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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회복을 위해서(왕상19:11-21)

주하인 2006. 5. 30. 10:04
(왕상19:11-21)

11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12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예수님을 믿어가면서도 깊은 좌절에 빠져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주님이 역동하시는 장소에 있는 곳에서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때가 되고 시간이 되면

주님의 인도하심이 느껴질 것이다.

 "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

 

 우리는

그때 쯤 우리를 일깨우는 크고 신비한 이적이 있기를 바라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분이 베푸시는 알지못할 신기한 이적.

그래서  온몸에 갑자기 울끈 불끈 근육이 생겨나고

        ( 좀 무섭지요?  ^^;;;)

 

 온갖 기적이 나타나서 날 구원해주길 바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세미한 소리'를 듣길 바라신다.

 

그리고 힘없는 팔에 힘을 내서 연약한 무릎을 끌더라도

주님 앞에 나가서기를 원하신다.

비록

그 모습이 굴 어귀에 서있는 것 같이 창피한 듯하고

아무런 멋진 모습이 아니고

주님 보시기에 힘차고 대단한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얼굴을 가리고' 나오게 될지라도

그 분 앞에 서기만 하면 주님의  소리가 있어 우리의 영혼이 치유가 시작이 되게 된다.

 

 그 앞에서 있는 대로 고하기만 하면 된다.

 

' 주님 . 제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요....

 그런데... 요........'

 

 그리하면

주님의 위로가 시작이 될 것이다.

" 칠천명의 네가 알지 못하는.. "

 

그리고 나서

우리의 역사가 다시 진행이 될 것이다.

 

 

 난 열심히 주님 앞에 변화되려 몸부림 쳤다.

지난 일년 간은 예수님 영접하고 9년 되는 그 어느 시기보다 열심히 살았다.

그 시작은 QT의 인도 시작과 맞추어서..

 

 가정적으로 도 많이 안정이 되고

외부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내 속에서 부터 일어나고 있었다.

외풍이 몰아쳐도 , 아니 몰아칠 두려움에서도.. 주님안에서 많은 평화가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조금 흔들렸다.

마치 엘리야가 겨우 이세벨의 공격에 그 깊은 우울에 들어가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처럼 , 이해할 수 없이 흔들린다.

아..

우울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시 예전의 충실치 못한 가장과

장래가 불투명한 산부인과 의사

허리 디스크가 도져 건강에 도저히 자신이 없는 의사

왕따 당하는 아빠의 느낌...............

서서히 날 다시 누르는 느낌이 있다.

 

 주님은 역시 틀림없이 QT를 통해서 비슷한 상황의 엘리야를 통하여 자꾸만 뭔가 네가 잊은게 없느냐? 없느냐?  정말 없느냐... 권면하신다.

 

 내 생애에 최근처럼 남들 앞에 나서는 경우가 별로 없다.

목요 전인치유 찬양

아버지 학교 스텝

10월달 인도네시아 단기선교..예정...

집에서 아들과의 회복 무드...

 

 그런 것 들을 통하여 내가 너무 많이 주님의 흔적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기적이 쏟아지고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모여들고

봉사하는 곳곳에 회복이 일어나

누구나 다 할렐루야 주님 찬양합니다...하며 주님 곁으로 돌아오는 Earthquake와 성령의 fire ,..

그러면서 가정적으로도 가장 편안하고 모범적인 결과가 와서 상처는 회복이 되고 우리 가족 모두 영성가로 거듭나길..........

 

 그러나..

내 인생의 아주 긴 굴 같은 여정 속에서

이제 주님은 조용히 그 분의 음성에 다시 한번 귀 기울이기를 권하시는 것 같다.

 

'세미한 ' 소리를 듣기를 바라신다.

세미한 소리를 천둥처럼 받아들이기를 바라신다.

 

 그리하기 위해서는 다시한번 내밀히 주님을 만나야 한다.

봉사와 찬양 을 통해 드리는 내 행위속에  주님이 정말 나에게 속삭이시는 그 본질을 꿰뚫기를 원하신다.

 아니 내가 진짜로 주님께 바라는 것이 '세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성과

올바로 설 수 있는 신앙과 인격의 성장을 그 분은 원하시는 것이다.

 봉사가 봉사가 아니고

봉사라는 행위를 통하여 주님의 살아 계심을 더 느끼길 원하시는 것이 그 분의 세미한 바램이시다 .

 

 

 그게 진실이시다.

그분은 그 진실을 위해 나에게 어려움과 혼란을 허락하시는 것이시다.

어차피 '엘리야의 우울'은 성장통이다.

어차피 내 혼란은 과정이다.

 

 그런다음에 그 분은 대화를 통하여

회복을 시키신다.

회복을 시키시며 다시한번 할 일을 상기시키신다.

 

 살아있는 칠천명의 동역자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주님은 한꺼번에 다 알려 주시지 않는 것을 특기로 하신다.

진즉에 알려주셨으면 우울에 빠지지 않았을 것을,...

 

그러나..

주님은 선이시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허락된 모든 좌절도 다 주님의 선에서 베풀어 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여도 맞는 것인가?

 우리의 성장을 위해서..

성장을 통해서 더 큰 기쁨을 허락하기 위해서..

 

더 큰 기쁨을 위해서 고통을 허락하신 것?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면 잔인하지만

고통이 더 큰 선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라면....

 

 아직은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사르밧 과부의 외침처럼..

'왜 하필이면 날 구원하셔서 이 고생을 시키십니까?'   외치고도 싶지만

아직도 옛 성질이 남아서 내 팔다리에 힘이 빠지도록 하고 등골이 조이는 현상이 남아 있는 우울감이 있어도 ...

 주님은 약속하신다.

 

 ' 칠천명'

 

 

 이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엘리야의 굴속 밖 어귀에 나와

주님을 두려워 하여 얼굴을 가리며

Earthquake나 Fire의 화려함과 현란함 속에서 주님을 찾기 보다는

그 뒤에 따라오시는 주님의 뜻 !

그 뜻을 들으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하면

이제 주님께서

갑자기 회복을 주실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리고 위안을 허락하시고

답을 주실 것이다.

 

 

 적용

혼란 스럽지만 회복의 시도를 하겠다.

비평과 비난이 있어도 무조건 참겠다.

평화를 위해서 무조건 인내하겠다.

그리고

그 뒤에 갑작스럽게 모든 게 정상화 되기를 바라고 기대하기 보다는

그냥 주님의 소리를 들으려 노력하겠다.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기도

 

사랑합니다.

주님.

엘리야의 예를 통하여

생각하고 조금은 부서질 제 자아에 대하여 배우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조금 깊이.

조금 오래

조금 신중히

 

내가 예상하던 주님의 소리와 현상이라고 기대하는 기적 뒤에

주님이 주관적으로 들려주시는

그 세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원합니다.

그 귀의 소리를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원합니다.

그리고 잊지 아니하고 내 영혼에 깊숙이 각인 시킬수 있는 집중력을 원합니다.

그리하여 내 인격 전체가 주님 뜻에 맞출 수 있는 그런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하신다.

- 프랑소와 페늘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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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랜시스 A. 쉐퍼 박사가 앤이라는 한 자매에게 쓴 편지다.

우울증에 빠진 앤은 인생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복잡하고 지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과 같은 ‘작은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신경 쓰실 여력이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자매에게 그저 안으로만 파고들지 말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잔인하고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 속에서 일어난 그리스도 사역의 객관적 실재를 발견한다면 계속해서 살아나갈 방법이 분명 있을 겁니다.

 단절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공황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육체적인 것이든, 눈물을 흘리고 싶은 욕망이든 일부러 우리를 유혹하는 무의식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자기 속만 들여다보며 평생을 살아서도 안 됩니다.

여기서의 균형은 성령의 보살핌 아래 정직함을 갖는 것입니다.

동시에 객관적인 실재 속에서 객관적인 관점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말을 빼먹을 수 없습니다.

저 자신이 종종 감사를 잃어버리기에 이렇게 강조합니다.

또한 타고난 성향도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인간관계가 기복이 심한 편이라면 하나님과 개인적 관계 역시 기복이 심할 확률이 높습니다.

무엇보다 폭풍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은 진실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꼭 붙잡고 계십니다.”


- 「쉐퍼의 편지」/ 프랜시스 A. 쉐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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