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2년이란 기다림 동안 (행 24:24-25:12) 본문

신약 QT

2년이란 기다림 동안 (행 24:24-25:12)

주하인 2007. 11. 8. 09:16

제 24 장 ( Chapter 24, Acts )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주님을 향한 의와 절제와 갈망으로  더욱 이쁘게 자라길 원합니다.)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벨릭스도

그 아내 드루실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된다.


 
25.  바울이 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바울의

복음의 내용은

절제

심판이다.

 그러나,

벨릭스는 귀를 닫는다.

두려워 한다.


 
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그가 듣는 이유는

'돈'이다.

 

 작금의 그리스도인들의 본질과 무엇이 다르랴?

나는 또 어떤가?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하여는 눈돌리고

평강과 자유, 오감을 만족하는 감각적 추구 때문에

주님을 바라보지는 않는가?

 


 
27.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 2년 동안 '

 

 요사이 같이

감옥에 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인권하고는 거리가 먼 시대이고

호시탐탐

감옥 밖에서 노리는 자들이 있는..

2년의 세월이

지금 내가 그 안에 있다면 

견디기 쉽지는 않았으리라.

아무리 친구 만남을 허락 받고

부분적인 자유는 허락 받았더라도...

 

 그러나,

그 당시의 사도 바울로서도

답답은 하였고

끝없이 변화없는 생활의 연속이라서

안절 부절 못했겠지만

그 2년 동안은

오히려

벨릭스와 그 아내의 전도기회였기도 하며

육신은

밖보다 편안한 상태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2년 후

로마의 복음화의

전 단계가 아닌가?

 

 

 때로는

평화롭지만

장래를 볼 수가 없을 때가

진한 고통과 환란 과정 보다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기도해도 주님이 예전보다 뜨겁게 느껴지지를 않고..

 

그럴 때는

주님이 한단 계 더 성장하기를 바라시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전의 믿음이

구원으로 인하여 의로워진 선물로서

오늘

벨릭스가 보여주는

이 땅위의 축복과 부에 집중이 되어 있다면

 

한단계 더 성장을 위해서는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한 확고 부동한 인식이 필수적임을 주님은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오늘...

나에게

개인적으로.. .

묵상은 개인적이다.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좀더 ,

 주하인아.

 의에 관심을 가져라.

 절제해라

 심판에 대하여 다시 한번 더 묵상하라.'

 

 예수님 믿고

죄인이니

절제하라니

십자가라니.. 하는 소리가 정말 듣기 힘든 소리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기왕에도 이 땅의 삶이 버겁고 힘든데,

그래서 가능하면 축복이 제일 일 것인데도

불위에 기름 부어 넣음을 받은 것 같아서 그렇다.

벨릭스를 보라.

그는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을 보면서

당연히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느끼고는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영적으로 죽어 있지 않은 바에야..

그러나, 버거운 것은 싫다.

 

그렇다면

성장은 왜 하는가?

성장은 주님의 뜻이기에 그렇다.

성장을 해야 이 땅의 삶도 향기로와 질 수 있다 .

평화로운 가운데 고요하게 살 수가 있기에 그렇다.

 절제와 의의 추구는

평안과 평강의 증폭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빠르게 의와 절제의 추구함은 어떤가?

 그것은 율법 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다분하게 있다 .

주위에서

의지를 가지고 주님의 뜻에 따라 빠르게 성장하려는 욕심으로 넘어지고 왜곡 되고야 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아왔다.

그만큼 주님 앞에 가는 길은 어렵다.

주님과 날마다 손잡고

그 분의 의중에 맞추어서 가지 않고는 어렵다. 

그렇게 가는 결과는 무엇인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것과 똑같다.

효도하면

그분들이 기뻐하시고

그 분들의 기뻐하심은 내 자랑과 기쁨이 된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가정의 기쁨은 천국의 축소의 모형이다.

 주님은 거기에 천국의 영원한 상급을 보장하신다.

이 땅의 평강의 절절한 열정을 더해 주신다.

삶을 책임져 주시는 보장 , 울타리 역할을 보장하신다.

그러기에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

꼭 끼어드는 방해물이 있다.

사단이다.

사단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천국을 지향하고 사는 삶을

자꾸만 이 땅에 머물게 하고

시야를 근시적으로 집중시키려는 작전을 가지고 있다.

 

그게

베스도의 '유대인을 인식'하는 마음이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

그들의 평가

그들의 소리

그들과의 비교

그들의 손가락질에 대하여

과도한 신경을 쓰기시작하면

벌써 영혼의 평화는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

사도바울님은 다르다.

 

 2년의 연단과정을 벌써 다 이해하며 지내고 있는

허락된 쉼의 시간에 -아는 자는 쉼이다.   모르는 자에게는 지옥이 그 메마름의 연단이다.-

그는 로마로 가야만 하는 당위성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다.

그냥 갈것이다.

시저의 법정에 설 것이다.

 

 아침에 찬양인도 하려 부리나케 나가려다 보니

복사를 안했다.

배는 아프다.

시간을 컴과 민생해결 장소 앞에서 깍아 먹고

큐티 장소를 들어서니

불도 안켜지고

사람도 없다.

늦었는데,...

 얼른 눈 감고 기도하고 -그래도 잊지 않고 보고함이 다행이다. -

컴을 켜고

키타를 잡아내리고

보면대와 마이크를 세우고

조율하고

스크린 내리고

시작하려니

마음이 혼란하다.

반주를 시작하려니

음이 안맞는다.

분명히 A 코드 곡인데..

자세히 보니 E code곡이다.

집중하기가 어렵다.

찬양은 입으로 하지만

은혜가 안된다.

식은 땀이 나려한다.

자꾸만 '이 나이에.. '소리가 속에서 들리는 듯하다.

겨우 마치고

묵상을 하니

위의 묵상이다.

 

똑같다.

주님은

나보고

이제

의의 부분

역으로, 죄악에 대한 부분에 대하여 더욱 민감하라신다.

늘 깨어 있으라 하신다.

아침에

난 주님 앞에 서 있기 보다는

사람 앞에 서 있었다.

 

절제 하라 하신다.

잠을 조금 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묵상을 10분 이상 하고 나서

주님 앞에 여유로이 헌신하였더라면

이전의 체험을 보건데

참으로 따사로웠을 것이다.

스스로도..

많은 분들이

은혜에 동참하였을 것이고...

 

 심판에 대하여 묵상하라 하신다.

주님은 성경을 좀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보라시는 것 같다.

 

이런 과정은

좀더

큰 기쁨을 허락하시고

내 영혼안에 커다란 평강의 호수가 들어차게 하시고

세상을 보는 눈이

훨씬 더 촉촉해지게 하고

영감으로 그득하게 만들어

사는 삶이

주 앞에서 훨씬 풍요로워지게 할 것이다.

 

 

적용

 

1.  주님 앞'에 서 있는 나를 명심한다.

 이게 의다.

 내 생각 만 하는 것은 악이다.

 

2. 절제한다.

 음식에 대하여 약하다.

 커피를 3잔 이상 안마신다.

 

3. 주님 만을 의식하겠다.

 오늘 전인치유 찬양이 신경이 쓰인다.

늘 그렇지만

무대는 부담이다.

그럼에도 내 열정을 전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사람을 의식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아침의 경험을 반성으로

눈을 들어 하늘 보겠다.

아래를 보아 환자들의 아픔을 공유하여

가사에 기도하는 마음을 실어 보내겠다.

 

4. 성경 다섯 장 읽겠다.

 성경의 말씀은 목숨이다.

매일 주님의 지령을 받는 길이다.

 

5. 2년에 대하여 묵상한다.

 

 

기도

 

주님

이제

서서히

때가 옵니다.

주님

인내의 때가요.

절제의 때가요.

정말

금식하고

인내하라는 소리가 정말 부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이 되어

주님의 때가 되면

그렇게 해야할 때가 올듯 싶습니다.

그것 잘 받아들여 성공하게 하소서.

주님의 뜻은

무조건은 손해는 없음을 알게 하소서.

이제

주님 만 보게 하소서.

힘낼 수 잇게 하소서.

주님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