If I forget you, O Jerusalem, may my right hand forget its skill .)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 다면 , 내 오른 손이 그 모든 재주를 잊을 것이다'

 

 절대로 못잊을 것이다.

 

보니엠의 노래로 대 힛트를 쳤던 '바빌론 강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었던 죄로

이방 바벨론에 잡혀가서 포로생활 하면서

그들의 잘못을 깨닫고

( 영적 )예루살렘( 천국 )을 잊으면 오른손이 재주를 잃는다... 한다.

절대로 못있는다는 굳은 결심이다.

결심에 고향을 그리워함이 너무도 절절하기에 그렇단 뜻이 들어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강가일까?

바빌론 강가.. 그것도 한곳이 아니고 여러곳의 강가에 찾아가

시온을 향해 울었을까?

 

시원함이 아닐까?

막힌 듯 답답한 마음을 뚫어주는

강물의 흐르는 소리 ,

많은 물소리,

하나님의 목소리로 묘사되었던 많은 물소리와 같은 상징으로 그랬던가?

 아니면, 고향의 그 강가와 유사한 곳이라서 그랬던가?

 

 시온.

하나님의 성전, 천국.

실은 그것을 사모하고 욺은

그들의 고향 사모보다 더 간절함은

영적 메마름에 대한 갈급한 사모이다.

 저들의 절박한 소원이 가슴에 느껴지려 한다.

 

나.

돌아본다.

잠시 바빌론 강가를 연상한다.

그곳에서 울부짖는 그 마음을 연상해본다.

과연 '하나님 나라'가 절박한가?

저처럼 강가에 나가 울부짖을 만큼 마음이 천국을 사모하는가?

혹여 내 움직이는 모든 원동력이 ' 남자의 결심'은 아니던가?

남자는 ' work'을 위해서 움직인다 한다. 

자아의 성취를 위한 움직임.

혹시 '신앙' 마져 그러한 성취의 변화는 아니던가?

아니면, 감성적 자극에 의한........?

 

정말 오늘 필요한 것은 무엇이던가?

진정으로 '시온'을 사모하고

진정으로 시온을 사모하지 못하여 겪는 고난이 죄스러워서 그러함은 아닌가?

마음이 답답한 월요일이다.

어제는 ' 하기오스 '의 수련회가

주일 예배 후 6시에 과천의 '로고스 센터'에 모여 이루어졌다.

나름, 재미있었다.

유익했고..

무엇보다 '연합'하는 좋은 모임의 그것이 좋았다.

늦게까지 '강의 ' 듣고

'실기' 하고

뛰어난 재기의 젊은 전도사님들이 오셔서 '게임'도 하고

간식도 먹고........

존경하는 목사님과 같은 방에서 대화하다가 잠들고......

아침에 일찍 나와 출근했다.

아내와 여성팀들은 오전까지 계속 강의를 듣는 다한다.

 

그래도 마음이 답답했다.

왜 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알겠다.

해결하지 못하는 깊은 '죄'.

 

주님은 그것을 가지고 '울기'를 원하지 않으시는가?

바빌론 강가의 열렬한 '회개' 와 '절박한 사모' 를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함.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

정말 '이 땅'에만 국한된 축복을위해서인가?

내가 바라던 '전인적 '회복,

타인의 아픔을 의학적, 경험적, 전인적 도움을 주는 그런 차원에서 ......?

 며칠 전 불현듯 깨달았던 것이 그것이다.

분명코 주님은 천국을 올 자격을 위해

세상에 오셔서

'고치기도 하시고'

'가르치시기도 하시고'

' 죄 사하여 주신 후 성령의 세례를 받을 자격'을 허락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내 관심은 철저히 ' 이땅' ,

영적 바벨론에 머물고 있었는지......깜짝 놀라면서 깨달았다.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달리시기 까지 하시면서 주시는

복음이란,

값없는 구원이란,

결코 이땅의 호의 호식과 아픔회복 차원에 국한 됨이 아닌데.........

참 어리석게도 이땅, 바벨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결국은 천국의 개념,

주님 계신 그 나라의 영생의 삶은

아직도 뚜렷이 날 사로잡지 못하는 관심이었던지

스르르 잊으려 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바벨론의 여러 강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만나려하는 저 강가들..........

주님을 사모하게 하고 주님 나라를 갈급하게 그리워 하게 하는

저 영적 강가들에서

천국, 영적 시온을 처절히도 사모하는 그 마음을 보고 있다.

마음 한구석이 뭉클하다.

 

주님 나라를 저리도 처절히 사모하면

이땅의 온갖 제약이 참으로 가벼워질 텐데.......

그리 큰 의미를 갖지 못할 텐데.....

내가 답답해 하는 ,

그 깊은 속내의 원인들도 그리 큰 의미가 없을 텐데.....

어찌 난 저리 사모하지 못했던 말인가?

 

예수님을 다시 한번 묵상하자.

그 분의 십자가를 지셨던 그 아픔을 기억하자.

그 분이 그러심을 할 절대의 이유,

너무나도 뚜렷한 이유를 다시한번 묵상하자.

 

 

주님 .

성령님 도우소서 .

저로 하여금 주님 나라를 절절히 사모하게 하소서.

잊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를  그리워 하게 하소서.

흐르는 물소리만 들어도

주님을 그리워 하게 하시고

넓은 트임 만 보아도

천국의 그 평화를 상상할 수 있게 하소서.

이 땅,

바벨론의 땅을 확실히 인지하게 하시사

틈만 날때마다 바벨론 강가에 가게 하소서.

주님이 원하시면 오늘 저녁 있을 부흥회 강가에 가게 하소서.

거기에서 놀라운 은혜를 얻게 하소서.

부디 천국을 더 사모하게 하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그 충만하신 은혜를

이땅의 편한 도구로 그치지 않게 하소서.

정말 귀한 나라,

가야할 본향,

영적 시온에 대하여 더 갈급하게 하소서.

그 나라 갈 때까지

더 절절히 세상을 살게 하소서.

주님 나라 때문에 더 착하게 살게 하소서.

지금 허락하신 모든 그리움,

지금 허락하신 모든 답답함이

시온을 향한 불타는 마음  크게 하시기 위함을 잊지 않게 하시사

매사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의 주 제목이 그나라 가기위한 준비 가 되게 하소서.

성화되게 하소서.

점점더 나아지게 하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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