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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확신으로 말미암아[행24:1-23]

주하인 2024. 6. 22. 10:06

죽은 줄 알았던 감나무가 이리 푸릇 거리게 다시 살아났네요.. 부활입니다.

주여.

허락하신 부업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월에 심었던 몇그루의 감나무중 하나가

저리 새로 힘을 얻고 생기를 피워내네요.

 

비들거리는 모습을 보며

자주 들르지 못해 주지 못한 물과

그보다 진정 필요한 기도를 드지 못한 탓이라  깨달아

더해진 기도 덕이라 생각합니다.

 

부활입니다.

부활한 저 아이의 모습은

형제들보다 많이 적지만

훨 아름답고 눈이더 갑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느즈막한 37살,주님 영접하고

매일 부활의 과정을 체험하고 살아가는 저...

주하인

주께서도

그리 귀하시게 보시리라 믿습니다.

 

주여 

제 눈을 통한  저 사랑스러움이

저를 향한 주님의 그것인줄 

마음에 감사함으로 담고 

오늘도 또 열심히 또

부활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할렐루야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왜 꼭 닷새 후였을까?
소설이라면 맥락에 '어색'한 일이라면 굳이 넣지 않거나

더욱더 명확히 하기 위하여 사건의 전모에 '꼭' 필요한 내용이라면

전후 5일이 될만한 시간의 흐름의 서술이 필요했을 텐데

굳이 필요하지 않은 사실이 그냥 들어간거...

'실재'..

실제로 있은 일이기에 넣은 것 뿐.. 아니던가?

다시금 실재의 '성경의 일'.. 

실재의 하나님의 뜻 한끝을 '닷새'라는 단어에서

느껴지게 하신다. ^^*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각설하고 그시대의 '변호사' (변호사가 그 고대 시대에 존재한 직군이었다.. 놀라운 문명..^^) 답게  정말 배울 만한 스타일의 말을 한다.

 꼭 기도 스타일 비슷하다 .

'찬감자 중간'(찬양-감사 -자복,회개-중보-간구) 의 형식을 띄는 기도가

좋은 기도라고 

오래전 기도원 초빙목사님 설교에서 배운 기도법이다. 

꼭 , 그 스타일로 말을 시작한다. 

화려한 언변의 칭송.

 

 듣는 총독, 얼마나 마음이 흐뭇했을까?

아... 비단 이게 꼭 이러한 자리만이 아니고'교섭', 회담에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부드럽게 있는 사실을 근거로 상대를 띄워줌.그게 꼭 내 유익을 위한 실제의 목적을 위함이 아니더라도상대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된다면 그거야 말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 허락하신 또다른 '천국'에 유사한 것 아닐까?
그게 목적이라면 그리하는 것도 괜찮지.. 
주께서 '더둘로'에게도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라' 시는 것 같다 .

 

 한편 , 그는 역시 자신들의 가치자신들의 '기득권의 도전'에 대한 위협(바울로 인하여 위협받는 자신들의 가치질서ㅠ.ㅠ)이'총독'에게는 그리 큰 관심거리가 아닐 것임을 알기에(왜 아닐까? 로마인들에게 유대인의 종교가 무에 큰 문제이게 느껴질까? ..내게 중요한게 남에게도 꼭 그럴까? .. 다시한번 되뇌이고 나를 붙들고 있는 오랜 고정관념에 의문제기하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역지사지 )그는 그리 화려한 칭송으로 시작한 후이어 '바울'에 대한 감정 섞인 '모함' 성 발언을 시작한다. 어쩌면 그들의 가슴 깊이 자신들의 주장에 오류가 있음을 인지하고어떻게든 판단 주체에게 같이 공감하게 할 미움을 밀어 넣어주기 위한 것 아니겠던가?

 그렇다. 배울 것은 배우고내려 놓을 것은 내려 놓자. 객관적 사실에 '감정'의 오류를 섞이지 않도록 기도하자.'주하인'...ㅠ.ㅠ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보라.

총독의 교만하고 재미없다는 태도.

주변에서 많이 볼수 있는..ㅎ

 

 '머리로 표시하여'.. 

그 앞에 '까딱'..이라는 한단어를 더 넣으면 훨씬 더 뚜렷해질 듯한

그의 마음상태가 그대로 보인다. 

 

 '지루하다'

' 교만하다'

모든 권세를 다가진 결정권자로서의 '위엄이다'....뭐 이런  거가 

저 한 몸짓에 그대로 나와 있는 거 아니던가?

 

그러함을 염려한 '전문가 변호사' 더둘로의 말에 이어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바울의 말도 

그를 칭송하는 말로 시작하지만

마치 '대화의 기술'에 나오는 것을 보는 듯 

정석대로 말이 시작된다. 

 "당신이 아실수 있는 바와 같이' ..

어찌 다 안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렇게 띄워주는 언어다 .

 상대가 모를 수 없는 지혜로운 자이기에 

모른다면 안되니 내 말에 집중해다오.. .그런 뉘앙스다. 

 부인하면 어이없는 자이니 내말에 집중하라..

 

대화의 기술이 참 멋지다. 

거기에 '바울'님은 저들과 다르다. 

훨씬 논리 정연하며

'감정'을 배제하고 (괜히 미움을 섞어서 반론제기하며 논리는 없어지고 싸움이 되는 회의... 익숙하지 않은가? ^^;;)

차분히 '사실'만을 근거로 이어간다. 

멋지다. 

멋드러지다. 

 

그리고 

그 사실의 중심에는

'총독'의 관심을 끌만한 사실인지의 배려, 계산, 계교... 등과는 상관없는

'진실, 진리'에 근거하여

직접 뚫고 들어간다. 

 

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그의 논리의 핵심이다. 

'소망에 대한 이야기다.

 

 몇해전 'ㄱㅁ경'이란 유명한 강사가

'안ㅇ 시립도서관' 주관 초빙으로 온 강연에 간적이 있다. 

거기에서 아주 귀한 '강의' 테크닉을 들었다. 

 먼저 자기의 이야기를 하라.. 라 하였다. 

그게 사람들의 관심을 꽉~하고 사로잡는 시작이란다. 

그리고는 ......죽 이어지는 귀한 설명을 들었고

그것을 '근무하던 ㅅㅇ양 병원'의 송년회 시상식 (아.. 하나님의 철저하신 인도하심으로 늦은 나이에 학술상을 받았다.. 현금도..ㅎ)에서 써먹어 봤다. 

 "제가 이 병원에 온게 벌써... .

올 때 그날이 기억납니다. 

하늘은 어쩌구 저쩌구........."

사람들이 온통 내게 집중하는 것을 보았다. 

그 이후 타병원 이전후 

공공병원의 특수성으로 이곳 저곳 강의를 나가면서

정말 '열화'와 같은 갈채를 받은

그 키포인가 이것이다. 

 

사도 바울이 '지루하고 어이없어하며 교만덩어리'인 총독의 관심을 

콱 잡은 것,

'내 얘기'다.

그를 들어서 올려주고

내 개인적 이야기로 관심을 집중시킨 거다 .

그 이야기는

아나니아 등과 같은 신앙의 이야기지만

다른 집중을 끌어 올렸다.

 

 그게.. 비단 '대화나 교섭의 테크닉'을 넘어서는 결과고 

본질에 의거한 것이기에 

그의 이야기는 '힘'이 있었다. 

보라..

그 본질에 자리잡고 있는

너무나도 뚜렷하고 이글거리며 꿈틀거리는 듯한 '본질의 진실'을 .... !

 

"나의 소망은 ..곧..부활"이다. 

그렇다. 남을 설득하기 위하여는 

자신이 먼저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대화전문가들은 이야기 하고

그것은 '실제이고 본질'이다. 

 

그리고 그 본질의 진리는

당연히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내게 의미로 다가옴의 실재가

바로 '부활'이다.

 그 부활이 '곧' 내 삶의 이유가 되고 목적이되며

내 살아 움직이는 반경에 이글거리며 꿈틀대는 실재가 되면

그거야 말로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 되고

우리가 움직이고 관심갖는

'삶의 동기'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함을 기뻐하시는 주께서

성령으로 인도하시며말씀으로 가르치시고

그것을 받아 힘있게 움직이는

그 모델이 바로 '바울'님이신거다.

 또,그러함을 깨달아 느끼는 자.. 주하인.. 

좁은길을 선택한 자들의

당연한 동기.. 

자주 일상에서 잊지만

그러함을 더 그리하라

주께서 오늘 말씀으로 

바울님의 저 담대한 입술통해서 보여 주시는 거고... ^^*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계속 말이 이어진다. 

 

주석설교하시는 목사님의 

바울님의 변론 중,

여섯가지 잘하는 논리의 이야기를 하신다. 

 

맞다.

 너무 뛰어나다. 

마치 잘된 '법정 영화'.. 를 보는듯

통쾌하고 시원하다. 

 

그리고 거기에 다시한번 

"내가 .. 오직.. 부활"이라는 선언을 한다. 

 

그렇다.

 힘이있다. 

진실이기에 '자신의 주장" 을

이처럼 힘있게 할 수 있는거다.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그러자

그 무감각, 무감동, 무겸손^^;..의 벨릭스가

관심과 더불어 호감을 표한다.

"내가 이 도를 더 알기 원한다. "

 

하나님께서

같은 성령의 형제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예루살렘에 귀환'키로 결정하는 '바울'님의 결정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신거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이 '바울님의 마음을 이끌어가신' 

하나님의 뜻의 구체적 실체를 드러내 보이신거다. 

'바울님의 로마 전파'에 대한 비전의 

구체적 방향, 실체. ..를 드러내 보여주신거.. 란 말이다. 

자갈 덩어리 땅을 지난 몇달 내내 주말마다 내려와서 기경하고 어제, 들깨 심기 위하여 전날 물을 주었다..

'그 전에 미리'..'부활의 도'를 한번이라도 듣게 하셔서

그 마음에 기경하고 물을 뿌리시고  '씨앗'을 부려놓고

정지 작업을 하여 놓으신거다.

 

어찌 알겠는가?
이리 이리 이어져

결국 로마로 복음이 전파되는

큰 '역할'을 저 교만하고 위험한 ^^; 벨릭스의 결심을 통하여 되게 될 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가 예측 불가다.

 

그 어떤 일도

우리가 '부활'을 믿고

그 부활의 '오직 내가 사는 삶의 이유가 된다면

반드시 '선'으로  나오지 않겠는가?

 

오늘 말씀... 시작이 버거웠지만

확연히도 깨닫게 하시는 바가 있다.

 

'주하인' ..

잘가고 있다.

하지만 '더 뚜렷해진 사모함'이 있어야 한다 .

"오직, 곧 , 부활"이다.

부활이 믿어지면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부활이 믿어지는 자는 '의인'이라 했다.

그리고 그 삶의 반경의 '힘'이 되고 '지혜'가 되며

당연한 동기가 되어

그 삶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을 누리는 그런 자가 되리라.

믿어라...

 

그리고 '대화의 기술이다.

심지어는 더둘로를 통하여도

마치 기도하는 원리를 보는 듯 유려한 원리를 보며

'감정'을 내세우지 않는

객관적인 상황을 근거로 하여야만 실패하지 않을 것을 배운다 .

바울님의 그 냉철한 판단은

오직 '부활'의 믿어짐 이다.

배우라.. 하신다.

 

감사합니다.

주여.

오늘 많은 아는 것을 '확인하고 확신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확신하고

전혀 흔들리지 않는 힘있는 바울님의 이유를 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부활

오직 나는 부활을 믿기에 

하나님과 나와 주변에 옳은 자로서 서게 될 

당연한 이유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확인하고 확신 했습니다. 

주여.

저.. 알고 있고 열심히 하려 합니다 .

도우소서.

순간순간 저를 유혹하고 잊게 만드는 

오래된 습관 속의 어두운 소리들을 물리치소서.

또다시 '부활'로 주님 앞에 섭니다. 

완전한 부활의 그 순간까지 

오늘 보고 배운 그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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