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하나님 때문에(잠8:22-36) 본문

구약 QT

하나님 때문에(잠8:22-36)

주하인 2015. 5. 16. 09:31

 

 

 
33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훈계'

그리 달콤하지 않은 소리.

아니... 특별히 나 뿐 아니라 지금의 세대는

더 이상의 위 사람의 올바로 인도하고픈 의욕에서 출발한

그들을 향한 훈계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 그래봐라.

'아저씨가.... 뭔데.. ' 하며 눈을 부라리지 않을까?ㅠ.ㅠ;;

 

 나.

생각만 해도 속에서 울컥 하는 그 무엇이 올라 오려 한다 .

훈계를 받는 다는 생각은

일단 그 주체가 나보다 높은 위치에서 나를 내려다 보는 것이니

내 잘못을 지적 받는 것..

그리 마음이 좋지 않다 .

 

그런데.. 성경에서는

미련한 자에게는 훈계를 하면 모욕을 당할 것이나

지혜로운 자에게 훈계는 발전이 될 것이라고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

 

당연히 귀에 쓰고 입에 달콤치 않은 게 '약'이긴 하다.

일단, 이 땅에 육신을 입고 태어났다는 것은

'원죄'의 죄를 가지고 시작한다는 의미고

우리는 '죄인'의 운명이란 이야기다.

그리고 그 원죄의 본능에서 파생되는 '자범죄'로

얼마나 많은 심적, 실제적 죄를 지고 살았던가?

죄는 무엇인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멀리 떨어지게 하는 조건들 아닌가?

 

훈계.

이제는 그 훈계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 이신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 ^^;;

그래서 '훈계'를 받을 때

그 상대가 누구이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훈계'이심을 ..

예수님의 또다른 모습이심을 인식하면

더 이상 '훈계'는 속상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

아프지만 고쳐야 될 오류.

나를 보는 자들의 객관적 시야라 생각하고

하나님 때문에...

받아 들이고 인정하고

영혼에 기도로 묻으면

그거.. 발전의 시초가 아닐까?

 

그게 '지혜'다.

하나님 때문에 '훈계'를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마음이 넓어지고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면

그게 바로 지혜가 맞다.

 

 

34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기다리는 것'

 

나.. 참 싫어한다.

기다리는 중에 늘... 내 속에서는 가장 나쁜 결과를 예상하며

가슴 졸이는 일이 많아서 였다.

그래서 성격이 더 급하다 .

빨리.. 좋던 나쁘던 결과를 보아야

기다리며 겪을 심적 고문 ^^;;을 겪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 곁에서, 문 설주 옆에서 기다리라 신다.

기다리고 훈계를 참아 받아 들이고

그 모든게 '하나님 때문에'라는 전제로 시행되면

진정한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

 

나.

이 땅 살면서

주님 부르시기 전까지

제발 저리 지혜를 이룰 수 있길 바란다

 

 어제는 '노인복지회관'에 '강의'하러 나갔다 온 후

늦게 올라와 '하기오스' 찬양팀에 섰다.

 

내 이름 .

그 이름을 제대로 먼저 각인 시킬 방법을 찾다가

'노래'를 잘하는 '명창'이나 가야금 병창이

어릴 적 별명이던 바

그거에 맞추어 '교회의 노인대학'에서 '가요'를 불러주면 좋아하신다는 이야기를

주위 집사님들에게서 듣던차

먼저 '강의 '전' 내 소개 하기 위하여

'남행열차' .. (찬양 이외의 다른 노래는 거의 안했었는데.. %^&*).. 불러드리니

열화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내 주제는 ' 건강하게 나이들기' 고

그러기 위하여 ' 영육혼'의 전인적 건강에 대하여 이해를 시킨 후

조목조목 ' 소주제'들로

연세가 드시면서 생길수 있는 질환에 대한

포인트 만 짚어 들였다.

그리고 내 진료실에서 생기던 '예화'들로 구석구석 메워가며

결론을 내어 드렸다.

그들이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영'의 건강에 '교회, 기도'... ' 했다.

어찌되었던.. 난 주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었으니...

그들 중 얼마는 내 소리에 반응이 있는 영혼을 소유하고 있을 거란 믿음.

그리고 거기까지가 내 분량.

 

 강의를 마치고 또 한번 노래 해달래서

'애수의 소야곡'을 마지막으로 내려오는 데

할머니 팬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ㅎㅎ

서울로 수술하러 가려했는데 내게 오신다는 분..

골다공증에 대하여 열심히 물어보시는 분... 정신이 없었다.

직원들.

모두 나에게 ' 처음 듣는 강의 입니다.  더구나 이렇게 노래를... "한다.

 

나.

내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던가?

난.. 무대 공포증이 있던 사람이고

대인 공포증도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십몇년..

예수님 영접한 근 20년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내게 서서히 변화가 온 결과가 아닌가 싶었다.

하나님의 훈계를 들어

서서히 내 안에 이루어진 '선한 변화'의 결과.

그것을 확인함...^^*

 

이곳 충주에 와서

공공의료에 투자하는 병원의 정책상

두려움이 컸지만 '강의'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응하기로

하나님께서 자연스레이 내맘을 인도하셨고

난 두려움을 기도로 내려놓으며

하나씩 내 안에서 인사이트로 떠오르는 개념들을 정리하였고

이전에 '감성 스피치'라는 책 (김미경 저)을 인터넷에서 다시한번

요약 정리된 것 다운 받아

내 강의 방법의 핵심을 정리했을 뿐이다.

 

그거.

어찌 생각하면 (만일 10여년 , 아니 2년 전 까지의 내가 지금의 나를 생각하면 )

'강의하라..'라는 주문이

이곳 충주에서 잇을 것을 알았던 상태라면

아주 많이 두려워하며 오지 않으려 몸부림쳤을지 모르고

절대로 강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거.. '훈계'에 맞추어 보아도 일맥상통한다.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자연스레이 발전할 것임을

체험하여 알지 못한다면

미리 '좋은 일' , 발전 시킬일을 아는 사람이

아무 것도 모르고 경험하지 못한

지혜롭지 못한 자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면

아주 싫어할 것이다 .

오히려 반발하고 싸우려 들 것이다.

 

나.

입장 바꾸어 나보다 못한 자라 생각하는 자가

나에게 '이게 틀렸고 저게 맞으니 이렇게 저렇게 하라'면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이제는 가능할 거 같다.

위의 생각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두 내 인생의 선함을 위하여 허락되어진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매사에...

 

하지만 현실은 아직도 아니다.

내 속에 거만함과 교만함, 그리고 타인을 무시하는

더러운 생각들이

날 먼저 '죄의 종'으로 만들어 갈려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삶은

매사매사 '선택'의 순간들이다 .

그 멋진 것이

더 빨리 이루어져

하루라도 먼져 ' 성화'가 이루어져 가

소천하여 주님의 백보좌 심판대에서 덜 혼나게 되길

나.. 진정으로 바란다.

 

 

주여.

제게는 두가지 깊은 골이 있었습니다.

깊은 열등감의 골과

상대적으로 비례하여 깊은 자만감의 골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아주 아주 많이 옅어지고 있으나

아직도 교만감이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나옵니다.

특별히 '찬양'이나 '감성'의 부분에 들어가면

찌르고 들어오는

못하며 인식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거부감이 찌릅니다.

그거..

내 상태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난...얼마나 거친 자일까 거부감이 들까 걱정이 들면서도

마음을 휘몰아가는 생각들이 아직 있습니다.

 

그래서 '훈계'를 받는다는 것

'감히 그들이.. '하면서

먼저 거부하고 보는 습관이 있는 듯도 하고요.

주여.

많이 애쓰고는 있으나

오늘 말씀에 기다리고 귀기울이라시니

더욱 그래야 겠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말씀으로

모든 사람들의 훈계를 받아 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세와

긴장된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 때마다 선한 선택을 함으로

'주의 종'으로 한 걸음 더 성장하는 경험을

제게 허락하소서.

내 주여.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하오니

우리 주께서 보호하고 감싸소서.

어제 말씀처럼

간절히 기도합니다.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에서 입까지[잠10:1-17]  (0) 2015.05.18
오늘의 지혜[잠9:1-18]   (0) 2015.05.17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잠8:1-21]   (0) 2015.05.15
그래도 아들이다(잠7:10-27)  (0) 2015.05.14
어리석음에 대하여[잠7:1-9]  (0) 2015.05.1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