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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릴 땅 바칠 물건 ( 레27:16-34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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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릴 땅 바칠 물건 ( 레27:16-34 )

주하인 2010. 12. 6. 10:53

제 27 장 ( Chapter 27, Leviticus )

 

주님

드릴 것

뚜렷이 없는 듯 합니다

 

주여

그냥

주님 주신

이 회복되어가는 생명력 만을

조심스레이 바칩니다

 

기뻐해주소서

그리고

제 생각이 아니시라시면

깨닫게 하소서

적은 토끼풀 꽃이나마

한번 피워보리이다

     
21.  희년이 되어서 그 밭이 돌아오게 될 때에는 여호와께 바친 성물이 되어 영영히 드린 땅과 같이

      제사장의 기업이 될 것이며   
28.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34.  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이니라
 
 휴가라고 삼일 받았지만

금요일 오전에는 병원에 나가 '생애 검진'을 받고

환우 분들 회진 돌고 운동하고 교회 찬양예배에 서니 하루가 지났다.

저녁에 그 좋아하는 영화 다운 받아 놓은 거 - 주여 죄송해요..^^;;- 밤늦게 까지 보고는

토요일 느즈막히 뒹굴거리다가 - 실은 출근시간에 일어나 한참을 묵상하다 잤다. ^^* , 습관이란 거 무섭다 . 

그리도 늦잠을 자고 싶었는데..  - 일어나 오랫만에 먼지 수북히 쌓인 자전거를 타고

빠진 바람 넣고 용기도 가상하게 '해변' 까지 나가서 사진을 찍을 계획이었다.

아내는 '시험공부' 한다고 절래 절래 해서 혼자 나섰다.

날씨는 매섭게 바람이 불었지만

완전 무장을 하고 나간 터라 땀이 범벅이 된다.

이 동네.

이사온 이동네는 안양보다 훨씬 땅의 굴곡이 세다.

운전을 하고 출퇴근할 때는 전혀 개념을 두지 않았는데

자전거 타기에는 너무 힘이들었다.

 도저히 멀리가기는 불가능해서 근처의 박물관 들렀다가

수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는 저녁을 먹고는

또 한번 내 게으름의 대표적 행위인 영화 - 아...........왜 이리 이 태만은 끊어지지 않는지?-를

또 늦게까지.........

그리고는 주일 예배.

 내 게으름에 비해 많은 은혜와 깨달음 허락하신 예배.

저녁에 돌아와서 역시 한차례 수영을 했다.

이 수영이라는 거.. 참 좋은 운동이다.

전신 운동이 되는 데다가 물속에서 하기에 상당히 개운하고

심폐에 도움이 된다.

 처음에 흐르는 과정 중에 눈에 띈 장애인 복지관에서 시작한 시간 때우기식 수영이

이제는 자유형으로 30바퀴를 비교적 속도내어 수영을 해도

지치지를 않는다.

자신감이 솟는 느낌이다.

그래서 거의 매일 틈 만 나면 수영장으로 직행한다.

어쨋든 내 휴가는 게으름과 육신의 운동을 빼먹지는 안했지만

 책도 읽기는 했다.

저녁에 아내가 발이 시렵다 한다.

이불을 가져다가 덮어주고 TV를 보면서

한참을 문질러 주니 땀이 나는게 느껴지면서 편하다 한다.

대화도 많이 했다.

따스하다.

 

 휴가 동안,

특별한 이벤트도 , 재미도 없었지만

그냥 편안~했다.

그런데 그 편안함이 육신의 편안함에 국한 된 것은 아니던가?

아내를 위하여 내가 하지 않던 행위들 - 설겆이는 오랫만이다. ^^* , 

발 문질러주기, 추운 겨울에 난방을 하고 발을 이불 속에 집어 넣고 아내의 발 문질러 주기 ... 등-  쑥스러워 할 생각조차 하지 않던 행위들을 해내는 내가 스스로 자랑스러운 것은 아닌가?

심리적 안정 말이다.

 어쩌면 오늘, 어제, 엊 그제.. 연달아 나오는 '서원'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에 대하여 마음이 부담스러운 듯하여

나도 모르게 휴가를 핑계로 '묵상'을 멀리 했던 탓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운 면이 없지 않다.

그런데, 그게 영적인 깨우치심에 대한 긍정적인 부담이던가?

아니면 내 심리적 불안감 - 무엇인가 늘 터질 것 만 같고

어떤 것인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옳지 않은 것에 대한 - 인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묵상을 대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드린 땅,

바친 물건.

서원한 것에 대하여 계속 나온다.

 

난 지난 인생을 돌아보아도

요 며칠의 휴식기간을 통해서도

온전히 드린 것이 없는 듯하다.

 뜨거움에 있어서 이전보다 많이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열렬함을 지금껏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았던 것이다.

 기도해 볼 일이다.

내 지금의 소 시민적이고 별 변화없는 일상의 삶이

주님이 그처럼 온전히 드리고 서원하시기를 바라는데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적용

 

1. 기도 해본다

 .  난 너무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의 그럭저럭 편안함에 만족하여 적당한 만족에 머무는 것은 아니던가?

 . 혹시 괜한 불안감은 아닌가?

   주님이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것도 아닌데 안절 부절 못하는 것은 아닌가?
  . 혹시 주님이 무엇을 헌신하길 바라시는가?

 

2. 게으름을 회개한다.

 쉼은 감사하고 여유도 감사한다.

 맘껏 누리는 안식은 필요하지만

 그게 하나님의 말씀을 게을리 하게 했음은 회개한다.

 

3. 성경 세장 읽겠다.

 

4.  영화 멀리한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그냥 가만히 있음이 영성인지요.

아니면 게으름인지요?

과거의 그처럼 열렬함이 사라져 감이

굴곡이 줄어듦인지요.

아니면 멍해진 것인지요..?

실은 그 마져도 큰 흔들림이 없으니 구분이 가지 않기도 합니다.

주님.

오늘 말씀하시는 레위기의 마치는 말씀이

드리길 결단하고

바치길 결심하는 자 되기를 바라시는 말씀은 아니신지요?

나에게 조금더 열심을 보이길 원하시는 것은 아니신지요?

열심이라면 어떤 것이신지요?

주님 ..

내적인 열렬한 싸움을 더 열심히 하라시는 것이신지요?

게으름, 교만, 포악.........

아직도 기름찌기 처럼 내 영혼의 내면에 남아 있는

그것들을 대적할 결심을 말하시는 것이신지요?

주님 기도합니다.

회개할 것 있으면 회개 시키시고

받아들일 것 있으면 받아 들이게 하소서.

주님.

귀하신 주님.

말씀 만이 내 영혼의 흐름이 되심을 선택하고 선언합니다.

다시금 그러하나이다.

부디 주님 제 강팍한 성품이 주님의 뜻을 앞서지 않게 하시고

그렇다고 안주하지도 않게 하소서.

주님.

그리고 간절히 비옵는 것은

어려울 때 오히려 더욱 더 주셨던 풍성함이

편안하고 차분함으로서 줄어들지 않게 하시고

그것이 영적 차분함과 게으름과 구분이 되게 하시고

흔들림보다는 깨우침과 깨달음을 허락하소서.

말씀으로 더욱 더 가까이 가게 하시고

오늘 하루 종일 주의하게 하소서.

말씀을 잊지 않게 하시고

지혜를 주소서.

제 아들 아크도 그리하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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