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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향하여( 행21:1-16 ) 본문

신약 QT

예루살렘을 향하여( 행21:1-16 )

주하인 2007. 10. 30. 09:28

제 21 장 ( Chapter 21, Acts )

 

 내 인생을 꾸미는

몇몇의 사건들은

나의 삶을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

양화진의 가녀린 소나무들이

모여서

분위기를 연출하듯이

주님 안에서

그렇게

날 꾸며줄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는...?

 

 


1.  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 행선하여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가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

    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새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로부터 수로를 다 행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 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

    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15.  이 여러 날 후에 행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유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께서

성령의 이끄심 대로

고난과 닥칠 고통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있으시다.

 

 가는 길목 길목 많은 지명이 나온다.

두로에서는

제자들을 찾아가 만나

이레를 머물기도 하면서

또 돌레마이에서는 하루를,

가이사랴 전도자 빌립의 집에서는 며칠을 머물기도 한다.

 가는 곳곳 마다

성령의 감동

성령의 말씀으로

그에게 가지 말기를 권한다.

유다에서 내려온

아가보라는 자의 입을 통해서는

'성령이 말씀 하시기를'이라는 표현과

자신을 묶어 보이는 연극적 요소까지 섞어가며

그의 고난과 고통을 극대화한다.

 참 희한하다.

바로 전

사도행전 20장의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구절을 보아도

같은 성령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이리 반응이 차이가 난다.

내용을 보면

분명코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을 것을 보이심은 동일하나

바울의 반응은

왜 차이가 나는가?

   행20:22 & 24)

22.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오늘 나온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라는 구절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성령은 한 성령이나

반응이 다름은

사람의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리 보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제자나 다른 분들의 입장은

바울님을 걱정하고 동정하는 입장에서 해석을 한 것이고

바울님은 '하나님의 뜻',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 고난도 달게 받겠다는 ,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목표가 있기에 그런 것이다.

 

 어쩌면

우리,

특별히 중년을 넘어서는 우리들은

이제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 성'

천국을 향해서 나가야 하는

오늘 사도 바울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싶다.

 

 그가 머무는 곳 곳은

얼마나 더 살아야 할지 모르지만

사는 도중 만나는

사람

Event

.......을 보여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오늘 특별히

바울의 인간관계를 본다.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하는 삶을 살고

예수님 복음을 위하여

남들의 영생을 위하여 산 삶의 댓가로

곳곳에 뿌려진

가장 진솔한 인간관계의 열매가 뿌려져 있음이

부럽게 다가온다.

 

 눈물을 흘리며

여정을 슬퍼해줄수 있는 자들이 난 과연 얼마나 있는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가?

이제 돌아서

주님 뵈올 그 곳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나갈 일만 남은 나에게

얼마 만큼의

주님을 위한 일을 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가?

안 그렇다면

이제라도

남을 위해 - 나를 위해 남에게 잘해주는 게 아니다 - 사는 삶으로

내 눈이 변하여야 하지 않을까?

 그 인간관계의 전형은

배 앞에서 무릎꿇고 울며

서로를 위해 눈물로서 기도해주는 모습에서 보고 있다.

 

영적으로 선한 사귐

세상의 그 사귐과는 다른 원리 안에서의 사귐

그런 관계 속에서

서로를 위하여

진솔하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사귐이 필요하다.

 

 지혜가 필요하다.

성령이 임하셔서

나에게 정말 필요한 응답을 주셨을 지라도

그 해석에서

지혜가 발휘가 될 수 있는 그런자가 될수 있도록

영적으로 늘 깨어 있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침에 큐티 인도하시는 원장님의 해석이 참 가슴에 왔다.

예수님은

그 고난과 고통을 익히 아시면서도

십자가를 향해 나가셨다.

 

사도 바울의 오늘의 고백을 보건데

그는 성령으로 인하여

그의 고통을 확실히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주님의 뜻이기에

심령이 매여

예루살렘을 향해 나갈 수 밖에 없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이것은

고난과 고통은

믿는 자의 필연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늘 축복 만

늘 단 것만 원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 지양해야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고통은 우리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필수이다.

특별히

인생의 후반기를 돌아

예루살렘 성을 향해 나가야할 자로서

다시금

주님의 나라 확장을 위한

고통이 필연적이고

그 필연을

달게 받아 들일 마음의 자세를 가질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할 결단을 할 하루이다.

 

 

 

적용

 

1. 인내한다.

 주님을 위하여

 낮아짐과 약해짐과 고난과 핍박을 달게 받는 마음으로 산다.

 

2. 남을 위하여

 나의 관점에서 벗어날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선언한다.

 

3. 주님 안에서 선한 교제를 갈망한다.

 

 

기도

 

주님

마음이 무겁습니다.

제가 못하는 몇가지가 묵상의 구절에 떠 올랐기에 그렇습니다.

나를 위해 울어줄 자 몇 될까..라는 생각에서도 그랬습니다.

고통을 참을 수 있을까..라는 것도요.

남을 위해 살려는 다짐도

실은 몇가지 걸리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주님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요.

그러나,

이제 인생길

한번 돌아

예루살렘을 향해 나가는

그런 지점에 있음을 압니다.

과연

사도 바울 님 처럼

우리 주님을 위하여..라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이 명제 앞에

다른 불필요한 가지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오늘 주님이 말씀하고 계신

주님 안에서의

생명력 있는 관계

지혜

결단

고통에 대한 달가운 받아들임에 대하여

제 영혼이 올바로 서고 있는 지

스스로 자문해도

아직은 입니다.

시간은 마구 흘러가고 있는데도

제 영혼이 아직도

이렇게 걸리고 있음은

아침부터 제 속이 답답하게 유지되고 있는 한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주여

시편,

그 고백처럼

제가 주님 앞에 짐승과 같고, 우지 무매한 듯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주여

제가 항상

부족하지만

겨우겨우이지만

이렇게 허덕이면서도

주님을 붙들고 있으려는

이 몸부림만 보아서라도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 예루살렘을 향하는

힘겨운 발길을 붙들어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고

제 오른 손을 놓지 말아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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