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알면서 모르는 것(눅19:11-27) 본문
(눅19:11-27)
16.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20.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6.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
상급 이야기.
그러면서도 자칫 오해 받기 쉬운 구절.
오해는 '열므나' 이야기가 오직 행실에 대한 것인 것으로 오인되는 것.
선교하고 전도의 숫자를 넓히고
교회 늘리고 봉사 많이 하고...........
그런데 꼭 그럴까?
모두가 목사고 모두가 선교사일까?
모두가 교회의 봉사자일까?
하나님 나라에서 칭찬 받는 사람들이?
열심히 행동하다가 속은 냉냉한 교인들은 얼마나 많을까?
과연 '자아의 만족'과 '신앙'과의 사이에서 구분이 쉬울까?
내가 하는 것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의 구분이 쉬울까?
그것 모두 '상급'으로 보아야 하는가?
실은 상급에 대한 것은
어떤 일보다는
어떤 일이든
그를 통하여 '하나님과 얼마나 더 ' 가까워졌고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광올렸나에 달려 있지 않을까?
수도자는 광야에서
급한 성질을 회개하는 나 같은 자는
일상에서 말씀 가운데 '성화'와 '성장의 노력'으로
..............
그러나, 실은 더 문제는 ' 알면서도 모르는 ' 현상이다.
무슨 말이던가?
산소는 생명에 필수적인 것을 누구든 알면서도
귀중한 것을 잊고 산다.
마찬가지로
누구든 오늘 말씀을 들어가면서 '달란트' 남기는 이유와
그 달란트를 주인 앞에 정산하는 것이
'천국' 앞 '백보좌 심판대'임을 알면서도
그 사실 자체를 잊어 버리고 산다는 것이다.
이 말씀 앞에 올 때마다
마음을 다 잡고 '그래'........하는 신실하려고 노력하는
많은 훌륭한 기독교인들 조차
'하나님 나라의 존재'에 대하여
신화 이상 기억하고 있거나
절절히도 천국을 사모하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
아니다.
최소한 나는 '미련히'도 그런다.
'생명의 삶' 큐티 하다가 매일 성경 묵상으로 바뀌면서
누가복음 묵상을 여러 차례 했지만
그때마다 다른 레마로 다가왔지만
요즘 묵상의 기본은
정말 중요한 기본에 대하여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시는 것이 느껴진다.
' 하나님 나라'에 갈때...에 대한 것이다ㅏ.
하나님 나라를 인정하는가?
하나님 나라에 갈때 어떤 태도가 되어야 할까?
하나님 나라는 나는 정말 기뻐하는가?
영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기대가 되어야 할까?
.........이다.
오늘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기억하고
그를 위해 이땅을 더 열심히 살아라'는 메시지시다.
더 신중히 살아야 하겠고
더 기쁘게 살아야 겠고
더 기대하며 희망과 소망 중에 살아야 겠다.
매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나 '구제'나 봉사.. 를 통해서 이룰 수 없다면
앉은 자리에서라도 주님의 말씀을 전하려 노력해야 하고
인격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그 모든 '행위의 근거'를 통하여
영적으로 순결해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 ,
주님 앞에 가기 전
네 상급을 보자실 하나님을 뵙기에 두렵지 않을 것만 같다.
적용
1. 성경 세장 읽자
2. 참자.
나를 부인하자.
나의 자아를 흔드는 모든 일들을 오히려 기뻐하자.
그것을 통하여 '상급 쌓자'
3. 기도하자.
4. 기뻐하자.
천국을 사모하자.
그 나라를 기억하자.
들어가기 위해 상급, 노잣돈 쌓자.
혼란한 것을 기뻐하자.
하나님 나라의 상급 쌓을 시간이다.
기도
주님.
겸손히 주님 만 바랄 수 있길 원합니다.
전.. 안됩니다.
자아 .. 혼자 두면 마구 기승을 부립니다.
내 원하는 것 .. 소리내어 하고 싶습니다.
내 이룬 것.. .이곳 저곳 공표하고 싶습니다.
내 안되는 것.. 몸부림 치고 성질 부려 알아달라 하고 싶습니다.
주님..
모두 쓸데 없는 자아의 장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내려 놓고
주님의 뜻대로 내 자아가 아픔을 겪는 것을
십자가 지듯 기뻐하는 것이
진정 상급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주님.
마음으로는 저도 멋진 '선교사'로 나가
주님의 일을 이루어 큰 성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러지 못하는 나도,
주님의 뜻으로 받아 들이고
그러할 나도
주님의 뜻가운데 내려놓고
가라시면 가고
서라시면 서는
내 자아 없는 자 되길 바랍니다.
세상의 흔드는 유혹들,
그것을 해야하는 지 모를 당혹감들...
다 주님 맡기려 합니다.
하나님 나라 생각해서 그렇게 되길 원합니다.
주님.
흐려지지 않게
주님 나라 간절히 사모하게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성령의 절절한 도우심으로 가능합니다.
예수 내 주시여.
감사하나이다.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이 주하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도와 성전 지기(눅19:45-20:8) (0) | 2012.03.22 |
---|---|
하나님은 자연스러움을 원하신다(눅19:28-44) (0) | 2012.03.21 |
예수님 지나가실 곳(눅19:1-10) (0) | 2012.03.19 |
하나님 나라를 막아서는 것들(눅18:15-30) (0) | 2012.03.17 |
지금이 기회다(눅18:1-14) (0) | 2012.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