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하나님 앞에서(시102:1-11) 본문
제 102 장 ( Chapter 102, Psalm )
주님이시여제가 그렇습니다
기울어가는 나이 같고쇠잔해져 가는 풀같이 그리 느껴집니다
그래서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주여저로 아름답게 하소서
주여제게 주의 영으로충만하게 하소서
1. (
곤고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하는 기도
)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어느 때라도
주님을 찾아야 겠지만
정말 마음이 곤고하고 상할 때
더욱 찾아야 한다.
그리곤, 토하듯
심사를 다 주님께 고해 내야 한다.
2.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주시~옵소서~' 부르짖음도 좋지만
그보다는
주님의 얼굴을 뵙고
주님의 귀 기울여 들으심을 느끼는
그런 기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분이 내 아버지이시고 내 하나님이신
그런 사실이 느껴져야 함이 옳다.
그때 '속히 응답하여 주시길'
부르짖어도 좋고
없는 힘이라도 짜어내 조근조근 속삭여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그 분이 내 말을 들어주심을 깨닫게 될 때
난 ,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때는 내 속의 무거운 짐들이 내려지고
내 속의 거멓고 진득한 것들이 토해져 냄을 느끼게 될 것이다.
11.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
다양하고 적나라하게
시편의 기자는 묘사를 했지만
이 구절이 더욱 절절하다.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와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과 같다'
참으로 시편은 시편이다.
가슴을 저미는 듯 공감이 된다.
정말로 어려울 때는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때는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 마져 힘이 든다.
손 발에 힘이 한톨 남아 있는 것 같지 않다.
무기력이다.
그 무기력이 오래되면 우울에 빠질 것이다.
이 현대인의 취약한 감성들.
그로 인하여 더욱 하나님과 단절되어가는 문제들.
그러나, 우리의 유일한 해결책은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 사람이 없어서 갈등이 많은 게 아니다.
세상에 도울 말이 적어서 어려움이 더 많은 게 아니다.
넘치는 게 사람이고
또 넘치는 게 정보다 .
그러나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져 가고 더 벽은 높아져 가기만한다.
단절됨은 더욱 어려움을 어렵게 한다.
기도하고 말씀을 붙잡고
여러 어려움 들을 잘 다지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확~'하고 자식들의 부족함에 '필'이 꽂혀 버렸다.
IT계통이라서 늦은 잠을 자고 늦은 아침을 일어나는
큰아들을 계속 지켜 보면서
나름으로는 은혜 가운데 있을 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차분히 바라보아 왔던 것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 아마도 L님의 우애심 깊은 가정, 착한 형을 본 탓이 아닌가?ㅎ - 갑자기
주일 아침에 그 모습이 언짢게 느껴지며
이전에 아주 잘 훈련되어 왔던 ...
아이의 장래에 대한 여러가지 염려 들이 또 날 몰아친다.
잠시 여러 생각으로 날 다스리려 했었다.
하지만 난 아이 방에 가서 아들을 흔들어 깨우고
먼저 가는 교회에 마중 나오기를 강제했다.
그러고 나니 내 속은 뒤틀린다.
주일 날 이러는 갈등은 분명코 '사단'의 장난일 듯 싶지만
일단 시작된 '비교'에 의한 마음의 흔들림은
비교적 강한 엄습을 한다.
물론,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화는 내 속에 동하려 하고 있고
그 마음을 주님 앞에 바치려 했으나 참 어려웠다.
계속 묵상 구절 - 사특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완전한 마음을 주시라는 아침의 시편 구절 -을 되뇌이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저녁에 아들에게 내 마음을 정확히 얘기하고
아이는 장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했다.
요새 세상과 비교할 바 없는 착한 아들이다.
하지만 이 비교에 의한 갈등이 문제다.
더 를 바라는 내 기준이 문제다.
갈등의 끈은 끊어졌다.
편안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기도가 하기 싫다.
아마도 '사단'의 발톱이 남아 있는 듯했다.
이럴 때 억지로 기도하기가 힘이 든다.
그래도 힘을 내 묵상기도를 했다.
오래 묵상기도가 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회의에 여성유방센터 발전안에 대하여 발표가 있다.
묵상구절에 온통 '곤고한 자'의 심리를 호소하는 시편이다.
마음이 그리 맑지는 않다.
그러다가 '기울어지는 그림자같고 쇠잔한 풀 같다'고 하소연하는
시편기자의 그 복잡하고 빙글빙글 도는 심사가 조금은 느껴져 왔다.
그 심사는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좋아 졌으나
곤고 했던 어제가 생각이 났다 .
그러한 곤고 중에 난 십자가 앞에 오기가 조금은 힘들다.
TV, 친구,....위로를 찾아 헤매고 싶은 충동이 아직은 조금 남아 있다.
그러나, 시편의 기자는 그런다.
'하나님 앞에 토하는 기도'를 한다.
그렇다.
세상에 어느 누가 있어 나를 도울 수 있는가?
사람은 다 각자의 문제로 허덕이기도 힘이 든다.
사람은 일시적 위안은 될 수 있으나 해결책이 되기 힘들다.
그들은 서로의 짐을 지워질 뿐이다.
하나님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기도후 인도하시는 매개체일 뿐이다.
오늘 시편의 기자 처럼 마음이 곤고할 때, 몸이 힘들때, 어떤 상황이든 어려울 때
더욱 하나님 앞에 나아가 '토해내는 기도'를해야 한다.
나아가는 그 과정을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사람이 만날 때 대면 한다는 표현을 쓰듯
하나님의 얼굴을 만나야 한다.
실제의 얼굴을 볼 수 있겠냐마는
그 개인적 만남의 친밀함을 말한다.
하나님의 귀기울이심을 느껴야 한다.
그 진정한 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될 때
어려움은 풀어진다.
힘듦은 사라진다.
무거운 짐은 풀린다.
인생의 해결되지 않던 묶임들이 하나하나 풀려나간다.
자주 ,
기도원에 가서,
교회에서
혼자 무릎 꿇고 기도할 때
가슴이 '뻥~' 뚫리는 체험을 한다.
그제도 그랬다.
그 뚫리는 느낌을 조금더 성숙하고 깊게 확장하게 되면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하나님의 귀기울이심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 앞에 나가
토해내는 기도가 필요하다.
그때는
나..
자주 고백하듯이
고난의 정도나 그것의 실제적 해결 여부와 상관없이
'주님을 믿게 됨이 얼마나 감사한가'라 감탄의 소리를 발하게 된다.
그리 되면
내 날이 기울어진다해도 염려할 것 없고
쇠잔해지는 풀보다는 푸릇한 생명으로 가득차는 어린 싹같은 느낌이 든다.
진짜다.
힘내자.
더욱 기도하자.
주님 앞에 나가자.
주님의 임재 앞에..
적용
1. 작정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2. 성경 세장 읽겠다.
3. 주님의 임재를 간구하자.
주님의 얼굴을 묵상하고
주님의 귀기울심을 기대해보자.
4. 곤고함을 인정하자.
피할 것은 아니다.
어려운 것도 인정하자.
그리고는 주님 앞으로 무조건 가져와서 기도해야 한다.
5 .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6. 아이들을 더 이해할 깊은 이해심을 간구한다.
기도
주님.
흔들릴 뻔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도우심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주님.
그런 내가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계셔서 다시한번 힘냅니다.
약해지고 흐려질 때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절 인도하십니다.
그게 감사합니다.
그게 너무 귀한 행운임을 깨닫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더욱 주님 앞에 나가는 제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전과는 다른, 조금은 더 성숙한 믿음이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
흔들릴 때 주님 앞에 더 뜨거운 기도를 토하게 하시고
힘들 때 그로 인하여 더욱 은혜 받게 하소서.
고난이 유익임이
고난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기회가 됨을 기뻐 하게 하소서.
그래서 늘 기빠할 수 있게 하소서.
기뻐서 기쁘고
어려워서 기쁜......
그런 제가 될 수 있게 하소서.
이제 더욱 깊이 주님 보게 하소서.
주님의 얼굴을 뵈옵게 하시고
주님의 귀 기울임을 즐겨 느끼게 도우소서.
저 뿐 아니라 ..
제 자식들
제 아내 그리하게 하소서.
바라옵기는
믿는 모든 자들이 은혜 가운데 더욱 뚜렷한 임재를 체험하게 하시사
이 세상의 오류가
조금이라도 우리들을 통해 바로 잡히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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