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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을 달려 가시는 하나님( 욥9:4-11 ) 본문

구약 QT

내 앞을 달려 가시는 하나님( 욥9:4-11 )

주하인 2008. 9. 15. 09:42

제 9 장 ( Chapter 9, Job )

 


4.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스스로 강퍅히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 

 

  하나님께서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심을

늘 인정할 수 만 있다면

무엇이 걱정이랴.

어떤 어리석은 행동이 가능할까?

 

 믿는다 하면서도

믿지 못하는

이 깊은 불신이 문제다.

 

 

6.   그가 땅을 움직여 그 자리에서 미신즉 그 기둥이 흔들리며

 도처에서 일어나는

지진이 생각나는 것은

웬일인가?

 

10.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어제

귀향 이후

괜히 답답하다.

 

가만히 속을 들여다 보니

자식 들에 대한

답답함이 큰 이유다.

형님네

동생네

조카들과의 비교.

그래.

지금이 전부는 아닌 줄 알지만

짐처럼 다가오는

현재의 모습에서

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현재의 짐을 증폭시키고 암울함으로

내 미래를 그리던

그 어리석은 버릇이

이제는 자식들에 대한 비교로

슬그머니 대치되어 나오려 하고 있다.

 

 그 암울한 생각은

현실의 모습을 가지고

끝까지 연장 시켜서 나오는 현상이다.

그것은 돌려 생각하면

'긍정적인 어떤 계기'를 염두에 두지 않음이다.

그 긍정적인 계기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 긍정적인 계기란 무엇인가?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

그  생각할 수 없는 일은

전혀 생각지 않으려 했던 것이

부정적이던 내 모습의 찌거끼다.

주님을 전제로 하지 않고 살던

이 어리석은 불신의 모습의 찌거기라는 이야기다.

돌려 말하면

자식들의 미래를 인도하실

주님의 가능성을

나도 모르게 배제하고 있었단 이야기다.

그것은 불신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면

주님이

내 인생

우리 아들들의 인생에 펼쳐주실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

 믿어야 한다.

 이 어리석은 주하인은

기초적인 믿음,

주님은 살아계시고

그 분은 광대하시다는

이 가장 기초적인 

믿음의 뿌리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나아가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바람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이고

가장 기초적인 데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시 말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늘 인식하고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주 잊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오늘 묵상의 표현 처럼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 하며

그가 내 앞에서 나아가시나 내가 깨닫지 못한다'라는 것 아닌가?

 

 아침에 늦은 잠을 자고 일어나

부리나케

말씀을 읽고 나서

아들의 자전거를 꿰어차고

강변을 나섰다 .

여성 병원에서 9시 부터 당직이다.

열심히 

주님을 묵상하려 했지만

자꾸만 잊게 된다.

자꾸만 멍하니 따른 생각에 사로잡힌다.

괜한 걱정이 날 사로 잡다가

머리를 털면서

또 집중하려다가 보면

스쳐지나가는

강변의 상쾌함에

어느새 넋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그 앞길이 시원하다.

주님이 앞서 가신다 생각하니

더욱 다르다.

 
 결국 믿음의 문제다. 

믿음이 현실화 되어

내 일상을

주재하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듯하는

그런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이 ,

기초가 온전히 회복되는 믿음이 문제다.

돌아보면

난 확신한다.

불가능한 일이

내 일상에서 벌어져

예전에 생각도 못했던 삶을

지금 난 살고 있다.

 이전 생각에

미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러한 삶을 난 살고 있다.

그게

모두 주님의 살아계신 증거임을

돌아보면 난 알 수 있다.

그것은 그 분이

내 인생의 앞에서

지나가시고

걸어가시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

그 분을,

갈급한 내 심령이 간절히 사모하고

말씀 가운데 사로잡혀 끌려왔었던 게

지금의 결과이다.

그러함에도

그러한 체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여유로와지고

조금 넉넉해 지면서

그 놀라운 하나님,

그 하나님의 대단하신 살아계심을

잊기에 그렇다.

아니,

솔직히

가끔 가끔은 지금도 느낀다.

가끔 가끔의 공백이 문제지...

그러기에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이거다.

그 분.

그 놀라우신 분의 살아계시고

내 앞에서 인도하심을

늘 인식하고 살기 위한

그 잠시 잠시의 공백을 메우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일상에서 자꾸 망각처럼 비워져 있는

영화 필림의 끊김처럼 끊겨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이어줘야 한다.

그것이

어리석게

답답함과 짜증과 좌절감으로

날 사로잡힘으로 부터 벗어나게 해 주고

내 삶을 힘있게 만들어 주는

기본 이 될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간다.

그 자전거 앞을 달리시는

그 하나님이 연상된다.

걸어간다.

걸어가는 내 앞길을

조금 앞서 나가시는 그 분이 연상된다.

마음이 가라 앉는다.

 

적용

 

1. 주님을 온전히 믿는다.

  주님은 온전하신 분이시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시다.

   

2.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묵상한다.

 

3. 아이들.. 주님께 맡긴다.

 

4. 성경 여섯 장 읽겠다.

 

 

 

 

기도

 

주님

이 어리석은 자를 보소서.

주님을 잊으려 합니다.

습관성 망각환자인 듯합니다.

마치

치매에 걸린 듯 합니다.

그리고는

자꾸만 걱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게

모두

부족한 제 믿음 탓인 줄 압니다.

그 놀라운

인도하심의 경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걱정하고

비교하고

답답해 하고

불안해 하려 하고 있습니다.

주님

내 앞을 인도하시고

마치

친구처럼

아버지 처럼

오가시는 하나님을 느끼길 원합니다.

주님을 확신하길 원합니다.

단 일초라도 주님을 잊지 않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쓸데 없는 감상으로

내 영혼을 흔들리는

그러한 어리석음을 당치 않길 원합니다.

주여.

모든 우주를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

당신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온 우주의 운행이 불가능함을 압니다.

주여

그러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앎이

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하기도 합니다.

그 하나님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이

제 앞길 인도하시고

제 자식들의 앞길도 인도하소서.

정말 소원하는 것은

그 아이들이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주여....

아시지요.

많이 힘들었었습니다.

삶이 요.

과정을 겪어서

많은 축복을 얻었음은 알지만

그 하나하나의 과정이

살을 데이는 듯하고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었음을

주님 아시지요/

특별히 아이들 영혼을 잡아주소서.

앞길 인도하소서.

저에게 그랬드..ㅅ이..

저보다 더 빨리 깨닫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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