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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에 고개 숙일 때(레 26:14-26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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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에 고개 숙일 때(레 26:14-26 )

주하인 2010. 12. 2. 10:53

제 26 장 ( Chapter 26, Leviticus )

주님의 사랑 안에서

이렇게

고개 숙이는 자 되게 하소서

 

주님의 따스함 안에서

이토록

평강의 고요함을 누리게 하소서

 

내 삶은

주님이 아니고는

의미가 있질 않습니다

 

그게

사랑스럽습니다

그런 내가

자랑스럽습니다

 


18.  너희가 그렇게 되어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면 너희 죄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칠배나 더 징치할지라
 

 ' 청종치 아니하면.' 이라는 말씀이 몇차례나 되풀이 된다.

 ' 규례를 멸시한다.'

 ' 거부한다.'... 고 하신다.

 

나.

그런 적이 얼마나 되던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시작한 이후에는 최소한

내 의지적으로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는 많은 괴로움과 몸부림,

그에 따른 정화로 인하여 점차로 회복이 되오며

내 모르는 실수, 어쩔 수 없는 죄는 고백을 할 수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적'으로 멸시하거나 거부한 적은 없다.

그런데, 오늘은 계속 이런 메시지시다.

과연 그렇다면 오늘의 말씀이 나랑 상관없는 말씀이시던가?

아니지 않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어이 없는 추정이다.

아니면 내가 나도 모르는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하시는 그런 유형의 '죄'가 있지 않던가?

 


19.  내가 너희의 세력을 인한 교만을 꺾고 너희 하늘로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으로 놋과 같게 하리니 

 '교만'

혹여, 내가 아무 죄도 없다 단언하는 것은 그런 유형의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게 문제다.

내 자부하는 것이 '긍정적 변화'에 의한 감사의 표현이던가?

아니면 '교만'이 슬슬 일어나는 것이던가?
그러나 고민할 필요는 없다.

 말씀에서 '교만'에 대하여 말씀하시니

내가 알지 못하는 교만이 있을 터이고

자부하는 문제에 대하여 그것이 교만인지는

말씀 앞에 섰지만 부담이 없다는 사실로 보아 그것은 긍정적 변화임이다.

 

그렇다면 '교만',

그냥 방치하면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엄하게 질타하시는

그 정도의 죄까지 올라갈, 무서운 교만의 영향은 어떤 것이던가?

 

 

의사.

의사는 며칠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묘한 위치에 서 있다.

그때는 '경제적' 사회적 관점에서의 현재의 의사에 대한

일반인 들의 태도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면

오늘은 책임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그 어려움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의사들이 수련 받아야 하는 기간은 정말 길다.

초등학교를 거쳐 6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인턴 1년 , 레지던트 3-4년 (산부인과는 4년),

그리고 전문의 시험을 거쳐서 전문의 획득하는데

유치원의 기간을 빼고도 23년 이상을 공부하고도

최근에는 의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기에 세부 전문의 과정을

더 거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대학병원에서 전문의 이후에 fellow라는 제도를 거쳐 subspecial로

최소 1년 - 3년 정도의 과정을 밟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거의 30여년을 공부하는 데 매진한다.

 그런데 그 공부하는 양이 '일반인'이 상상하는 이상의 양이다.

나,  수십년전에 대학을 다니며 컴이란 것이 대중화 되지 않던 시절

대학노트 한권이 수일이면 한과목에서 소진 될 정도로 공부양이 어마어마 했다.

지금 돌이키면 그 엄청난 공부를 버텨나온 것이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럼에도 진료의 현장에서 나오면

아직도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으니

이 얼마나 '사람의 목숨'을 하나님께 위임 받아 손을 빌려 드려야 하는

의사의 업무가 중차대하던 말인가?

 그래도 나이가 들어가고 시간이 지나 경험이 쌓이게 되면

많은 부분 '길'이 보인다.

아..

'저렇게 말하는 분들은 저렇게 치료하면 되겠구나' 하는 길이 보이고

그것은 대부분 좋은 결과로 나온다.

그러한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패착이 있었을 것인가?

 나 또한 지금의 내가 있기 위해서

환우로 인하여 아주 많은 고민과 불면의 밤을 지새 나왔다.

하나님의 손길,

기도할 그 분.

받아 주시는 그 분이 안계셨다면

이 약한 신경끈을 가진 '주모'가 견뎌나올 수가 없었다 . ^^;;

그 과정에서 겪은 가슴 앓이는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제는 동일한 과정을 겪게 되면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되면 어떻게 될 것이다.'라 생각이 된다.

 문제는 이것이다.

이런 어떤 면에서의 '경험에 의한 여유로움'은

다른 면에서 '교만'의 소지가 될 위험성이 큰 것이다.

나름 얻은 노하우가 나도 모르는 '죄'의 위험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일 전 '너무 독특하고 희귀한 질병' 환우를 치료한 후

지금은 비록 잘 회복되고 있어가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면서 '발열'이 이유없이 생기고 경과에 맞지 않게 지속되는 환우,

생각과 다른 심한 위장 장해가 동반된 환우,

희귀한 경우의 환우를 수술 중 잘 캐취하여 외과에 옮겼는데

오히려 '의심'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올라오는 마음의 부담감.

 갑자기 '서너 건'의 걸리는 문제들이 마음을 조여온다.

그래도 마음이 많이 흔들리지는 않지만 '이유가 왜일까 '싶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아내의 기도는 잘 들어 주신다.

어려운 환자는 잘 해결되어 가는 것도 그녀의 기도 탓일 것이 확실하다. ^^*

할렐루야.

 그 아내가 나에게 어제 그런다.

'여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한게 없나 기도해보세요'

내가 그랬을까 생각하면서도 '그래요' 했다.

오늘 오니 묵상에서 계속 심한 죄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일곱배나 더 심하게 괴롭게 하실 것임을 말씀하시며

강한 징죄를 말씀하시며 사이 사이 되풀이 하여 말씀하신다.

' 청종 치 않은 죄' .

내가 무엇을 청종치 않했을까?

수술 하면서 '기도 ' 열심히 하고 시작했고...

....

...

 

그래..

 

더 의지 하지는 않았다.

어느새인가 난 내 방법대로 마구 마구 멋지게 수술 하려 했던 게 맞다.

환우 들에게 수술 승락서를 받으면서도 멋진 방법으로 미사여구로

내 잘하는 수술을 드러내며

주님의 영광은 단 한차례도 드러내드리지 않았다.

그게 맞다.

나.

교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앞을 가리고 있었다.

어느새 ' 신앙적 행위'에는 나름대로 충실하게 하였지만

주님을 진심으로 올려드리진 못했다.

내 잘난 맛을 위해 주님의 이름을 나도 모르게 이용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한번 씩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내 입은 교만을 달렸다.

그것을 '청종'하지 못하는 나..라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제 .

더 겸손해야 겠다.

더 진중해야 겠고

더욱 고개를 숙여야 겠다.

하나하나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내야 한다.

지금도 외래에서 진찰 할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지만

더욱 깊이 마음을 다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겟다.

시간을 지체하거나 시간을 가리지 말고 전도의 말씀을 다해야 한다.

주님.

요 며칠 약간의 곤란으로 허락하시는

나에 대한 깨닫게 하시기 위한 징죄의 표적들,

환우들의 약간의 문제들을 통하여

나는 더욱 겸손하고 모든 매사에 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의술과 마음을 다하는 자 되어야 겠다.

 

 

적용

1. 기도한다.

 환우들의 안정을 위하여 기도한다.

 나의 교만으로 인하여 해 입지 않으시도록 그러한다.

 

2. 회개 기도한다.

 환우들 앞에서 교만하였던 내 모습을 회개한다.

 하나님 앞에서 그러했던 내 죄를 회개한다.

 주님 다 받아 주실 줄 믿고 회개한다.

 

3. 나를 위해 기도한다.

 주님 영광을 위해 매사를 사는 내가 되길 기도한다.

 주님의 눈에서 발견되는 내가 되길 기도한다.

 

 어제 늦게 수술 마치고 수영장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유모차의 애기를 보며

 타는 내가 눈을 맞추고 뭐라 했더니 아기는 아주 아주 화사한 얼굴로

 나에게 뭐라 뭐라 하며 기뻐한다.

 아기는 내 눈의 자기 아름다움을 기뻐하는 것이다.

 난 , 예수님 ... 날 위해 십자가 오르신 그 분의 그 깊은 사랑의 눈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 원한다.

 그래서 그 아기의 그 놀라운 감동의 몸짓이

 내 영혼의 터져나오는 기쁨이 되길 원한다.

 그런 내 모습이 '새 내 모습' 임을 내 영혼의 자아상이 채워가길 원한다.

  

 

4. 성경 세장 읽으리라

 말씀은 내 영혼의 끈이다.

 주님 말씀이 끊어지면 내 영혼은 죽는다.

 

5. 겸손하자.

 고개 숙이자.

 환우에게 그리하자 .

 더욱 하나님을 드러내자.

나는 죽고 하나님만 살아나게 하여 드리자.

 

기도

 

주님.

그렇습니다.

주님 말씀이 제 영혼의 양식이고 깨달음의 원리입니다.

내 평온의 기초고 내 도움이심입니다.

주님.

제가 교만했습니다.

저로 깨닫게 하기 위하여 저리 돌려서 강하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뜻에 감사합니다.

그 사랑에 감읍합니다.

주님.

제가 교만했습니다.

절 용서하소서.

제 깨닫지 못했던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제가 그래도 절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의 그 극진한 사랑 안에서

주님의 눈 안에서 발견 되는 제가 되게 하소서.

제 자아상이 주님의 덕으로 인하여 온전히 펴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교만보다는 감사의 기쁨으로 숙여지는 겸손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환우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움 겪지 않도록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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