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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행사는 아닌가 ( 행26:1-18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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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행사는 아닌가 ( 행26:1-18 )

주하인 2007. 11. 10. 10:09

제 26 장 ( Chapter 26, Acts )
1.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모든 송사하는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옵나이다 

생명을

막을 철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주님을 향한

나의 갈망을 막을

장해물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주여

늘 주를 사랑합니다.

 

 

 

 사도바울님 ~!

 

 똑같은 이야기

똑같은 무지한 자들,

똑같은 시간의 반복의 2년 동안에도

지치지도 않으십니까?

 무엇이 그리 할 말이 많으시기에

손을 번쩍 들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시작합니까?
  어디에 그런 열정이 많으시기에

변명을 다행으로 기쁘게 여기시나이까?ㅎㅎ
 
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 중에와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태를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환자 한분이

지금 나가셨다.

 한참 이야기를 시켜보니

60세가 넘으신 그 분이

70세 넘으신 할아버지와

바람을 피시고 계신단다.

나이가 들어서야

몸이 너무 아픈 이유가 Sexless 인 걸 듣고

주위의 말에

불능자인 남편을 두고 ......

 

 나는

그 깊은 육신의 집중을 말 몇마디로

벗어나게 할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도

십자가 예수님의 고통과 더불어

내 과거를 얘기하였다.

얼마나 괴팍하게 살고

얼마나 모질게 살았는지..

그러면서

예수님 영접이후의

내 기쁨을

열렬히 쏟아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과거에 열심히 믿음생활 하다가

지금은 이렇다고 하시며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듣다가 가신다.

사도 바울도

그 바람피는 노인에게

이 땅위의 삶보다 훨씬 큰 그 무엇.

부활로서 이루어져

예수라는 존재만 믿으면 이루어질 그 당연한 사건을

안타까이

그들에게 전하고 싶어 안달하는 그런 마음일 것이다.

 결론은

이 땅위의 삶이

얼마나 더 오래 기쁘게 유지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우리의 목적지는 '본향'이 아닌가.. 다.

그 목적을 위해서

사도 바울이 내는 열심의 방법,

자신의 모든 것을 톡 털어내는

저 심사가 이해가 간다.

손을 번쩍 드는 그 마음도... 

 

 

 
7.  이 약속은 우리 열 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을 인하여 내가 유대인들에게 송사를 받는 것이니이다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같은 소망을 가졌음에도

그 소망이 부활임에도

어찌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차이가 이리 심한가?

어찌

유대인들은

같은 소망의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기까지 하려 하는가?

그것도

가장 극렬한 방법으로 ..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그 이유는

예수님이다.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셨고

틀림없이 하나님이신데

왜 같은 부활의 소망을 가진 유대인들은

이런 극렬하기가 말도 못하는 일을 벌이는가?

 더더구나, 머리 좋기가 말도 못하는 소시적 사도 바울까지..

 

 이걸 보며

인간의 이중성

선과

악의

공존함,

그 현명함과

그 미련함의 동시성.

이해하기 어려운 그 행동 예측의 불가성이 신비롭기도 하며,

한편으로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유행이나 삶의 행태를 보면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

최소한 난,

지금도 이러한

약간은 냉소적인 시선이 많이 남아 있다.

다소 긍휼로 바뀌어 가곤 있지만...


 
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이렇듯,

똑같은 소망을 가진 자들의

극렬한 차이는

'부활'을

머리로 알고

체험하는 자의 차이에서 나온다.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믿는 자들 사이에서의 알력이 때로는 더 크다.

 

 종교로 합리화되면 밑간데 없이 무섭게 변한다.

 열심히 나가려면

손가락질 하며 gossip거리로 내 뱉는 소리가

가슴을 찌르는 때가 있다.

 예수님도 가까운 자에게는 기적을 보이지 않으셨다.

가까운 곳에 원수가 있다.

그 안에는

기득권의 침입 위기,

질투....

다양한 이유가 그들의 영혼을 가릴 때 그렇다.

 

그렇지 않기 위해

매일 같이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하고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길이 어두움을 벗어나는 길이다.

 

우리 병원

산부인과는

이리

기도와 말씀과 함께

하루를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이

외국을 돌아다니며

대 제사장의 이름으로

부활의 명분으로

크게 일을 벌이고 다녔지만

그것은 소름끼치는 사단의 일이었을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원리로 돌아가서

기본을 회복하고

이 원죄의 영혼이

틀림없이 사단의 혼란에 빠질 위험성에 늘 노출되었음을 인정하며

일상에서

늘 주님의 말씀을 눈뜨고 지켜보아

주님 오실 그날까지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주님의 소리에 의해서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주님이 필요하신 만큼

나에게 주어진 달란트 이외의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일을 하다가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칭찬을 받아가는 삶을 살며

매일 자기부인되고

그로 인하여

주님 앞에 갈 때 쯤

성화되어

맑고 고운 영혼으로

그 분앞에 서게 되는 것이

그분이 진정 바라는 것이다.

 

 

 

 

적용

 

1. 혹시 나는 내 '성과'에 너무 치우치지는 않았는가 반성한다.

 주님은

직분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 집중하기를 원하신다.

 

2. 혹시 나는 너무 가만히 앉아서 '회피'하지만은 않는가?

 성화 우선 주의는 아닌가?

 

3. 주님을 절대 앞서지 말자.

 주님이 인도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4. 속에서 꿈틀거리는 악감은

  어떠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사단의 영역이고 어두움의 것이다.

  무조건 내려놓길 선택한다.

 주님은 '선'함을 원하시고 화합을 우선하신다.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겠다.

 안되는 게 내 본성임을 인정하고 주님께 기도한다.

 

5. 성경 다섯 장 읽겠다.

 

6. 아버지 학교의 부부특송

  실크로드의 공연

 모두 주님 앞에서 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한다.

 결과는 주님의 뜻임을 인정하겠다.

 

7. 끝까지, 지치지 않는 주님의 남은 백성이 되겠다.

 

 

기도

 

주님

오늘 말씀이 분명하십니다..

하루를

주님 앞에서 서 있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걸 잊지 않게 하소서.

자칫

묘한 명분으로 인하여

눈에 보이는 성과와

그에 따르는 비교와 질시로

내 영혼을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하게 하소서

가능하면

뒤로 물러나도

차분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낮춤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겸손하게 하소서.

아파도 그리하게 하소서.

주님께 영광올리게 하소서.

부활하신 주님 예수님을 사랑하고 자랑하게 하소서.

성령의 도우심을 늘 간구하게 하소서.

어두움은 벗어 버리게 하소서.

빛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하루를 주님께 의탁합니다.

가슴 아프지 않게

영혼 깊숙이 날 받아 들일 수 있도록 도우소서.

예수님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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