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예수님 지나가실 곳(눅19:1-10) 본문
(눅19:1-10)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자에게는
그가 '키'가 작고 단점과 결점 많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비교되어 열등감이 심히 많아
나갈 수 없을 것 만 같은 사람들도
다 나갈 수 있다.
그것을 제한하는 것은
본인이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무겁고 짐진 자들은
다 주님 앞에 가야 한다.
그래서 쉼을 얻어야 한다.
치유을 얻어야 한다.
이 아침..
더 자유로운 예수님의 품을 상기 시키신다.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삭개오는 그랬다.
그는 키가 작고
세상에서 지탄 받는 세리장이고
...
그런 그가..
그의 이미지에 맞게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갔다.
수년 전 삭개오의 부족한 부분을 묵상시키시던 바가 있었다.
오늘은
그가 '미리' 예수님이 지나가실 곳을 달려가서
어린 아이 처럼
자신의 못생긴 , 어른이면서 아이같은 자신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돌 무화과 나무에 올랐다.
예수께서 '지나가실 자리'를 예상하고 올랐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그러시니 '예수님께서 쳐다보셨다.'
그리고 '네 집에 유하겠다' 신다.
그렇다.
그게 정답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기 보다는
아이처럼 솔직하고 천진하게 인정하고 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진정하게 주님을 사모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주님은 그의 소소한 잘못,
그의 스스로의 왜곡된 이미지에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
단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주님이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는
그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다.
그런 자에게는 그리 말씀 하신다.
'속히 내려오라'
' 내가 오늘 !'
'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아멘 !
즐겁지 아니한가?
주님이 즐거워 하실 일을 미리 하니
'속히 내려오라' 신다.
'네 집' , 내 안에 머무신다하신다.
기대가 된다.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내가 할 일은 이것이다.
'즐거워 하고'
'급히 내려와야 한다.
주님은 '내 하는 일(to do) '보다 '내 존재 자체 (To be)'관심 가지신다 시지 않던가?
그 분은 나의 하는 일,
주님 앞에 미리 가실 길에 나아가
돌 무화과 나무에 올라가는 일 자체 보다는
그렇게 하기로 발상하는
그 , 삭개오의 천진한 마음을 기뻐하시는 것이시며
그 기뻐하심에 맞추어
'급히 내려와 즐거워 하며 영접하는 ' 그의 아이같은 천진함을
예상하셨던 것이다.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그렇다.
세상에 복잡한 일이 많다.
해결해야 할 일이 많고
가능치 않지만 해야할 것만 같은 일이 산더미다.
그러면서 나는 정말 부족한 것 같다.
주님의 성경 말씀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그 말씀을 들여다 보면
'난 도저히 해낼 수 없을 ' 높은 경지의 요구가 있으시다.
그래서 더욱 더 정결하고 착해야 할 것 만 같은데
난, 돌아보면 죄덩어리 결점덩이다.
삭개오보다 훨씬 못났고
그보다 훨씬 더 손가락질 받을 것이 많은 것 같다.
아침에 나오는 데 왜 그렇게들 운전을 경우없이 하는지..
진료실에는 왜 그렇게도 미련한 환우들이 많은지
어쩌면 자기들은 적은 댓가를 지불하면서 요구하는 것은 많은지..ㅜ.ㅜ;
자식들은 그렇게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지
아내는....................................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것을 생각하는 내가
하나님 말씀에 정말 합당치 못하게
'원수는 커녕,
아주 가까운 내 식구,
나를 먹여 살리는 손님들..
심지어는 '나' 자신 조차도 융화를 시키지 못하고 있다 '.
그런 나를 보면
난 정말 가치 없는 자 같고
미련한 자 같지만
그래도 이처럼 주님 기뻐하실 일 ,
매일 묵상으로 적용하는 노력을 계속하면
주님 오늘 특별히 내 안에 유하시는 경험을 시키신다신다.
내가 할일은
'예` 하면서 기쁘게
모든 '허위'를 벗고
믿고 기다리는 일 뿐인듯 하다.
기도
주님
저.
참 부족합니다.
어쩜 아직도 불뚝불뚝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지
주일날도,
아침 출근하는 날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주님 그래도 그런 스스로 추악해보이는
삭개오 같은 저에게도
찾아오셔서 유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어떻게 오실지,
오시면 어떤 체험이 될지 기대가 됩니다.
오늘 하루
주님 말씀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이 어이없는
지루한
인생에
하나님의 이처럼 어루만지심과 깨닫게 하심이 없었더면
어찌 살았을까.. 참 ..휴우 합니다.
들어오실
거하실
내 아버지 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예수님.
내 사랑하시는 이시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은 자연스러움을 원하신다(눅19:28-44) (0) | 2012.03.21 |
---|---|
알면서 모르는 것(눅19:11-27) (0) | 2012.03.20 |
하나님 나라를 막아서는 것들(눅18:15-30) (0) | 2012.03.17 |
지금이 기회다(눅18:1-14) (0) | 2012.03.16 |
내 하나님 나라(눅17:20-37) (0) | 2012.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