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앞을 달려 가시는 하나님( 욥9:4-11 ) 본문
제 9 장 ( Chapter 9, Job )
4.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스스로 강퍅히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
하나님께서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심을
늘 인정할 수 만 있다면
무엇이 걱정이랴.
어떤 어리석은 행동이 가능할까?
믿는다 하면서도
믿지 못하는
이 깊은 불신이 문제다.
6. 그가 땅을 움직여 그 자리에서 미신즉 그 기둥이 흔들리며
도처에서 일어나는
지진이 생각나는 것은
웬일인가?
10.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어제
귀향 이후
괜히 답답하다.
가만히 속을 들여다 보니
자식 들에 대한
답답함이 큰 이유다.
형님네
동생네
조카들과의 비교.
그래.
지금이 전부는 아닌 줄 알지만
늘
짐처럼 다가오는
현재의 모습에서
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현재의 짐을 증폭시키고 암울함으로
내 미래를 그리던
그 어리석은 버릇이
이제는 자식들에 대한 비교로
슬그머니 대치되어 나오려 하고 있다.
그 암울한 생각은
현실의 모습을 가지고
끝까지 연장 시켜서 나오는 현상이다.
그것은 돌려 생각하면
'긍정적인 어떤 계기'를 염두에 두지 않음이다.
그 긍정적인 계기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 긍정적인 계기란 무엇인가?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
그 생각할 수 없는 일은
전혀 생각지 않으려 했던 것이
부정적이던 내 모습의 찌거끼다.
주님을 전제로 하지 않고 살던
이 어리석은 불신의 모습의 찌거기라는 이야기다.
돌려 말하면
난
자식들의 미래를 인도하실
주님의 가능성을
늘
나도 모르게 배제하고 있었단 이야기다.
그것은 불신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면
주님이
내 인생
우리 아들들의 인생에 펼쳐주실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 을
믿어야 한다.
이 어리석은 주하인은
기초적인 믿음,
즉
주님은 살아계시고
그 분은 광대하시다는
이 가장 기초적인
믿음의 뿌리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나아가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주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바람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이고
가장 기초적인 데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시 말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늘 인식하고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주 잊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오늘 묵상의 표현 처럼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 하며
그가 내 앞에서 나아가시나 내가 깨닫지 못한다'라는 것 아닌가?
아침에 늦은 잠을 자고 일어나
부리나케
말씀을 읽고 나서
아들의 자전거를 꿰어차고
강변을 나섰다 .
여성 병원에서 9시 부터 당직이다.
열심히
주님을 묵상하려 했지만
자꾸만 잊게 된다.
자꾸만 멍하니 따른 생각에 사로잡힌다.
괜한 걱정이 날 사로 잡다가
머리를 털면서
또 집중하려다가 보면
스쳐지나가는
강변의 상쾌함에
어느새 넋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그 앞길이 시원하다.
주님이 앞서 가신다 생각하니
더욱 다르다.
결국 믿음의 문제다.
믿음이 현실화 되어
내 일상을
주재하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듯하는
그런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이 ,
기초가 온전히 회복되는 믿음이 문제다.
돌아보면
난 확신한다.
불가능한 일이
내 일상에서 벌어져
예전에 생각도 못했던 삶을
지금 난 살고 있다.
이전 생각에
미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러한 삶을 난 살고 있다.
그게
모두 주님의 살아계신 증거임을
돌아보면 난 알 수 있다.
그것은 그 분이
내 인생의 앞에서
지나가시고
걸어가시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
그 분을,
갈급한 내 심령이 간절히 사모하고
말씀 가운데 사로잡혀 끌려왔었던 게
지금의 결과이다.
그러함에도
그러한 체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여유로와지고
조금 넉넉해 지면서
그 놀라운 하나님,
그 하나님의 대단하신 살아계심을
잊기에 그렇다.
아니,
솔직히
가끔 가끔은 지금도 느낀다.
가끔 가끔의 공백이 문제지...
그러기에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이거다.
그 분.
그 놀라우신 분의 살아계시고
내 앞에서 인도하심을
늘 인식하고 살기 위한
그 잠시 잠시의 공백을 메우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일상에서 자꾸 망각처럼 비워져 있는
영화 필림의 끊김처럼 끊겨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이어줘야 한다.
그것이
어리석게
답답함과 짜증과 좌절감으로
날 사로잡힘으로 부터 벗어나게 해 주고
내 삶을 힘있게 만들어 주는
기본 이 될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간다.
그 자전거 앞을 달리시는
그 하나님이 연상된다.
걸어간다.
걸어가는 내 앞길을
조금 앞서 나가시는 그 분이 연상된다.
마음이 가라 앉는다.
적용
1. 주님을 온전히 믿는다.
주님은 온전하신 분이시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시다.
2.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묵상한다.
3. 아이들.. 주님께 맡긴다.
4. 성경 여섯 장 읽겠다.
기도
주님
이 어리석은 자를 보소서.
늘
주님을 잊으려 합니다.
습관성 망각환자인 듯합니다.
마치
치매에 걸린 듯 합니다.
그리고는
자꾸만 걱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게
모두
부족한 제 믿음 탓인 줄 압니다.
그 놀라운
인도하심의 경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걱정하고
비교하고
답답해 하고
불안해 하려 하고 있습니다.
주님
늘
내 앞을 인도하시고
마치
친구처럼
아버지 처럼
오가시는 하나님을 느끼길 원합니다.
주님을 확신하길 원합니다.
단 일초라도 주님을 잊지 않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쓸데 없는 감상으로
내 영혼을 흔들리는
그러한 어리석음을 당치 않길 원합니다.
주여.
모든 우주를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
당신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이
온 우주의 운행이 불가능함을 압니다.
주여
그러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앎이
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하기도 합니다.
그 하나님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이
제 앞길 인도하시고
제 자식들의 앞길도 인도하소서.
정말 소원하는 것은
그 아이들이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주여....
아시지요.
저
많이 힘들었었습니다.
삶이 요.
과정을 겪어서
많은 축복을 얻었음은 알지만
그 하나하나의 과정이
살을 데이는 듯하고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었음을
주님 아시지요/
특별히 아이들 영혼을 잡아주소서.
앞길 인도하소서.
저에게 그랬드..ㅅ이..
저보다 더 빨리 깨닫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치심 ( 욥 9:28-34 ) (0) | 2008.09.17 |
---|---|
感謝에 대하여 ( 욥 9:14-20 ) (0) | 2008.09.16 |
간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욥 7:15-21 ) (0) | 2008.09.11 |
훨씬 나은 어두움(욥6:1-14) (0) | 2008.09.08 |
나도 그랬었다. ( 욥 5:16-23 ) (0) | 2008.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