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간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욥 7:15-21 ) 본문
제 7 장 ( Chapter 7, Job )
주여.
지난 밤도
무사히 지내고
새 아침을 맞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항상 살기를 원치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주여
죽고 싶어요.
17.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19.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제발 ~
나를 그냥 두세요
좀..
도대체 내가 뭐라고..
20.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난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다 포기하고 도망가고만 싶어요
이 한몸도 유지하기 어려워요.
주여....
출근 길
가로등 위에 걸린
먼 산의 동트는 해.
또 힘겨운 하루가 시작이 되나
해같은 주님의 말씀을 잡고 있으면
힘듦이
꼭 고난 만은 아니리라 싶기도 하다.
온통 시커멓다.
욥이
나름대로는
엄청난 고통 중에도
주님의 뜻을 읽으려는 기본자세는 되어 있고
모든 것이 주님이 허락하심을 앎에도 불구하고
너무 힘이 드니
원망 아닌 원망의 호소를 한다.
욥기를
아침마다 묵상하려니
참
고역이다.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고통의 표현이
너무도 적나라하고 익숙하고
속내를 그냥 들킨 것 만 같아
당혹스럽고
이제는 고만 되풀이 하고픈
고통의 시간들이 되뇌어 지는 것이
아침의 분위기와 맞지 않게
너무 무거워서도 그렇다.
겨우 집중해서 들여다 본 구절은
참말로 많이도 되풀이 해왔던
하소연이 그득하다.
그럼에도
아직도 내 속에서 온전히 떨구어 나가지 못한
구습의 흔적들이
묵상 구절을 따라 들어난다.
그 중에
'스스로 무거운 짐'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욥.
그 분은 선한 분이고
주님도 인정하실 정도로
인격이 성화된 분이심에도
고통에 노출되고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부정적 언사에 당황하며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그게 '스스로 무거운 짐'이라는 표현에
함축이 되어 있다.
고통도 견디기 힘든데
친구들의 공격이 추가되며
입을 닫고
주님 앞에 고요함을 유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번 터진 입술을
자제하기 어려운 ... 짐.
주님이 항상 동행하심으로 얻는
그 놀라운 은혜와 평강의 체험과 더불어
엄청난 물질적 축복을 받고 살아왔던
그가,
그 놀라운 하나님 믿음의 비밀을
이제는 오히려
귀찮고 번거러워
분초마다 아침마다...라 하며
앙탈(^^;;;) 부리는 자신이
짐인 것이다.
반면에
난......
자기 이미지가 그리 좋지 못했고
지금도 온전히
사랑 받는 자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많은 부분에서
힘이 든게 사실이긴 하다.
좀더 완벽하려고 하는 몸짓을
아직도 하고
그리하지 못하는 일에는
쉽게 좌절하고 상처 입었고,
...........
하지만
욥의 이러한 어두운 부분에서도
희망이 보인다.
그는
주님이 늘 함께 계셔서
분초 마다 시험하시고
아침 마다 권징하신다 한다.
하나도 그냥 두지 않으신다 한다.
어제
수요 예배를
정말 오랫만에 드렸다.
전인치유 드리느라
정식 예배는 거의 못드렸었지만
어제는 기도원에 마음먹고 올라갔다.
앉아서 말씀을 듣는 동안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치려 한다.
목사님의 설교가
최근에 깨달은 - 어리석기가 말도 못하지.. 이제야.. -
'하나님 말씀을 내 원함으로 삼는다'는
주제다.
금식, 구제, 기도..가
기독교인이 마땅히 드려야 할
3대 덕목 중 하나임에도
그 대부분의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거나
해도 '사단의 충만한 일'이 되는 데에는
'하나님의 뜻'으로 부터
시작되지 않는 - 자아의 드러남- 것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맞다'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사람들이 쳐다보자
난 얼른 입을 다물고
아닌 척했다.
가만히 분석해 보았다.
주님이 임하셔서
은혜 충만한 상태로
내 속이 움직일 때
이토록 답답하고 고리타분한 설교 - 불신자의 눈 ㅎㅎ - 에
그토록 감동하지 않는가?
하지만
은혜가 없으면
정말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게 당연하다.
똑같은 말씀도
어느때는 정말 은혜롭고
어느때는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것은
웬일인가?
모든 게 주님이시다.
주님은
욥의 고백처럼
우리의 일상을 간섭하시고 지도하시고 쳐다보신다.
그 분은 우리가
당신의 손을 잡고
매일을 살아가길 원하시고
그 분의 말씀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신다.
어떤 입장에 있든...
욥이
지나친 고통 때문에
지식이나 경험의 체험으로 고백하는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은혜 떨어진 상태의
원망성 발언을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힘이 된다.
그분은
분초마다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아침마다 권면하신다.
그게
진실이다.
그게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감사해야 한다.
그렇다면
담담해질 수 있다.
내 짐마져
주님께 아뢸 수 있다.
주여,
전 이렇게 스스로 짐을 지고 있습니다.
그 짐은
너무나 무거워서
혼자서는 도저히 풀 수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분초마다
날 아시는 주님.
내 힘듦을 아시는 주님
나로인하여
온전히 기다려
주님의 뜻 가운데서
잘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우소서...
이렇게.
적용
1. 누구나 고난은 있다.
고난은 필연이니
빠져 나오려는 몸부림은 의미없다.
일단, 받아 들이고
주님께 내려 놓자.
2. 아직도 나를 내리 누르는 짐이 무엇인가.. 묵상한다.
그것 마져 주님께 맡긴다.
주님은 날마다 분초마다 날 지켜 보신다.
선한 그 분은
선을 이루실 것이 확실하다.
내려놓자.
3. 성경 여섯 장 읽겠다.
말씀은 생명이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끝까지 날 지켜주시고
결국 승리하게 하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주님의 살아계심
주님의 늘 도우심을
감사하며 잊지 않도록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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