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하나님 나라의 떡 맛(天國餠味) [눅14:15-24] 본문
어떠할까
과연
하나님 나라에서 먹는 떡은
그냥
환희 뿐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
이내 적은 가슴
이 부족한 상상력으로는
그려낼 수 조차없던
그 어떤 것일까
과연
얼마나 통쾌할까
모든 것 이룬 후의
씻기는 땀의 개운함은
이땅
이곳에서 흘리는 땀의 댓가도
그 기쁨의 기억을 못잊어
어려움을 감내케 하는데
하물며
이곳이 그 나라
하나님 계신 그곳의 그림자 일뿐이라면
과연
그 진정한 감각의 헤아릴 수 없는
황홀함은
어떻게나 비유하여 볼까나
나 그래서
이 부족한 자
이 개념 없는 자의
이 부질없이 밀고 나오는
강한 죄의 욕심을 제지할
그 진정한 개념을
어찌해야 붙들고
털썩 무릎꿇고
다 무장해제하며
오 주여
오 성령이시여
그 나라
그 떡의 그 완전함을 위하여
이길 의욕을 허락하소서
그 당위성을 제게 주소서
나 그럴수 있을까
주여
제발 날
도우소서
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그림이 그려진다.
누군가 열심히 말을 하고 있고
배가 고파 먹는데 집중하던 그 사람의 귀를 스치며
어떤 소리가 들려오고
왜인지 모르게 문득 그 소리에 머리가 띵하는 느낌이 스치며
밥 (ㅎㅎ.. 난 국수를 먹는 사람이 연상이 된다.. 뜬금없이 ..) 을 먹던 숟갈을 들은채로
불현듯 그 사람에게 물어본다.
아니.. 어쩌면 왜인지 모를 감탄사 (정말 자기도 왜인지 모르면서..) 를 발하면서
말 참견을 하고 싶은 situation이 성립되엇지 않을까?
그 말을 하고 있던 분이 '예수님'이고
그 참견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 하나님 나라에서 먹는 떡'에 대한 것이고
그것이 마치 그가 잘 이해가 되었다는 것 처럼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이 있을 거다.. 정말 ~!' 하고 참견하게 되는 상황..
왜 그럴까?
나.. 자주 인싸이트 (Insight ), 순간적인 깨달음... 이라 표현하는데
'영적인 터치'에 의하여 마음까지 깨달음이 내려오는 상태가 아닐런가?
솔직히 보라.
아무 뜬금없는 상황이
이 성경의 귀중한 한 줄을 차지하고 있다.
왜 그럴까?
묵상하면서 이런 희한한 부분들에서 난 많은 영적 원리를 느낀다.
도저히 내 머리로는 잡아내지 못하던 부분들을
하나님의 원리로 이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나서 보이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저런 상황을 저런 한줄에 넣어 놓으시고
수천년을 내려오는 많은 사람들의 스쳐지나감을 거쳐
나에게 이 시간 들려주고 싶으신 말씀..
저 분의 말을 들어가며
턱하고 머리로 들어오는 논리의 풀어짐은 없다.
단지 그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렴풋이..
난.. 이럴 때 이전에 , 조금 더 지금보다 열렬히 묵상을 하려 노력할때는
사진을 들추곤 하면
반드시 그 느낌과 들어맞는 사진이 따근하게 들어앉아 있고
그것을 집어 내놓기만 하면
나머지 글은 .. 주님이 다 쓰셔서
묵상시처럼.. 그렇게 그렇게 이어져 내려왔다.
정말 회개했다.
내 부족한,,, 한계.
참으로 솔직히 고백해오는 블로그지만
도저히 죄스러워 고백하지 못하고 고민만하는.. 그런 ...
그 죄를 집어서 회개하려 노력했다.
그러니.. 회개할 것이 더 깨달아진다.
진정한 죄..
어쩔수 없는 .. 이 아닌 변명할 수없을 죄.
말씀을 묵상함을 놓치고도 (바쁘다는 핑계로.. )
간혹 진행하는 묵상 마져 감동이나 느껴지는 성령의 전율 같은 것은
하등 찾아 볼수 없이
논리의 짜맞춤으로 진행하는 게 나름 오래 되었다.
죄송하다.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것이 아닌데..
오늘 묵상 구절은
자다깨다.. 새벽에도 들여다 보고
바쁜 일상 가운데 (수술 두분 했다... 바쁜게 좋다. . 머리를 놓을 수 있어서..)
정말 억지로 들여다 본 (게을러서) 구절이 도저히 가슴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집에 퇴근하고 와서 운동을 갈려 했더니
마침 쉬는 월요일이라 게으른 내 본성이 기뻐함을 느끼며
얼른 방으로 들어와 앉았다.
차도 마시고 커피도 또 마시고
겨우 힘을 내 묵상을 해야할 것 같은 의무감에
회개를 힘써 하고
말씀을 들여 다 보았다.
위의 저런 느낌이 모호하게 느껴진다.
중국집에 앉아서 짜장면이라도 먹으면서
마침 벌어진 큰 이바구 터..죄송..ㅠ,ㅠ;; .. 에 넋을 놓다가 자기도 모르게
무엇인가에 끌려 말을 내놓고 마는 현상.
그러면서 다른 장면으로 예수님의 주도된 장면으로 이어지지만
저 상황이 참.. 느껴지는 바가 많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먹는 떡"
그 떡은 얼마나 대단할까?
정말 대단할까?
대단한게 다 일까?
대단하다면 어떤 식으로 대단할까?
신비로운 맛일까?
달콤하기가 그지 없을까?
먹으면 만화의 주인공들이 '전기에 감전되는 듯한 ' 모습의 그런 감전이 올까?
어떤 감촉일까?
겨우 내가 이 땅에서 체험하고 깨달은 맛, 세상의 감미료의 중복조합으로 또 그렇듯 감미료 같은 맛일까?
어렷을적 자다 일어나 처음 먹은 '햄' 맛일까?
피자라는 것을 처음 접촉하고 얻은 그 묘한 맛일까?
환상 속으로 빠져 들어가 온 우주를 떠도는 엑스터시 일까?
...............................
순간적으로 상상이 되는 생각들이다.
그러니 그 사람이 그렇듯 자신도 모르게 '야..' 하며 소리를 발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우선 생각되어지는 떡의 맛은
떡 계통의 맛이라기 보다는
땀을 흘리고 먹는 그 시원함의 수천배 감동이 아닐까?
최소한 육신을 입고 먹는 맛의 감동이 곧 싫증 나지만
그러한 것이 아닐게다.
아마도 '넋을 잃게 하는 감동'일 것이고
아무리 평안해도 곧 닥칠 위기의 불안에 , 죽음의 운명에 대한 영적 감지에
온전한 평안이 없을 이 땅과는 너무도 다른 '평안, 평강의 맛'일게다.
위로할자 , 위로 받을 곳 하나 없어
오직 하나님 만 바라 볼 수 밖에 없어
그 분을 열렬히 따르지만
이 육신, 이 마음의 상처가 컸던 탓으로
기대되고 그려는 지되 체험 할 수 없었던 온전 한 '쉼'의 맛은 아닐런가?
............
아무리 상상하고 그려볼래도 그려질 수 없다.
하지만 내 가슴은 느끼고
사진을 올리고 나도 모르게 글을 쓰는 동안
아주 아주 조금.. 느껴지는 듯하다.
그 사람이 공감이 되어진다.
조금은 더 정확히..
하나님 나라의 떡 맛(天國餠味) !
이때 난 가슴이 두근 거린다.
성령이 만지심을 느낀다.
이런 말씀의 묵상이 점차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잠자는 것 조차 아까워
아침에 따르릉 울리는 여섯시 벨소리에 벌떡 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자부심'이나'의무감'이 아니고
아련한 그리움이고
생명이 채워지는 '생기'의 느낌이 연속임을 난 알지 않는가?
그것이 잊혀지지 않고 매사에 기억나
그러지 않고는 어찌할 수 없을 있다면...
아.. 하나님 나라의 떡 맛(天國餠味) ..
그 맛이 어떤지 조금은 정리되는 듯하다.
내 느낌의 수천 수만배로 영생을 살아가는 영생의 에너지..
감사하다.
주님.
귀하신 내 주님.
하루가 세시간 밖에 남지 않은 이 시간에
천국의 떡에 대하여
짜장면 먹다가 덜컥 씹던 입을 멈추고
'아.. 하나님 나라의 떡 맛(天國餠味) ' 하고 외치는 자의
그 심사가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기도하고 기다렸더니
이 늦은 시간에..
정말 주님.. 죄송하지만 그 마져 사랑하시어 허락하시는
기쁨의 증거를 또 보이십니다.
이 죄덩어리 죄인.. .
이 미련하기가 말도 못하는 죄인..
말씀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되어지지만
가장 기본적인 말씀 마져 지키지 못하는 ... 이 이율 배반적,.. 의지박약아에게
그런 사랑을 비치시다니요..
정말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까지이신지요..
눈물이 맺히려 합니다.
감사해서요.
이 천국의 떡에 대한 비밀이 가슴에 조금은 느껴지게 하는데
하필이면 그게 가장 죄송스러울 때이어서요..............
우리 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
아니 이 머리 복잡하고
가슴 혼란스러운 자의 심사로는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
고백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제 생각과 아무 상관없이
저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무조건 사랑,
부조건 살아계심
무조건 전능하심을 믿어지니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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