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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생의 언약 (레26:40-46) 본문

구약 QT

내 일생의 언약 (레26:40-46)

주하인 2010. 12. 4. 10:30

제 26 장 ( Chapter 26, Leviticus )

 



 
41.  나도 그들을 대항하여 그 대적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져서

      그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면  
 고난과 역경과 환란의 이유는 '연단'이다.

마음이 낮아짐이다.

연단을 거치지 못하고 부러지거나 넘어짐의 결과는 형벌의 지속이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듯한 힘듦이 있을 때,

그것은 모두는 아니겠지만 어떠한 경우의 어려움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다시 한번 돌아오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하지만 반드시 돌이키는 게 쉽던가?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더 우리는 말씀을 통해 나를 붙들고 돌아보는

매일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교만이 가장 무서운 것은 회개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막음이다.

 

 오늘 '마음이 낮아져서'라 하신다.

돌아보고 낮추어야 한다.

그리고 '순히 받으라 ' 하신다.

나에게 주어진 어려움, 현재의 환란을

'해결받아야 할 '

'내 문제'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딘가에 고쳐야 할 것이 있으신가 보다.

 그래서 주님이 나에게 이리 신호를 보내시나 보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그러리라.

 아파도 받아 들여야 겠다.

 약함이 강함이라 셨다.

 예수님을 위하여

 낮아짐과 약함과 곤란과 핍박을 기뻐해야겠다.' 라 결심을 해야 한다.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

선택을 굳은 결심임이 되어야 하지만 의지가 약하거나 상처가 있는 분들은 쉽지 않다.

입으로 고백을 하면 된다.

입으로 그리되풀이 하며 마음에 인식시키면 된다.

그리곤, 성령의 운행을 기다려야 한다.

 

 

43.  그들이 나의 법도를 싫어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땅이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 죄악으로 형벌을 순히 받으리라  
' 땅이 안식을 누린다. '

어제 부터 계속적으로 나오는 말씀이시다.

아니.. 사람이 아니고 땅이 안식을 누린다.

우리가 주님의 원하시는 방향과 반대로 지속적인 죄를 범할 때

내가 거하고 내 삶의 터전이 되는 내 삶의 방편.........사람........환경..........이

나로 인하여 '괴로워 하는 것'이다.

단순히 보아도 인간들의 무리한 개발 경쟁으로 인하여 지구의 환경이 피폐해졌지 않은가?

그 땅의 개념은 '내 생활 터전'을 넘어서서 '영적인 부분'까지

나의 이 땅에서 거하고 살아가는 모든 관계되는 전 영역을 의미한다.

 그 땅이 나로 하여 안식을 못함이 주님이 안타까워 하시는 또다른 이유다.

 

 그렇다면 난 얼른 돌이켜 보아야 한다.

주님이 세상에 인간을 창조하여 어려움을 참아가시면서 십자가 예수님까지 보내시고도

또 인내하심은 '나' 뿐 아니라 '내 땅', 그리고 '나와 내 땅의 하모니'의 연합하는 아름다움을

받고 싶으신게 아닌가?

 

 

45.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열방의 목전에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그들의 열조와 맺은 언약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언약'이라는 개념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주님은 너무나 어리석은 나 같은 자들을 위하여

당신의 일방적이신 '언약'을 맺어 나를 인도하신 것이다.

그 언약은 나로 하여금 내 땅에서 살면서

죽어 주님 앞에 갈 때까지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 아름다움을 보여드리고 오기를 바라시는 것이시다.

그 아름다움을 이룸을 위하여

모든 지원을 전폭적으로 아끼지 않으신 것이고...

 도저히 안되니 '십자가 예수'님의 성육신 을 통하여 ,

또한 성령의 에너지를 수혈 하시기도 하시고..........

 

 이제 다시 한번 정신 차려

주님의 내 일생에 허락하신 그 언약을 돌이켜 볼 때다.

' 내가 지금 나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이던가?

 혹시 부대끼는 점이 있다면 이게 하나님과의 언약에 어긋난 것은 없던가?

 어긋나 있다면 이것은 '내 땅'에 어떠한 아픔을 주고 있었음을 깨닫지 못하던 것은 아니던가?

 깨닫지 못한 것은 내가 내 마음을 너무 강팍히 먹고 있던 것은 아니던가?

 마음이 낮아지기로 '순히 ' 마음을 먹어야 할 상황은 아니던가?'

 

 

 아침에 눈을 떴다.

휴가를 내서 어제부터 오늘 , 주일인 내일까지 쉰다.

출근하는 때는 그토록 일어나 침대에서 나오기 싫더만 휴일만 되면 나도 모르게 눈이 떠져

도저히 누워 있을 수 없는 것이 습관이란게 참 묘하다.

그리고는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이면 눈 뜨자 마자 피곤하다.

 아.

그러고 보니 어느 샌가 아침에 삼십분 먼저 일어나서 묵상하던

그 즐거운 평강의 기쁨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아니... 아침에 잠시 눈감고 '아멘' 해버리며 급히 시간에 쫓기어

묵상도 제대로 못하고 나오는게 대부분이 되면서도

이전에 그 삼십분의 충만한 시간을 놓침을 조금이라도 범하면 아쉬워 하던

그 안타까움 조차 없어졌던 것이 오래다.

그러고 보니...

 늘 하던 대로 아침에 욕실에 들어가 칫솔질 하면서라도

눈을 감고 주님의 말씀에 집중을 하려는 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딴 생각한다.

 환우 생각.

오늘 쉬는 날 뭐하지..

그러다 아차 하면서 머리를 턴다.

다시 멍하다.

그러면서 다시 집중을 하며 '말씀 구절을 선택한다'는 입으로의 소리를 내며

말씀을 외우며 내 어려웠고 힘들었던 상황을 대입하며 묵상하려 애썼다.

빙글 빙글.

이전에는 말씀을 떠올리는 순간 부터 난 마음이 고요해짐을 경험하곤 했다.

폭풍우 치던 감정의 회오리가 순간 고요해짐을 너무도 많이 경험함으로 해서

난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을 통해 오시고

말씀이신 하나님.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말씀이기도 하지만

성령이 말씀하시는 성경의 구절이고,

성령이 말씀이신 그 하나님의 오묘함에 감탄하곤했던

그 체험이 자꾸 약해져감을 느낀다.

 무엇이 문제던가?

아마도 '내 교만'이 아닐까?

폭풍우치는 감정의 회오리는 덜하다.

두려움도 덜하고

비교도 덜하고

아쉬움도 덜하다.

괜한 짜증도 덜하고

불안도 덜하다.

환우가 문제가 좀 있어도 덜 힘들다.

 그러니 그럴까?

묵상의 말씀에서 그러신다.

'마음을 낮추라'

'순히 마음을 가져라'

'언약'을 회복하라.

' 그래야 너와 네 땅이 안식할 것이다. '

 

맞다.

내가 습관적으로 말씀을 대하고

그러다 보니 내 감동은 줄고

하나님의 뜻인 것을 짐작했던 모양이다.

더 낮추어야 한다.

그래야 내 주위, 내 땅이 안식을 누릴 수 있다.

그래야 내가 주님의 언약을 회복할 수 있다.

그래야 내 삶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고

그래야 주님의 기뻐하심을 더욱 느낄 수 있고

그래야 내 죽어 천국갈 때 더욱 기뻐하시는 주님의 맞이하심을 볼 수있으리라.

 

언약.

주님이 내 일생의 언약을 맺으신게 그렇다.

'나와 내 땅을 위하여 님의 말씀대로 살아라. '

 

 

예.

주님 그러지요.

말씀을 준행하기 위하여

더욱 나를 돌아 보겠습니다.

지금 내 주위에서 생기는 약간의 어수선함, 마음의 심란함이

어쩌면 내 교만에서 파생되는

내 주님의 말씀을 게을리하는 영적 나태로 인하여 생기는

주님의 싸인이실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내 마음이 주님의 평강을 더 풍성히 깨닫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에 더욱 더 가까이 하지 못함이

지금의 곤란을 약간 맛보게 하심이실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주님 말씀 안에서 거하여

더욱 풍성한 삶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이 날 세상에 보내시며

저에게 일평생의 언약을 지워주신

그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려 합니다.

주여 도우소서.

지금껏 그러하셧듯

앞으로도 그리하소서.

제가 제 마음을 낮추어 주님 앞에서 순히 생각하려 할 때

그것을 기뻐 도우소서.

제 자식들도 그리하소서.

제 아내 그리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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