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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예수 향기 그득한 포도원에 주님의 꽃을 피우길 원한다 (눅 20:9-18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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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예수 향기 그득한 포도원에 주님의 꽃을 피우길 원한다 (눅 20:9-18 )

주하인 2008. 3. 7. 10:07

제 20 장 ( Chapter 20, Luke )

 조금만

넋을 놓고 있으면

세상은 왜 이리 어둡게 보이는 지요.

어둡다 못해

짙은

포도주 빛  같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니

어디나

주님 뿐이었습니다.

무엇이나

주님의 뜻이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아 !

포도주 빛

물든 것은

주님의 십자가 탓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흘리신

그 보혈로

이 어둔 세상이

그리도 붉게 물들기를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제

어둠은

가리라 압니다.

 

어둠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영광을 위한

데코레이션일 뿐이었습니다.

 

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당신의

주신 그 포도원에서

놀라운 빛깔의

포도를 익혀내겠습니다.

주님이시여

당신이 허락하신

그 향기로

말입니다.

 


 

 

 

 


9.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3.  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많은 부분

특별히 경제적인 면에서

많은 부분을 내려놓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계약 문제로

마음이 흔들린다.

수년 간  

아예 맡겨 버리고

감사하는 훈련이 되어 있던 바

작년 전인치유 이후

환자 수의  증가와 더불어

나름대로 기대심이 있나부다.

고난이 유익이라고

주신 것도 감사라는

마음이 있어서

실은 오랫동안의 기다림의 연단동안

마음이 감사로 바뀐 것은

돌아본 큐티의 흔적에도

너무 뚜렷하고

내 삶이

날아갈 듯 가벼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서

지난 주 별로 생각하고 있지 않던

재 계약 문제 -^^;;-에 대한 메시지가 날아오며

은근히 기대가 높아지며

시간이 지날 수록 마음이 흔들린다.

 당직을 서면서도

낮아짐의 기쁨

그것을

주님께 영광돌리는 기도의 기쁨에 대하여

기도하고

나름대로 정리되었음에도

스치고 지나가는

속상함이 날 흔든다.

 

 포도원에 대하여..

주님께서  '만들어서' 맡겨놓고 갔다고 한다.

그게 뭘까?

그러면서 소출의 일부를 달라고 하는데

종을 괴롭히고

예수님으로 상징된

아드님을 죽이기 까지 한다고

비유에 나온다.

 

아침에 당직실에서 일찍 일어나

묵상한 구절은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듯한 이야기인듯

느껴졌다.

 

 하지만

스치고 지나가는

안정되지 못한 감정이 올라올 때

불현 듯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다.

 

 포도원.

주님은

날 위하여

오늘의 나를 마련해 주셨다.

그것이

객관적으로 온전한 대우든

낮은 처우든

그것은

나의 영적 육적인 울타리다.

육적으로는

내 삶을 지탱해주는 것이고

영적으로는

예수님 믿기 전

그리고

수년 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지평을 열어주신..

어찌 생각하면

날 지금 '천국'에 와있는

심령천국의 존재라고

흥분하며

은혜에 차서 외치던 게

바로 몇 시간 전이 아니던가?

 

 내 기쁜 존재감

 그게  나의 '포도원'은 아닌가?

나에게 허락하여 만들어주신 놀라운 소출의 장소.

  

당연히

난 소출을 그 분에게 드려야 한다.

그 소출은

일차원 적으로

십일조를 의미하지 만은 않는 것 같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기 위해

예수님을 못박아 죽인다는

개념은 옳게 보기 힘들 듯 싶다.

 

 이것인 것 같다.

그 놀라운 영적 육적 체험 가운데

또 다시

아주 적은- 물론 세상 사람들은 그게 다다. 돈 ! -  욕심으로 인하여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하나님 나라의 길에 올라갈 길을 마련하며

우리에게 성장하길 원하시는

그 길을

역류 시키는 것이니

그게 바로

주님을 또 한번 십자가에 못박는

그러한 죄는 아닌가?

물론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두가 똑같은 정도는 아니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주님과의 관계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한

그런 염려는

주님께 드릴

영적 소출을 없애는 일이다.

주님께 반역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종들이 불현듯 이해가 갔다.

그들도 

하다보니

자신의 감사를 잊은 것이다.

 불만이 쌓이고

감정을 진실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위험하다.

적지만 큰 착각이다.

 

이제

할 일이 있다.

다시

이전의 내려놓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상에서는

바보라 할 지 몰라도

그게

주님을 위한 길이라면

다시금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한다.

 

 

방금..

기획실 직원이 다녀갔다.

들리는 소리가

만족스럽다.

 

가만히 있어도 응답하시는 듯하다.

마음이 여유롭다.

 

 

주님

감사합니다.

지난 밤을 지켜서

무리없이 당직을 서게 하시고

이제

지금 막

걱정되던  문제가 해결 기미가 보입니다.

수술 도 잘끝났습니다.

불쌍하여 기도하던

독거 할머니,

그래도 괜찮은 외형의 소견을 보여

참으로 다행입니다.

주여

마음을 열어

주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니

일체의 모든

무거웠던 일이

일거에 해결이 되어 버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 의지한다고

선택하는 순간,

내 모든 것은 다 해결되는 것을..

어찌 어리석게도

이리 속으로

욕심으로

자신의 영혼을 옥죄어

주님께 드릴

영혼의 소출이 없도록

살아왔는지요.

가슴이 미어지고

통탄할 만한 미련한 일입니다.

특히

맘몬에 견주어지면

여지없이 흔들려 버리는

이 속상함을 가장한 마음이

참으로 바보만 같습니다.

 그 마져도

주님께 내려 놓습니다.

주님의 거룩하신 뜻을

제 영혼에 꽃피워 지길 소원합니다.

제 포도원에

 예수의 향기로 가득찬

포도꽃과 열매가

그득 그득하길 소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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