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하나님이 주신 겸손한 눈꺼풀( 창 33:1-17 ) 본문
제 33 장 ( Chapter 33, Genesis )
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는지라 그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하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
5.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
( 이 눈은 수술 전에도 그리 겸손해 보이진 않네요.. 누구시더라..근데?ㅎㅎ )
몇 가지 글 귀가 눈에 띈다.
"눈을 들어 보니"
난 눈꺼풀이 무거운 편이다.
쌍커풀이 없는 게 나이가 들면서 우리 모친을 닮아서 눈이 자꾸만 흘러 내려서
예전같은 시야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꾸만 위로 치켜뜨는데 힘이 들어간다. ㅎ
아침에 일어나거나
스트레스 받거나
긴장하면 눈이 부어서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게 세상에서 제일 무겁게 느껴진다.
쌍커풀 수술을 고려해야할 정도다.ㅎ
야곱이 눈을 들어보니라는 표현을 보면서
그 저녁의 힘듦이 눈에 보이듯 선하다.
그는 밤새 긴장했고
밤새 씨름하느라 힘을 다 뺏고
그 상태에서
대적
에서를 만나는 장면이다.
'절체절명'의 시기
그 상대가 멀리에서 나타나는 대 부대의 '실루엣'을 보고 옆의 누구가 소리지름을 듣고야 그는 심장이 분당 120회 이상 뛰는 현상을 억누르며 먼저 고개를 들었을 것이다.
서서히 슬로비디오처럼 들려진 그의 머리가 정면을 똑바로 향하지 못하고 약간은 10도 정도 아래로 향하고 들려지지 못하자 그는 겨우겨우 눈꺼풀을 위로 들어서 정말 마주하기 싫고 두려운 그 자, 에서를 마주 보려 했을 것이다.
이때의 눈꺼풀 무게가 천근과 만근으로 약 만천근(11,000근)정도는 아니었을까?ㅎㅎ
난 어쨋든 주님께서 태생적으로 겸허할 조건을 가졌다 .
그 머리 비상한 야곱이 주님께서 눈꺼풀을 내리 누르실 이러한 상황을 허락지 않으셨다면
과연 겸허할 수 있을까?
오늘 묵상 구절에 나오는 장면은 얼마나 겸손한가.
난 천부적으로 겸손한 눈까풀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 또한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ㅎㅎ
각설하고, 어쨋든 그는 용기를 냈다.
그리고는 그 답게 지혜를 짜냈다.
자식들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 순서가 눈에 들어온다.
라헬과 요셉의 이름이 제일 뒤에 나옴이 심상치 않다.
여기서 그의 속내가 읽혀진다.
별로 애정이 안가는 순서대로 앞에 배치함으로
혹시 있을 분란에서 가능하면 사랑하는 자들을 그 불똥에서 멀리 하려는 것.
그것은 한편으로는 지혜롭고 총명하지만
편애라는 의미에서는 안타깝기 그지없고
이제 특별히 요셉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한
형제갈등의 대 파노라마가 펼쳐질
복선(複線)을 의미하는 영화적 장치이기도 하여 흥미롭기 그지없다.
이러한 갈등의 구조를 유발하는 인간의 속내는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찌 그리 하나도 다름이 없는지....
이것만 봐도
인간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죄성'에 대하여 생각해 볼 여지가 없지 않아 있다.
더구나 그는 하나님과 밤새 씨름하면서
그 분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 받은 바로 그 직후가 아닌가?
사람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으로 인해서만 새로운 삶을 이 세상에서 살 수가 있다.
그분으로 인하여서만 이전 것이 야곱의 땀처럼 다 흘러 나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결점은 매일 같이 스스로 돌아보고 주님의 은혜로 벗어내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이 글을 보며 불현듯 다시 든다.
회개하라.
주하인.
늘
회개하고 깨우치고 다시 주님 앞에 정결케 되려는 마음을 가지라.
自足하지 말자
서 있다고 생각하다 넘어질까 두려워 하자.
또 눈에 띠는 구절은 " 일곱번 땅에 엎드리고 에서에게 입맞추는 " 장면이다.
얼마나 감사할까?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니.
그는 그래서 엎드릴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 겸손한 마음의 표현이다.
오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이 이것인 듯 싶다.
(아기 같은 순수한 눈을 가지고 싶습니다. )
겸손하라
또 눈에 들어오는 구절은 "은혜로 주신 자식" 이라는 말이다.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
특별히 그 자식들이 하나님이 주신 자식이라 생각하면 얼마나 귀할 까?
실제로 야곱이 돌아보면
그 격랑의 세월 속에서
이처럼 풍성한 재물과 더불어 자식들을 많이 낳게 되었으니 그 얼마나 감사할 것인가?
잠시 자신의 처지를 잊고 감개 무량한 표정을 짓고 몇분간의 시간을 흘려 보냈을 줄 모른다.
오늘은 특별히 그 자식들에 대하여 좀더 관심을 가져볼 바다.
적용
1. 겸손하라.
눈을 약간은 내리 뜬다 .
고개를 약간은 숙이겠다.
말은 한마디 천천히 시작한다.
2. 오늘 병원에서 전직원이 '석수공원'에서 모여 운동회를 한다.
그 자리에서 겸손하길 바라시는 것 같다.
어찌하는게 그런가?
3. 아들에게 좀더 부드럽게 대한다.
두 아들을 위해 중보하는 시간을 내겠다.
4. 성경 읽겠다.
기도
주님.
제가 그리 하여야 할 당위성을 느끼면서도
하나도 일상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겸손입니다.
특별히 사람들 사이에서 부드러운 관계올시다.
도우소서.
내 자식을 위해서 더 부드럽게 하게 하시고
형제들을 위하여 더 따사롭게 하게 하시고
이웃에 대하여 더 다정하게 하소서.
겸손하게 하소서.
은혜로 주신 자식들을 위해 중보하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일상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늘 느끼고 살기를 원합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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