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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정 두려울 것 & 내가 진정 기대할 것[행23:12-3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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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정 두려울 것 & 내가 진정 기대할 것[행23:12-35]

주하인 2024. 6. 21. 06:10

죽지 않고 살아난 귀한 막내 감나무 ^^*  축복하면서 물을 주었다.

 

지난 3월 말

몇그루 밭 주변에 심은 감나무 중

땅의 척박함과 필요한 만큼 주지 못하던 물로

가장 시들거리며 죽어가던 감나무가

갑자기 생기를 머금으며 살아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 안에서

소망없이 온통 두려움과 어두움으로 시들대던

주하인의 영이

주님 구원의 손길과

매일 허락하시는 말씀의 생수

성령의 생수로

또 이렇듯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마음에 아직은

메마른 땅처럼

여전한 두려움이 움직이고 있는듯 하지만

이제는 그 두려움이

경외의 두려움,

인내하고 기다리면 폭주할

생기의 예감입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내 모든 살아 움직일 이유와 실재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드디어 '성령'충만으로 미리 알고 있던 일이 

바야 흐로 시작된다. 

 

' 죽이려고 매복한 자들 40명' 

'죽이기까지 먹을 것은 입에 대지도 않게다'는 

원망의 극치, 살기, 살의, 악의 끝의 '비수'같은 두려움이

바야흐로 '눈 앞'에 와 있다. 

 

 이 구절만 닥치면 난 소스라치듯 얼른 피해버리고 싶은

그러한 마음이 컸었다 .

 '두려움'이다.

 

 칼끝 같은 '살의'도 그렇고 

악함의 끝의 예리함이 두려웠다. 

 

 나 하나를 두고 저렇듯 똘똘뭉쳐서 그렇다면

그 의도 만으로도 아마 '말라 비틀어져 ' 죽을 만큼 

소름이 끼치지 않겠는가?

 

 한마디로 '저주' .. 

 

그리고 또다른 두려움이 있다. 

특히 '나에게.. 이슈'이기도 했던.. 

지금은 아니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훨씬 큰 담담함으로 최소한 마주볼 용기는 생겼다는 이야기다. 

그토록 민감했던 '남의 손가락질'에 대한 민감함을 넘어서는 차원의 

온 집단 하나가 다 '나'를 미워하고 틀렸다 틀렸다를 넘어서 

저렇게 똘똘 뭉쳐 죽이려고 까지 한다면

어느 누가 있어 '담대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난... 

최소한

그냥.. 

가만히 

날 나뒀으면 좋겠다... 하며

도피, 또 도피하는 성향을 ㅠ.ㅠ...건드림을 넘어

그 이슈에서 떨구어주신 ,

그 이유를 너무도 잘 알게 하시고 ,

알아도 견디지 못하고 타들어가던

내 지금보다 젊던 시간까지 붙들려 살던 

오랜 이슈, 상처에서 자유롭게 해주시고 계신..

완전 성화, 완전 자유, 완전 중생 ^^* 시켜주실

살아계신

내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저렇듯 귀에 들려온 조카의 전하는 소리는

'극도의 공포 '의 실체 아닐까?ㅠ.ㅠ;;

 

 그런데 '사도 바울'님은 

다 알고 

때가 왔음을 아는 자.

비록 알아도 두려울 상황,

어쩌면 알았기에 더 무서울 상황에서

그는 '두려움에 떨고 주눅 들거나 안절 부절 하거나 분노, 좌절.. 우울.. ' 뭐 그렇기보다

다른 행동을 얼른 취한다.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천부장'을 만나보라고 

하나하나 조카를 지시한다. 

 

그것...기도로 모든 것 이겨내기 보다 

다른 선택을 한다. 

 

 계속

허락되어진(지금의 ,현재의 나의 위치, 상황은 모두 주님의 허락임을 잊지 말자 .  주께서 원하시면 언제라도 쓰이기 위한... ^^*)' 세상적 선택'을 한다.  

 '로마 시민권'

' 부활이란 말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분란유도'

 이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조카의 전언이 있자마자

그를 '도구'(매개체?,,,이용?.. 어떤 표현이든...^^;)로 하여

천부장을 통한 자기 방어까지... 

완전히 '세상적 모사'가 뛰어난 '지략가'다.   

 

 더 아름다웁고 기대되는 우리의 고정 관념, 기대인

'오직 기도'로만 타개하는 그런 모습과는 유다른

그런 선택 들(하나도 아니고..ㅎ..웃을 일 맞나.ㅎ..)을 통해

사도 바울님은

'자신에게 닥쳐올 예루살렘에서의 고난'과 

그로 인한 두려움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만다. 

아 '물 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듯...

작은 양수기 통해 뿌려지는 물, 생수..
저멀리 보이는 물 터로 부터 중개하기 위하여 모으는 간이 물저장통 ^^*

 이제 오늘 , 바야흐로 '들깨 모종' 정식을 위하여

어제 '목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 내려와 

두둑, 이랑 .. 물길을 내서 농작물 보호하기 위해

오랫동안 초보농부로서 힘들여 만든 밭의 모습에

물을 촉촉히 주었다. 

 

 그렇다.

당연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음이며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모르실 일 없고

우리는 세상의 모든 상황을 통해

인생광야의 연단과

그를 통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위하여

허락되어진 '인생'들 아니던가? 

 그로 인하여

'성화'를 이루는 것 말이다. 

아.. 우리의 인생 목적 !

 

 

그런데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의 '세상적' 실체에는

사도바울 님의

그 내면적 두려움의 고통은

'성경어디엔가의 고백'에서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지금 그는 그 두려움을 딛고 

다른 차원으로 '두려움'을 승화 시키고 있으시다^^*. 

 

'두려움은 불가결한 조건일 수 있다'

'세상적 두려움을 하나님 경외의 두려움으로 승화 시켜야 한다 '가

오늘 보이고자 하시는 말씀의 키 포인트 아닐까 싶다.

 

 '기왕에 피하지 못할 두려움이면

하나님 경외로 돌리'

그래서 '즐길 수 있으면 훨씬 좋다...다.ㅎ

 

 당연한 원리지만 알면서도 기억해내지 못하거나

너무 강한 두려움으로 질려 버려 옴짝달싹 못해온게

지금까지의 나라면 

이제는 점차 그리되어감을 스스로 느끼게 됨이

실로 대견하고 감사하다.

이 아침.. 

그리고 결과로 내 하루 하루는

점차로 더

'담담함과 담대함'으로 채워져 가고 있다. '

 

 그 '모략가'.. '천재 지략가' 사도 바울은

'세상의 두려움'을 

'하나님의 두려움'

경외로

승화(차원다른 점핑, 변화를 '승화',  sublimate , transcend라 한다 ^^*)시켜 버린 거다. 

 

35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그리고 그 경외의 구체적 내용은 이러하리라

 

 성령께서 알려주신대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파 해야 하는 것.

그를 위해 '누구도 막아섰던 강력한 고통'이 수반될 것이고

그 확실한 세상적 변화의 포인트는

'자신을 죽이려 모함을 꾸미는

강력한 살의의 현장'이고

그것이 '조카의 전언'으로 뚜렷해졌기에

그는

'그들의 왕따, 살의 , 저주'가 두려운 것 보다

'로마'로 가게 될 기회를 놓치게 될까 두려워

얼른 서둘러 '천부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했고

천부장의 눈으로는 어이없는 일개 범죄자일 듯한 ^^;

로마신분 죄수에

저리 속절없이 끌려다니며

결국 그의 의도대로 '보디가드들' 장벽을 두르고

우리가 알다시피

마침내 '로마'로의 이송이 성공케 되어

'세상의 복음에 일조'하게 되게 하시니

'하나님의 하신 일의 경외롭고 놀라움'은

우리가 어찌 이 좁은 단견으로

다 이해할 수 있으며

어찌 지금 상황에 매달려

온통 세상을 어두움으로만 봐야 한단말인가... 가

말씀 묵상하며 드는

깨달음이다.

 

그렇다.

그 어느 거 하나

주님 안에서는 버릴 것이 없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선'이다.

 

감사하다.

 

주님.

말씀 묵상을 보면서

마치 수백수 앞을 내다 보시는 '대가'의 바둑을 보는 듯 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땅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게 그랬습니다. ㅎ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실제고요.

 

그런데 그 재미의 대상이

제가 평생을 그토록 힘들어했던 '인생의 이슈'에 맞물려 있음이

더 놀랍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은 죽을 때까지도 변화가 없이 잔존할 수 있지만'

그러함에도 그 두려움의 실체는

잔인하고 불쾌하고 가슴 조이는 진득한 어두움의 그러함이 아니고

주 앞에 가져가 내려놓고 아뢰면

갑자기 터져나가는 어두움들로 인하여

가슴이 '뻥 뚫리는 '

통쾌함,

주님 보좌로 부터 내려올 '성령 하나님의 통쾌함'이 예상되는

그러한 '경외'의 두려움으로

당연히도 바뀌게 됨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것'.. 그 결과마져

주님의 뜻가운데 흐르고 흘러

마침내 주님 앞에 가게 될 그날...

정말 잘살았고 행복했구나 고백할 수있는

이땅의 것들로 바뀌게 될 것도

천부장들을 통하여 변케 하시는

세상의 것들을 보아서도 알게 하셨습니다.

 

주여.

이제 곧.. 다시 나가 10시면 도착하게 될 

들깨 모종을 심기 위하여 

한번 더 밭에 물을 주려 합니다. 

 

모든 상황.. 

주님의 인도하심 중에 있음을 믿으며

그냥그냥 여기까지 흘러 왔습니다. 

주의 말씀을 매일 놓치지 않고

주님의 기도를 쉬지 못하게 하시는 가운데 

그러한 이끌림이었기에

제 상황이 

제 평생 그리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던 '결국'이 아니고

주님 안에서 

어찌 되었던 '선함'으로 이끌리는 상황임이 믿어집니다 .

 제 부업.. 농사.. 

제 계획된 아룀을 

주여 인도하여 주소서.. 

전혀 다르지만

같은 흐름.. .

바울님을 통해 느끼고 있습니다. 

감사하옵고 또 감사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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