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로( 눅 20:19-26) 본문
3월에
진한 눈이
여러차례 내렸습니다.
이 눈이
포근하고
분위기 있고
좋았지만
안 좋아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한사람에게
추억과 기쁨과 분위기가
다른 이에게는
고통이 될 수도 있단 생각입니다.
진료실 창문 밖으로
급히 서둘러 한장 찍었답니다.
제 20 장 ( Chapter 20, Luke )
19.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난
누구를 두려워 하는가?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20.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스스로 의인인체 하지만
스스로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막연히
옳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난 어떤가?
25.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구분이 참 힘들다.
세상에 속한 물질이 되
주님 것이 되기 위하여서는 어떻게 하는가?
십일조 감사헌금
그외 ...
확실히 구분할 것은 있지만
그 외 것은 다 맘대로 써도 되는가?
꼭 물질 에 국한 된 것일까?
노래라는 자체가 영감을 필요로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주님의 제사장 들이
양각 나팔을 불며 가장 앞서 나갔던 것처럼
주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이유도 있어서인지
부대끼는 무언가가 많이 느껴진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올라가거나
찬양 중 내 멋에 취하거나
사람 들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때
여지없이
흔들린다.
식은 땀이 주르르 흐를 때가 있고
목소리가 갈라지고
탁해지고 안나올 때도 많다.
그럴 때
순간 정신을 차려
'주님 죄송해요' 되뇌이면
금새~
정말 금새 좋아지는 체험을 너무도 많이 한다.
그래서
어느때
컨디션이 안좋고
며칠 세상의 일에 열심이다가
기도의 분량이 적었다거나 할 때
꾀가 나서
악보를 준비하지 않고
이전 것을 되풀이 하려 할 마음이 들때
'아차' 할 때가 있다.
이전에 얼마동안
편하기 위해
이전의 준비한 것으로 요령을 부리다가
무대가 두려워서 도망가고 싶었던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수요일 일찍 퇴근하는 날,
저녁 늦게까지
준비하고 기도하고 악보 및 ppt 파일 만들 때는
다음 날 여지없이
환자 분들의 반응이 뜨거웠었고
마음은 한없이 은혜로 충만해지는 경험을 했었다.
찬양 인도하는
기간이 점차 쌓여가며
난 나름 대로 정리해둔 원리가 있다.
'주님 앞을 가로 막지 말자'
'주님이 받아야할 영광을 대신 가로 막지 말자'
라는 개념이고
곡을 선곡할 때
'주님이 맘에 드시면 하세요'라는
짧은 화살 기도와 더불어 한다.
그리하고 나면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은혜의 곡이 눈에 뜨인다.
주님의 것을 내 것으로 돌리는가
주님의 것을 주님의 것으로 돌리는 가에 따라
그날 은혜의 폭이 달라진다.
점차로
돈 씀씀이가 적어진다.
찔러 주는 경우가
나도 모르게 생겼다.
이전에 하지 않던 행위다.
내 속이 이런데 이게 무슨 이중적인... 이라는
어두운 생각으로 사로잡혀 있던
세상의 세월 동안이다.ㅎㅎ
하나님의 것
가이샤의 것
막연하게 이해가 간다.
구분이 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선한 느낌으로 날 사로잡고
맑은 생각이 들때
순종하는 행동을 하면
놀라운 은혜가
내 심령을 사로 잡을 때가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닌가 한다 .
문제는
그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자들이다.
바리새인 같은 자들일 수도 있다.
이해하려 해도 잘 구분이 안갈 때가 있다.
주님 앞에
주님이 주시는 그 기쁨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으면
구분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며칠 전 부터
정신 없이 바쁘다.
목요일
당직하고
금요일 수술 하고
일찍 병원을 나서고나서
홍성까지 갔다 오고
오늘은
한시까지 진료하고
아버지 학교 가서
식후 찬양 인도하고
내일
있을 모 교회 인도를 위해
반주 맞춰 보기 위해 가서
연습하고
이제야 왔다.
아침에 묵상을 겨우겨우 진행하다가
이제야
마무리 하기 위해 왔다.
바쁜게
날위해 바쁘던가?
주님 위해 바빳던가?
실은
머리가 비어 있는 듯
아무 생각이 없다.
주님의 인도하심이라면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기대하지만
내 바쁨을 위한 바쁨이라면
또
어딘가 모를 부대낌이 있을 법도 한데
그냥
아무렇지 않다.
내일 있을 찬양 인도에
주님의 은혜가 넘쳐
항상 그렇듯
영혼의 지평이 넓게 펼쳐져
풍성한 영감이
물흐르듯이
내 속을
흘러 갔어도 좋으련만
어찌 된 일인지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
주님의 일인지
내 일인지
구분 해 보라고 하시는
뜻이신가?
겨우
오늘이 30분 남은 시간에
버겁게 들어와
마저 묵상을 마무리 하려한다.
주님
귀한 주님
은혜로 절 잡아 주소서.
주님의 것을
주님의 것으로 인지하고 인정하는
그런 영적인 깨어 있음으로 허락하소서.
지금까지
굴곡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끌어 오셨음처럼
앞으로도
그리하소서.
세상이 모조리 변해도
전 주님 만으로 기뻐하게 하소서.
주님 만으로 안타까워 하게 하소서.
주님을 위하여 살게 하소서.
주여.
내일은 타 교회에
찬양 인도하러 갑니다.
부디
간절히 비올 것은
그 자리가 제 영광의 자리가 되지 않게 하소서.
그들의 갈채를 기대하고
그들이 칭찬을 바라고
그들의 초롱한 눈빛을 기대하지 않게 하소서.
그냥
주님을 위해
그 자리에 가게 되었고
주님 만을 위해
입을 열어 노래 했음 만을 느끼게 하소서.
늘 주님 앞에 있음을 알게 하소서.
모든 영광 주의 것임을 알게 하소서.
내 하는 모든 것이
주님이 뜻 안에 있음을
입을 열어
전율하는 영혼을 드러내어
같이 노래하게 하소서.
주님 이외는
아무도 나에게 의미 없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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