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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시온성을 기다리며(시102:12-28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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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시온성을 기다리며(시102:12-28 )

주하인 2011. 2. 1. 11:37

제 102 장 ( Chapter 102, Psalm )  

 내 비록

아직은 사는 모습

그리 윤택해 보이지 않고

 

내 영혼 비록

아직은 흔들리고

그리 믿음직 보이지 않더라도

 

주님을 보고 있다

주님의 영광 만

내 영혼에 비치이면

언제나

시온성에서 살게 된다

 

바람아 불어라

눈아 흩부려라

어둠아 그래라

그래도

새벽은 오리라

 

 

 

16.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주님은 '시온'을 건설하셨다.

시온으로 대표되는 천국을 건설하시고

그 모형인 지성소를 내 영혼에 건설하신다.

그리고 영광 중에 나타나신다.

난... 은혜를 넘어서는 은헤로

그분의 영광을 알아챈다.

 

내 영혼의 시온성을 기다리며(시102:12-28 )

17.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 
 주님.

이 빈궁한 자의 기도도 들으심...

멸시치 않으심...

이제는 확신한다.

 

 

 어제..

갑자기 어느 한분이 글을 남기고 갔다.

' 머리 속의.... '

누구인지 알겠는 그런 분이다.

언젠가 블로그 써핑 중

기독교인으로 예상은 되나

마음의 상처가 많았던지 회의적인 글을 많이 써 놓았던 분으로

권면 후 방문을 멈추었었던..

그 분의 집요하고  

회의적 분위기는 힘이 들었던 차다.

 믿음은 평안인데...

그리고는 기도하고는 잊었던 분인데

그 분의 분위기랑 너무도 흡사한

그 어이없는 글에 갑자기 마음이 '턱' 하고 막힌다.

이해할 수 없다.

 궤변.

의혹

미혹

죽이는 말.....

성경에는 날아가는 참새의 이르지 못함과 같다고 써있는

그런 어이없는 단 한마디의 자극에 이리도 마음이 편치 않은 날 보며

어제 당혹했다.

이래서 마지막 날에 세상에 정말로 강한 압박과 미혹이 있을 텐데

내 믿음의 지축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월요일 모임에 갔다.

잠시의 찬양 후 목사님의 강의.

괜히 흔들린다.

 

 나.

인생을 그렇게 이해한다.

주님 손잡고 동행하다가 연단과정으로 성화된 영혼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과정.

그러기에 점차로 단순해져 가야 하고

세상의 과도한 지식과 지혜는

주님의 말씀 앞에 내려 놓아야 하는..

그럼에도 이 모임에서 내가 배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에서 오류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인간을 이해하고

그로 인하여 주님의 은혜가 더욱 원활히 내 안에 운행할 기회.

온전히 주님이 다 해주시면 되겠지만

의사가 환우에 필요하듯

이런 모임 같은 세상의 도움은 하나님의 허락한 과정에서

취할 것 취해야 하는 유익.

그러나, 강의는 '눈'이 넓혀져야 함을 논리로

세상을 적극적으로 받아 professional identity를 융합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그런가?

난 점차로 단순해지고

매일 말씀으로 순수해지길 원하는 데......어쩌면 역행하는 거 아닌가?

처음부터 난 '인본주의 적' 모임은 사양하겠다 했다.

그게 맞는 저항점인지 모르지만

마음이 혼란 스럽다.

내가 맞는지?

틀리면 확돌아설 수 있는게 내 특성인바

지금까지의 내 삶을 정하게 만들어온

내 행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라면 난 왜 이리 흔들리는가?

이들이 '인본주의'의 하나님 원리와 어긋난 세상의 통념적인 대화를

아무 고민이나 스스럼없이 나누는 것 아닌가?

그래서 진정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타인 들과 같이 믿음은 요식 행위처럼이고 나눔과 교제가 전부가 되어버려

이 세상의 조류에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고

이들이 다양한 이유로 내 세우는 논리가

결국은 세상의 살면서 안정을 유지하는 데

그 온전한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던가?

나.

내가 추구하는 이 깨끗함이 정말 편협한 것인가?

세상에서 끼리끼리의 논리로 눈을 넓혀

결국은 이 땅에만 관심을 두는 것은.. 또 맞는 내 판단이던가?

.........

 

 계속 나를 흔드는 생각들이

어제 그 분의 극단적 말투 하나에 불이 지펴지며

계속 나를 흔든다.

어쩌면 내 고민 자체가 남들이 보면 이해하지도 못할 것은 아니던가?

 

참으로

오늘 말씀의  표현 처럼

'빈궁한 영혼'이 맞다.

빈궁한 상태란 어떤 상태인가?

가난하고 궁핍한 상태인데

마음이 그렇다면 괜찮지만

믿음이 빈궁한 영혼이라면 문제가 다르지 않던가?

그 빈궁함을 홀로는 해결할 수 없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니 아내는 없다.

침대 맡 내 기도처 ^^*에 얼른 무릎을 꿇었다.

기도했다.

 잠시의 시간이지만 마음이 '뻥~~~~' 뚫린다.

그렇다.

세상의 어떠한 그럴 듯한 논리와 비상한 지혜를 가져도

이 증거로 하나님이 날 이끌어 오심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성경에 ' 네 그 많은 지식이 너를 죽였다. '라는 말씀이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날이 갈 수록 단순해져야 함에도

자꾸만 복잡한 생각으로 영혼을 채움은 못쓴다.

그렇다고 벽을 쌓고 담을 쌓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영혼에 그게 옳든 옳지 않든

나에게 원하지 않으실 생각들이  날 혼란이

날 흔들지 않기를 원하면

기도하면 된다.

그 분은 빈궁한 영혼을 멸시치 않으실 것이다.

그러면 그 분이 내 영혼에 '시온'을

내 영혼의 지성소에 다시 세우실 것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의 영으로 그득차면

어떤 흔들림도 없어진다.

마음이 뻥 뚫린다.

그렇다.

어떤 상황이어도 받아들이고

어떤 논리도 받아 들일 것이다.

그리고는 내가 흔들리고 힘들어 했던

내 궁핍한 흔들림이 굳건해질 것이다.

그리고는 내 시야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대로

펼쳐지게 될 것이다.

넓어지게 될 것이다.

 

삶이 조금 더 자유로와 진다.

자유로우면서도 세상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다.

더욱 하나님의 영으로 강해진다.

내 영혼에 시온이 새롭게 건설되어가는 것이다. 

 

 감사하다.

참 감사하다.

매일 매일 난 내 마음을 이해하시고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의 그 세밀한 다정함을 체험한다.

말씀 앞에 서려는

아주 적은 노력이

날 이토록 매일매일 잡아주신다.

 

 그래.

사단아.

오라.

이제 곧 완성될 내 시온성을 보라.

궁핍할 때 기도하는 내 모습을 보라.

그리고 승리할 나를 보라.

주님안에서 그리할 나를 보라.

 

 

적용

1. 기도하자.

 작정기도 한다.

기도원 간다.

 

2. 구정이다.

 사단, 귀신들이 들 끓을 때다.

 정신차리고 기도할 때다.

 

3. 성경 세장 읽자.

 말씀 만이 살 길이다.

 말씀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어떤 논리도 배제한다.

 

4. 주님이 허락하신 시온성을 감사하자.

 단단한 성벽을 지닌 내 시온성.

 

5. 감사하자.

 기도하면 함께하시는 주님을 느끼게 해주심을 감사하자.

 늘 살아 도우시는 하나님을 감사하자.

 

 

기도

 주님.

괜히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그 흔들림은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교묘히.. 논리적으로.. ..구분하기 힘들 ....

그러함에도 주님의 임재하심으로 마음이 은혜로 차니

흔들림은 일거에 사라졌습니다.

유사한 흔들림이 또 없으리라는 보장은

제 성향상 장담을 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주여 그때마다 기도에 응답하셔서

궁핍한 제 영혼에 힘을 주소서.

멸시치 마소서.

그리하여 제 영혼에 굳건한 시온성 세워지게 하소서.

사단의 틈 못탈 강한 성을 주소서.

그안에서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그들의 이해하지 못하는 입으로

편협이라는 단어로 공격해와도

세상을 감싸 안아도 남는

성령의 강건함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하소서.

폭 넓게 하소서.

하나님의 바탕 안에서 그리하게 하소서.

특별히 어지러운 이 세상 기억하소서.

가치가 혼란 그 자체인 이 세대에서

젊은이들 주님으로 사로잡히게 하소서.

제 자식들 둘.

주님께 올립니다.

그들의 영혼에 시온성 세우게 하소서.

기도할 때마다 들어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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