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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막아서는 것들(눅18:15-3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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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막아서는 것들(눅18:15-30)

주하인 2012. 3. 17. 09:04

(눅18:15-30)

 

하늘은

저렇게도

넓고 탁트였거늘

 

십자가가

 저 멀리에

아련히도 보이거늘

 

왜 이 내맘은

이리도

막아서는 것이 많기도 한지

 

다시금

아이의 마음같은

그 순전함을

회복하길 소원해봅니다


 

 

1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 나라.

아이 같은 '순수하고 간절한 사모' 가 필요하다.

 

돌아본다.

나.

하나님 나라... 생각하면 혹시 우스운 느낌은 들지 않나?

다 큰 나이에...어린아이처럼..... 옛날이야기........하며...?

 

진정한 회복은

'아이'의 심령 같이 되는 것이다.

 

 

18.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래도 이 관리는 괜찮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인생'의 목적에 대하여 고민하고

'영생'을 사모할 줄 아는 자다.

 

 

23.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비록 그를 막아서는 '가시 나무 숲'인

이생의 막아섬들은 ' 재물'과 그 본질인

그를 통한 '욕심'이지만...

 

그래서  영생, 천국,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멀리만 느껴진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들어도

근심거리로만 머무는 것이

사실이 아니던가?

 

요 며칠 나에게 지속적으로

'하나님 나라'까지의 확장된 관심을 말씀하신다.

 

 

26.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그런데

위의 말씀은 ' 철저한 행동',

수도자들 만이 갈 수 있는 길 같은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 속하는

'듣는 자들'이 물어본다.

 

듣는 자들..

복음을 듣고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는 알고는 있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는 하나

반신 반의 하는 자들..

 

나 또한

듣는 자들에 속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하나님 나라를 깊이 묵상하고

아이처럼 인정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27.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신다.

'예수님'을 통해서 '자격'만을 얻은 것이다.

그렇다고 처절한 행위로 인하여 깨끗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구원 받은 자들이)행위 만으로는 갈 수 있는 확률은

낙타 바늘 귀 통과 확률이다.

오직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내 자아를 내려 놓고

성령께 온전히 맡긴다는 것을 뜻한다.

 

나..

하나님 말씀 가운데 기쁨으로

나름 조절하며 열심을 다하다가

내 발에 걸려 넘어졌다.

어느새 내 자아가 하나님을 앞서고 있었다.

그러다가 안된다고 몸부림 치고 있었다.

이제 말씀 가운데 다시금 깨닫게 하신다.

'주하인 .. 너의 하나님 나라는 네가 진정 사모하더냐?

 사모한다면 혹 네가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던가?

이제는 조금 더 내려 놓아야 한다.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

아이처럼....' 하신다.

 

어제 목사님의 금요성령 집회 설교중

'하나님은 포도나무 가지요.. 우리는 매달린 열매' 를 본문으로 그러셨다.

' 정말 중요한 것은 'To be' 지 ' To do'  아니다'

맞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 나라' 자체 만 기뻐하기가 쉬운가?

매일 매일 다가오는 '일생의 걱정', 근심들이

내 오래된 상처입은 자아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자리에 자리잡고 막아서는

이 장해를 어찌 인식하고 올바로 주님 안에 '거하는 '

To be의 상태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단 말인가?

 

마음을 어린 아이와 같이 유지하려 하여야 한다.

그러면 어떤게 아이 같은 것인가?

 

 며칠전 14일, white day.

빼빼로 데이날 나름 간호사들에게 많은 쵸콜랫을 받았던 바..ㅎ

근처 Paris B.에서 최고싼 사탕 선물을 몇개 사서

아침 일찍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다들, 좋아한다.

괜한 상술에 의한 명절이긴 하지만

이게 '정'이긴 한가보다.

그런데 , 옆 진료실 간호사가 출근한 듯 하여

문을 열고 '사탕 박스'를 건네 주려는 데

요즈음 한참 나랑 인사를 주고 받기 시작하는 ^^*

6살 짜리 딸아이가 먼저 '톡'하고

내 눈 앞에 나타나 인사를 하는 거 아니던가?

이 녀석.

상당히 새침 떼기라서 내 방 간호사도 친해지는 데

한 달 이상 걸렸다는 녀석인데

제 엄마가 아침마다 근처 유치원데려다 주기 위해 데리고 나오는 터이다.

'그래..

 어차피 지 엄마 주려던건데..' 하면서

사탕을 덥썩하고 안겨 주어 버렸다.

 

 그런데 이때 부터가 나에게 놀라운 감동을 주었다.

아이.

그냥 새침한 표정으로 맞아주던 아이가

갑자기 얼굴이 화사해지면서

그 눈이 동공이 커지고

눈꼬리가 하늘로 가서 붙는듯

눈이 커지면서

입이 함박웃음으로 그득해진다.

그리고는 순간 마치, 넋을 잃은 것처럼 감동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아닌가?

난 아이가 이처럼 좋아할 줄은 몰라서

주면서 오히려 내가 감동했다

그래서, 얼른 주저 앉아서 두 팔을 벌려서

안기기를 종용 했다 ^^*

그리고는 '뽀뽀~' 하면서

한쪽 볼을 들이대려니

아이는 정신없이 다가와서 입맞춤을 해버리는 게 아닌가?

 아이의 첫순정을 이리 뺏었다. ^^;

아이는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빼앗기거나 위화감 조성할 것을 대비하여

엄마에게 맡기고 가라는 간청을 무시한채 ^.~

아주 소중히 안고 (아이의 몸에 비하여 상당히 큰..ㅎ) 상기된 얼굴로

유치원에 갔다.

저녁에 돌아올 때도 손가락 하나 안 댔다고 나에게 보고했다

다음 날 아침도...  집에서 먹지도 않고

높은데 보관했단다.ㅎㅎㅎ

 

 5천원 짜리 였다.

그렇게 적은 것에

그처럼 감동할 수 있는

아이의 그 순수함이

날 감동시켰다.

 

그랬다.

하나님은 저런 순수함을 회복하길

나에게 기대하시는 듯하다.

 

 하나님이 해주신 어떤 것이든

정말 기뻐할 수 있는 마음.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 자체 (To be)를 기대하고 기뻐하려는 순수함이

재물을 다 팔아 헌금하거나...........그 어떤 것보다

더 하나님 나라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것,

실은 하나님 나라 자체를 '아이의 사탕' 만큼 감동할 수 있는

그 마음의 열림이 중요하다.

 

 

토요일입니다.

주님.

제가 그랬습니다.

아무리 돌아 보아도

주님께 '제 행실'로서 제 노력으로 해드릴 께 없습니다.

너무 큰 막아섬이 있어서

그것을 빌미로

그것이 실제로

주님께 더 깊이 해드리는 어떤 영적인 상급의 행동을 막아섭니다.

주님.

저에겐 그게 '주님 자체' 만을 기뻐하려는 도구가 되기도

실은 핑계가 되기도 합니다.

많이 복잡합니다.

조금 만 정신을 놓으면

여지없이 제 자아가

순전한 하나님 나라를 잊게 하고

행실로 어떤 것을 해드리고 싶은

순서가 뒤바뀐 욕구가

나와 내 주위를 힘들게 했습니다.

주님.........온전히 성령님의 인도하심 만으로

이끌어져 가는

내 삶의 하나님 나라를 연출하고 싶지만

그 무력한 듯한 좌절,

내 의지를 놓고

내 자아를 놓고

내 주님께 잘해드리고 싶은 욕심을 놓고

내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향기를 세상에 보여주고픈 충동을 내려 놓고

하나님 뜻대로만 살아간다는 사실이

잘 혼동되고 혼합되고

진정 기뻐해야 할 일을

늙은 뒷방늙은이의 그것과 구분하지 못해

혼란해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옆방 간호사의 아이의 모습을 보고

그 아이의 감동스러운 천진함을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아이의 사탕보다 더 사모하겠습니다.

그 사탕같은 하나님 나라를

저에게 일러주소서.

그 마져도 저 혼자서는 되지 않으니

주님 성령께서 강렬히 깨닫게 하소서.

안되면 보이소서.

제발 간절히 빕니다.

어제 약속의 말씀처럼

이제 보이실 때이시니 보이소서.

저에게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갈망을 주소서.

아이의 순전함으로

세상의 흔들림과는 상관없는

고요한 믿음을 주소서.

가슴 떨리는 사모를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시여.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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