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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영원히[요6:30-40] 본문

신약 QT

항상 영원히[요6:30-40]

주하인 2013. 1. 17. 11:21

 

 

 

34.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항상' 주소서..란다.

이 항상에는

쉬지 않고

먹을 것을 주라는 의미다.

쉬지 않고 먹을 것을 받고 싶다는 의지..

그것은 '먹는 다는 물질의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항상 세상의 것을 달라는 것은

고민하는 시간이 , 배곯는 시간이 없었으면 한다는 의미다.

 

항상.

그것은 '유한'한 속성의 인간이

이 땅의 것만 제한해서

쉬지 않는 물질적, 현세적 축복만을 바라는 의미가 그대로 함축되어 있다.

'기복적 바램'

 

 그들은 '항상' 배부르지 않으면

조금 고난이 길어지면

즉시 주님을 부인하고 떠나갈 자들이다.

영원이나 영생은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콧방귀 낄 소리들로 치부된다.

그들의 좋고 나쁨은 겨우 이땅의 소유나 획득에 제한이 된다.

 그러기에 조건에 의하여 쉽게 감정과 심지어는 믿음까지도

등락이 거듭된다.

롤러 코스트다.

 

 

 

3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축복은 다르다.

'영원히' 시다.

 

 그 영원한 축복의 뉘앙스는 목마르지 않는 것이다.

물론 떡으로 주리지 않음도 포함한다.

그리고 '항상 목마르지 않고 영원토록 배고프지 않는 개념'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항상은 조금 다르다.

 

영원이 우선이다.

이 세상에 제한되지 않고 영생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배고프지 않기 위해서는

영생을 위한 바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믿는 자'

'예수님께 오는 자'라는 것이 선행이 되어야 한다.

믿는 다는 것.

그 믿음의 정도는 천차만별이고

인생을 거쳐 내내 믿음을 깊이하고

주님과 점점 더 가까이 가는 과정인데

그 과정은 '연단'의 고난과 고통이 빠질 수 없음이다.

믿음이 커질수록

고난과는 별개의 기쁨,

영적 평강을 넘어서는

열렬한 기쁨이 그를 잡아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제야 '항상 ' 기뻐할 수 있는것이고

그것은 항상 기뻐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여

상황에 상관없는 항상 기뻐할 결심과 선택을 하는 자에게

예수께서 은혜로 예비해 놓으신 결과일 뿐이다.

그런 자들에게는 물론 영생의 기쁨이 있을 것이고..

 그러기에 '영원'이라는 뉘앙스는

위의 '항상' 기복적 축복을 바라는 자들의 개념과는

너무도 다르다.

 

 그렇다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것일까?

 

혹시 고난이 임할 때

푹~ 좌절하고 풀이 죽어버리는

이 조삼모사의 심성 안에는

아닌 것을 알면서도 '항상 ' 기복적 축복을 기대하는 심사가 있는 것을 아닐까?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사람이 살면서 ..

특별히 자녀들의 문제와 심적인 문제로 대변되는

세상의 문제들에 의하여 더욱 강력하게 흔들릴 때

이 '항상의 기대치'에서 어찌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이 '항상'을 묵상하라 하셨는가 보다.

내 흔들림.. 이해가 되는 바 없지 않다.

당연히도 세상에 사는 사람이면 그러한 기대는 가지고 있다.

이제는 하지만, 깨달아 인식함이 중요하다.

그것.

조금 내려놓고

영원의 생명수와 생명의 떡이란 관점에서

한줄기 바람에 날려갈 먼지의 근심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영원을위한 하나님이 허락하신 '연단'이다.

연단은 받아 들이고 기뻐하길 결심하면 된다.

그렇다고 세상을 도외시 하란 말씀은 아니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또 오늘 그러시니

그렇게 그렇게 '항상'의 '항상 기대'는 내려 놓고

영원히 주실 목마르지 않음을 의도적으로 기대하면

주님이 정말 나를 바꾸셔서

항상 기뻐할 ,

진정 성령의 생명의 움직임이 폭주하는 기회가

곧 올 것을 기대하여야 할것이다.

그리고는 영생은 나의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더욱 잔잔해져야 한다.

어려운일 속상한 일 당해도 '항상' 좋은 일 만 기대하고 있을 필요 없음을 이해 할 수 있어야 겠다.

그리고 그 어려운 일 속상한 일 외로운 일 힘든 일도 시간이 지나면

곧 선으로 바뀌는 큰 밑걸음이 될 것일 것이다.

영원은 곧 나의 것이니까.

모든 것이 나의 '유익'을 위함이니까..

그러기 위해 나는 예수님이 내 편이시고

늘 나는 주님의 말씀을 주님으로 모셔 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결국, 나의 삶의 기조는

항상.. 기쁘고 감사하게.. 될 것이고

영원히 샬롬의 운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기도

주님.

산다는 것.. 어찌도 이렇게 힘이 들고 외로운지요.

나이가 들수록 젊은 적의 열렬한 기대와 희망과 흥분이 사라지고

웬만한 것에는 자극조차 되지 않으니

힘은 빠지고

시름의 골은 깊어지고

외로움은 커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주여.

그러기에 사람들이 더 '항상' 기쁘기를 그리도 간절히 바라고

복 받는 것을 그리도 열렬히 바라면서

그 복의 실체를 말하라면 하지못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 실체는

유한한 인간의 절망 탓인듯합니다.

 주여.

저를 바라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알기에

이제 그것들이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

아직도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권세잡은 자들의 공격이 시작이 되고

그 공격이 다양한 삶의 장애로 변형되어 다가오면

제 안의 아픔들은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새 저는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은 멀어지고

불신의 그것 비슷한 감성들이 올라옵니다.

아.......

어찌도 이리 항상 .. 주님의 평안 안에서 거할 수 는 없는지요....

다행이도 주님.

주님의 그 은혜의 아련함,

그 열렬한 평안의 기쁨.

샬롬의 기억은 절 그냥 두지 않아서

하나님의 앞으로 금방 다시 돌아오게 하는 동력은 되지만

주여..

그래도 그런 힘듦이 있을 때마다...

'항상' 좋았으면 좋겠다는 유혹이듭니다.

아..

항상 좋음이

세상의 조건들이 없어도

항상 주님의 말씀 만으로

항상 주님의 임재하시는 감동 만으로

그리 항상 기뻐지면 저 알마나 좋겠습니까?

미련하게도 '항상' 현세적인 욕구,

지금 눈 앞에 있는 장애의 사라짐에 대한 갈망 만으로 채워지지 않고요..

 

 감사하신 내 하나님.

저 그래도

그 항상과

하나님이 영원의 소망과 더불어

점차 서서히 주시는 '항상' 평강을 구분할 수는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오늘도 말씀 안에서 깨달음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점점 손에 쥐었던 것을 놓게 됩니다.

 점점 가벼워 짐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항상 '그렇지는 못해서

조금 흔들리고 있지만

이제 영원을 기대하고 기다리면

항상 기쁜 ..

그런 제가 될 수 있음을 기대합니다.

주님.

흔들릴 때는 그 앎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억도 나지 않았었지만

이제는 조금 그 망각의 시간이 줄어들고

조금 빨리 기억이 남이 감사하며

흔들림에서 감사함으로

그래도 든든함으로 바뀌는 간격이 줄어 들고 있습니다.

주님.

세상의 어떤 일이라도

주님이 제게 약속하신 '영생'의 생명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그걸.. 원합니다.

강력히도 바랍니다.

주님.

혼자 힘으로 안되오니

주님의 인도하심 기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진정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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