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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훨씬 나은 어두움(욥6:1-14)

주하인 2008. 9. 8. 12:42

제 6 장 ( Chapter 6, Job )

 

 

 

주님

 

저도요.

 

얘처럼요.

 

자유롭게 날다가요.

 

쉬고 싶어요.

 

주님의 그 푸른 사랑 안에서요...

 

   

 


8.   하나님이 나의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며 나의 사모하는 것 주시기를 내가 원하나니  
9.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그 손을 들어 나를 끊으실 것이라 
11.  내가 무슨 기력이 있관대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관대 오히려 참겠느냐 

 

 욥의 고통이야

무슨 말로 형용할 수 있겠는가?
실은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어려움은 소름끼치도록 힘이 든다.

그럼에도

'내가 무슨 기력이 있어 참겠느냐'

' 주님께서 날 죽여주시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는

그 소리가

수천년의 시공을 넘어 가슴으로 온다.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지곤 했던,

실은 지금도 가끔은 그렇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빈도가 심하고

강도가 심하던 그때에

'아버지~~

 제발~ 날~~' 하고

몸부림 치던 기억이 난다.

세상이 온통 시커멓고

보이는 것이 없이

두려움만 날 가득가득 내리 눌러

숨을 쉬기도 어렵고

앞 날은 생각하기도 싫은...

그럴때마다

난 '하나님.. 하나님.. 할 수 밖에 없었을 때가 많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예수님을 믿기 전 보다는

훨씬 나은 어두움이 었다.

 그전,

불신자 시절

그런, 힘듦이 날 치어 받칠 때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아무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누구도 날 이해할 수 없을 것 같고

누구도 날 위해줄 것 같지 않은

사람 가운데 있지만

절해고도에 있는

철저한 깊은 고립감에서

몸부림 칠 때가

꽤 오래 되었었다.

깊은 어려움 동안

그 깊은 어두움 속에서

난 부르짖지도 못했다.

부르짖을 대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술은 체질적으로 못하는 터라,

늘어나는 것은 담배요,

강해지는 것은

내 눈 속의 핏줄의 색깔 들이고

깊은 밤동안

자지 못하고 멍하니 있을 때도 많았다.

비디오 틀어놓고

아니면

무협소설 늘어놓고...

현실은 '산모'를 보아야할 원장의 입장이니

자유롭지도 못하고.......

 그 멍한 힘듦은

몸으로 왔다.

머리가 아프고

혈압이 올라가고........

 

그러다 예수님 영접후

놀라운 '놓임'이 경험되었다.

교회 뒷 좌석에 앉아

정말 놀라운 양의 눈물 콧물을

전혀 슬프지 않고

그리 대단하게 감동적이지 않은

평범한 어투의 목사님의 설교에

완전히 옷 벗겨져

교회 뒷좌석에 던져진 듯,

온통 몸을 쪼그리고

난 그리 울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는

없어진 불면증과 더불어

훨씬 가벼워진 내 영혼은

그래도

서두에서 풀어 놓은

깊은 좌절에서는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가끔 가끔

'하나님~ '하고 울부짖는 기회가 있어왔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하나님 ~하고 속상해 하던 시간은

속상했지만

그 전의 불신자 시절과 달리

부를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날 위로하고 있었는지는

오늘

욥의 변명을 들어가며

확~하고 느껴진다.

 

 그

욥은

친구들을 향해

죽겠다고 죽고 싶다고

알아달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이 나의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며 나의 사모하는 것 주시기를 내가 원하나니  '

하며

주님이 원하는 것을 줄 것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주님을 믿지만

자신에게 도래한 이 큰 고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듯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있다.

그것은 의도적이 아니다.

뼈 속 깊숙이 까지

그는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고

그 분 하나님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을 보면

허탈한듯,

될대로 되라 한듯

깊은 어두움 속에 있듯

마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의 '허무'가

더덕 더덕 묻어 있지만

그는

그래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

어쩔 수 없는 골수 신자 인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렇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한 

우리는 그렇다.

성령의 기쁨을 아는

우리는 그렇다.

 

 


14.  피곤한 자 곧 전능자, 경외하는 일을 폐한 자를 그 벗이 불쌍히 여길 것이어늘 
 

 그것은 그렇다.

 

 어디에도

우리를 진심으로 알고 이해하고

우리를 진정 위해 줄 자

세상에는 없지만

하나님

그 분 만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알고는

그 분의 사랑이

절대로 변할 수 없는

놀라운 크기의 그것임을 아는 자들은

절대로

예수님을 변절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

그러한

예수님

하나님 사랑의 본질은

이것인 것이다.

 

'긍휼'이다.

불쌍히 여김이다.

 

오늘

엘리바스와 친구들의

그러한 일주일 간의 참음과 곁에 있어 줌도

결국은

온전하지 못하다.

욥을 온전히 위로 해주지 못하고

드디어 정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간

특별히 고통 중에 있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긍휼'이다.

 

긍휼히 여김을 원하고

긍휼히 여기기를 바란다.

그것 만이

내 부족한 인격의 나머지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길이고

나로 인하여

내 주위가 조금은 더 

환해 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나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더 앎도 필요하고

남을 위한 마음 조림도 필요하지만

그들을 위해

가슴 넓은

불쌍히 여김이 필요하다.

 

 

적용

 

1. 미운 사람이 있으면, 혹시.. 

   즉시 내려 놓겠다.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2. 성경 여섯 장 읽겠다.

 

3. 아버지 학교 가겠다.

  중보의 기회다 .

 

4.  기댈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신 '나'다.

    행운을 감사한다.

    주님을 위해 감사한다.

   

5.  내 하나님이 나의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며 나의 사모하는 것 주시기를  믿는다.

 

 

기도

 

 

 

 

주여.

힘을 주소서.

자꾸만

예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자들에 대하여

정죄의 마음이 들어나고 있습니다.

그러지 못하는

내 속이 자꾸만 들어나며

좌절이 되려 합니다.

살면서

훨씬 여유로움이 늘어나야 함에도

어찌 된 일인지

차가워 지려 하는

내 본성을 보며

속이 뒤흔들림다.

 

 

 

주여.

그것을 아시고

나와

남에 대하여

좀더 불쌍히 여김을

주님은 바라시네요.

 

저도 그리하고 싶지만

눈을 뜨고

이 땅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나면

자꾸만 자꾸만 잊고야 맙니다.

 

좀더 이웃에 대하여 긍휼히 여길 수 있길 바랍니다.

좀 더 내 자신에 대하여도

주님의 사랑으로 보길 원합니다.

남에 대하여

겸손하고

나에 대하여

주님의 사랑으로 보길 원합니다.

주여

오늘 하루도

바쁜 와중에서 잘 지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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